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5월 30일 돈 보스코는 성모님께 드리는 선물에 대한 꿈을 꾼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그의 소년들이 성모님께 드릴 선물로 새끼돼지, 고양이, 두꺼비, 토끼, 어린양들을 드리는 꿈이었다. 그 선물들은 천사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절되기도 했는데, 천사가 이상한 선물들에 대한 해석을 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새끼돼지를 가져온 소년에게 천사는 이 돼지가 상징하는 뜻은 ‘불결의 악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양이는 ‘도둑의 상징’, 두꺼비는 ‘추문을 일으키는 부끄러운 죄’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런 선물을 가져온 소년들은 낯을 붉히면서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양, 토끼, 물고기, 호두, 포도를 가져온 소년들의 선물은 모두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런 동물들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면 돼지는 악마 사탄, 대식, 호색의 상징이다. 대식의 악마에게 승리한 성 대 안토니우스의 표지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사탄, 암흑, 색욕, 게으름을 의미한다. 두꺼비는 악마 사탄을 상징한다. 악마가 들린 자의 육체에는 두꺼비가 들어간다. 두꺼비는 탐욕의 상징이다.
신비롭게도 돈 보스코의 꿈에 나타난 천사가 해석한 의미는 문화 상징사전에서 그리스도교 문화에서의 상징 의미와 일치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성모님께 받아들여진 상징물에 대해서 살펴보자.
양은 목자인 예수에게 인도되는 사람들과 신앙이 독실한 자, 12사도를 나타낸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의례에서는 토끼 가죽을 몸에 걸침으로써 <위대한 영> 앞에서의 순종과 겸손을 나타낸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부활의 상징으로 토끼인형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 같다.
물고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암호였다.
호두는 모든 나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 감추어진 예지를 상징하며 풍요와 장수를 나타낸다. 그리스나 로마의 결혼식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호두가 사용된다.
포도의 상징은 성경에서도 너무나 명백하게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징의 의미는 진쿠퍼의 세계문화 상징사전에서 참고했다.)
이렇게 상징의미를 고찰해 보고 나는 신비롭고 놀라웠다. 돈 보스코는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독서를 하신 분이다. 지식을 통해서 그리고 문화를 통해서 저장된 정보들이 꿈상징에 대한 이해를 가져왔고, 그러한 이해는 교부들의 전통과 오늘날 심리학적인 이해들과 공통되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감히 돈 보스코의 꿈에 나타난 동물들과 그의 삶의 신비로운 존재인 그리죠라는 개를 연결 시켜 보고 싶다. 그 이유는 그가 성모님께 드린 꿈을 꾼 해가 1865년 5월 이고 돈보스코가 그리죠를 마지막으로 본 해가 1866년 이었다는 (돈보스코의 회상 364p 참조) 점에서 시작됐다. 분석심리학에는 ‘동시성’ 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부영의 책 분석 심리학에서는 동시성을 하나의 정신적 체험이 이와 뜻을 같이하는 외부의 구체적 사건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비슷한 시각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고 이 양자 사이에는 의미상으로 일치하는 바가 있다는 사실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전에 ‘코끼리와 성모님’ 꿈에서 말한 것처럼 돈 보스코는 기질상 급하고 충동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영적여정을 통해 자신의 본능적인 에너지를 승화하고 통합하는데 성공한 사람임을 나타내주는 꿈이라고 이 꿈을 해석한다면 왜냐하면 꿈에서의 동물들은 많은 경우에 본능적인 에너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현실에서의 그리죠가 사라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무슨 말인가? 다시 말해서 그리죠를 돈 보스코의 본능 에너지를 나타내는 동시성의 상징으로 볼 때 그가 65년도 꿈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정인 에너지로 변화시키는데 성공하고 그 영적인 열매를 성모님께 선물로 드려서 통합해 내었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그리죠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너무 억측으로 들린다면 그냥 넘어가 주시고, 아뭏는 저에게는 이런 연결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내가 만나고 싶은 돈 보스코는 인간이지만 그 인간성을 초월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성서에서 만난 변화의 표징들’에서 불타는 가시덤불을 모세라는 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된 표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감히 나도 돈 보스코라는 한 인물이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된 표징으로서 그리죠의 사라짐을 보고 싶은 것이다. 왠지 돈보스코가 1872년 여남작 아젤리아 파사티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천사라고 말하면 웃겠지만 평범한 개는 아니었습니다.” 그리죠가 사라진 것은 돈보스코가 천사의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