성기현 선생님은 1학년 때 기술을 가르치신 선생님이고, 성교진 선생님은 2학년 때 한문을 가르치신 선생님이다. 아무 연관성이 없는 두 선생님들이지만 세트로 붙여 놓고 읽으면 무언가 연상되면서 재미있었다. “性器現하고, 性交盡이라.” 해석하자면, “성기를 꺼내어 성교를 끝내주었노라.” 물론 사람 성씨에는 이룰 성(成)자를 쓰지 性자를 쓰지 않으며 이름자도 다르게 쓰셨겠지만, 자꾸 우스꽝스러운 댓귀가 연상되었다.
이 시리즈가 2-4반 시리즈이므로 오늘은 성교진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써 보려 한다. 선생님은 그 해에 오셨거나 전 해에 오신 걸로 기억한다. 성균관대학교 유학과(儒學科)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 선생님이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진한 시골 냄새나고 이목구비가 둥글둥글한 호남형이었다. 늦장가 가서 얻은 아들을 잃은 지 오래지 않은 듯 항아리 두 개를 맞대어 그 안에 시신을 넣는 옹관묘를 만들었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 선생님의 특징적 수업방식은 한자(漢字)의 낱자를 많이 쓰고 외우게 하기보다 한문(漢文)의 해석과 주석(註釋)에 초점을 두는 것이었다. 따라서 글 읽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구성진 가락을 넣어서 글을 읽으며 시범을 보이셨다. 그 덕분에 한문 교과서에 나오는 논어 몇 구절, 두보의 오언절귀 한 수를 구성진 가락으로 읊조릴 수 있게 되었다.
子ㅣ曰, 吾 十有五에 而學하고, 三十 而立하고, 四十 而不惑하고, 五十 而知天命하고, 六十 而耳順하고, 七十 而從心所欲이나 不踰矩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열다섯에 학문을 이루고,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에 세상사에 미혹하지 않게 되었으며,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고, 예순에 무슨 말을 들어도 새길 줄 알았으며, 일흔에는 마음에 내키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게 되었다.
子ㅣ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하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공자께서 이르시길, 배우고 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臨亭秋已晩하니
騷客意無窮이라
遠水連天碧하고
霜楓向日紅이라
塞鴻何處去오
基聲慕雲中이라
정자에 오르니 가을은 이미 무르익었고
시끌벅적한 문사들은 글쓰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멀리 강물은 하늘과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받아 붉게 물들었도다.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울음소리만 저녁노을 구름 속에 아련하네.
글이라 가락을 넣을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