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만한 융의 제자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1948년 C.G융이 분석수련 교육의 장으로 스위스의 취리히에 연구소를 설립하고자 했을 때, 그의 주변에는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연구소를 운용할 평의원을 구성하는데 한 사람이 거론되었다. 제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이었다. 자질도 떨어지고 대인관계도 편안치 않은 사람으로 평가되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녀가 평의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모두 반대했다. 이때 융이 말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끼리만 있으면 너무나 좋은 나머지 곱게 잠들어버리지. 그러니 자네들이 잠들지 않으려면 그림자와 함께 있어야 하네."
그리곤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를 평의원에 포함시켰다.
융의 이러한 조치가 그녀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봤을 다른 위원들의 '단 잠'을 깨우는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떻든 그녀는 생전에 그녀의 역할을 충실히 했고, 특별히 연구소의 운영에서 말썽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다. 집단적 그림자의 투사를 받고 있다고 분명히 감지했을 그녀는 나름대로 영심히 융의 심리학 개념을 소개하는 일에 몰두했고, 연구소에 환자 그림 아키브를 만드는데 공헌을 했으며 그림 해석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나는 요즈음 융의 이 말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만 모여서 일하면 참으로 오봇하고 사이좋은 형제자매처럼 즐겁기만 할 것 같다. 사실 그렇다. 그러나 가족집단과의 동일시가 오래 지속되면 은연중에 무의식에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이때 밖에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투사가 일어나고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로 경계하게 된다. 혹은 내부에서 그림자에 사로잡힌 사람이 생겨나서 집단의 평화와 무의식적 동일시를 흔들어 놓고 가차 없이 때려 부순다. 그림자와 함께 있거나 그림자와 대화하는 것이 너무나 싫고 감당하기 어려우면 스스로 '가족' 집단을 뛰쳐나가거나 그림자 투사대상을 멀리 내쫒아 버린다. 그래서 '뜻이 통하는 사람' 끼리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자연은 평화와 화목을 무상으로 주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 하고 멀리 하려 해도 그림자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의식의 일부로 수용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 대한 카르포크라테스 학파의 해석과 관련해서 융이 다음과 같이 고쳐서 설명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나서 먼저 너 자신과 화해하고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너 자신과 더불어 화해하라 - 네가 너 자신과 함께 길을 가는 동안 네가 너 자신을 재판관에게 넘기기 전에.
(너 자신이란 마음속의 형제, 즉 그림자를 말한다.) -이 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