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어느 시골 작은 성당의 주일 미사에서 복사활동으로 신부를 돕던 어린 소년이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신부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는 소년의 뺨을 때리며 버럭 소리쳤다. “다시는 재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 소년은 그 일 이후 일생 동안 천주교에 발을 딛지 않았다. 이 소년이 바로 공산주의 대지도자인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다. 어느 큰 도시 주일 미사, 신부를 돕던 소년이 역시 실수해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다. 신부는 놀라 떨며 금방 울 것 같은 소년을 사랑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가만히 속삭였다. “괜찮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잖니?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단다. 너도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이 유명한 대주교 ‘풀턴 신’이다. 필자가 학부에서 교육학개론을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위의 티토와 풀턴 신 대주교의 이야기는 말의 힘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준다. 이처럼 말의 힘은 사람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례 둘. 어린시절 철이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곰보빵을 먹지 못했다. 아니 먹지 않았다. 먹기 싫었기 때문이다. 철이 엄마는 곰보였다. ‘친구들이 곰보빵이라는 빵 이름을 부르거나 곰보빵을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서 곰보빵이 싫다’는 것이 철이의 생각이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어느 선생님은 곰보빵의 이름을 바꿔 불러줬다. 선생님의 권유에 친구들도 더 이상 곰보빵이라 부르지 않고 소보로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원래 곰보빵은 일본어로 소보로다. 소보로(そぼろ)는 일본어로 생선, 고기 등을 으깨어 양념한 다음 지져낸 식품 또는 머리칼 등이 얽힌 모양을 말하는데, 우리 국립국어원에서는 얼굴에 곰보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의 빵이라고 ‘곰보빵’을 공식용어로 사용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공식적인 곰보란 용어를 사용하며 철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대신 소보로란 일본어를 사용해 아이의 마음 상함을 지켜주는 자상함을 선택했다. 그후 곰보빵을 먹지 못하던 철이는 똑같은 모양의 소보로빵을 친구들과 함께 잘 먹게 된다.
땜빵에서 ‘초대손님’으로 이처럼 언어의 힘은 우리의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느낀다. 언젠가 고교 동창의 부탁으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골프모임에 나갔다. 그 친구는 모 호텔의 와인스쿨을 수료했는데 그날은 와인스쿨의 동문회 자리였다. 스쿨을 수료한 사람들이 골프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모임의 총무 역할을 맡던 친구는 당일 급한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동문 멤버를 대신해서 필자를 불렀다. “골프장에 예약한 인원을 꼭 채워야 하는데 급하게 사람이 필요해. ‘땜빵’으로 라운딩만이라도 참석해줘!” 라운딩 하루 전의 요청이었지만 친구의 부탁에 마침 하루 쉬겠다고 결심한 날인지라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흔쾌한 대답만큼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수십 명의 모임에 혼자 외딴섬처럼 있어야 할 것이며, 더더욱 와인스쿨 모임이니 주요 대화가 와인일 텐데, 《신의 물방울》을 재미있게 읽은 정도에 불과한 와인에 대한 나의 무지가 드러나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뭐 난 땜빵인데 땜빵 역할만 즐겁게 하고 오자. 운동만 잘 하고 오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많은 멋쟁이 신사숙녀가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며 인사를 했고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미소를 교환하고 있었다. 잠시 후 오후 라운딩에 앞서 모두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최근의 근황을 알리는 소개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철저히 ‘땜빵’ 역할에 충실했다. 식사자리도 스스로 제일 구석에 자리잡았고 조용히 식사를 했다. 필자는 속으로 ‘나는 이 자리의 주인공도 아니고 땜빵이니 조용히 식사시간이 지나고 빨리 필드로 나갔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물론 필드에 나가서도 철저히 ‘땜빵 역할에 충실하게 공만 치고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머릿속을 ‘꽝’ 하고 두드리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모임의 사회자가 필자를 지목하더니 못 보던 분이 ‘게스트(Guest)’로 오신 것 같다며 소개를 부탁하는 것 아닌가! 이후 한 분 두 분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하면서 말이다. “아! 게스트로 초대받으셨군요?”라는 인사를 해줬고, 결국 모임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에게 어느새 나는 ‘초대받은 손님’이 돼 있었다. 이들의 게스트라는 호칭은 듣는 이의 감(느낌, 기분)을 다르게 만들었음은 당연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구석에서 서성이던 ‘땜빵’은 집으로 가버렸고 그 자리엔 초대받은 손님인 게스트가 주인공들과 나란히 앉아 같은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시간 이후 게스트가 된 필자는 하루종일 게스트의 기분으로, 게스트의 걸음걸이로, 게스트의 음성으로, 게스트의 눈빛으로 하루를 즐겼다. 이처럼 타인을 배려하는 언어는 너무나 매력적일 뿐 아니라 ‘생성의 힘’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말에 대해서 아무리 신중하여도 지나칠 것은 없다. 인간의 입에서 떨어지는 모든 말이 사실은 하나의 고백이며 하나의 맹세이다. 따라서 모든 말은 하나의 결단이다. 그리고 이 결단은 나의 존재의 실체를 건 모험이다. 나의 영혼이 나의 말에 달려 있다. - 《말의 힘》, 이규호, 제일출판사, 1974 -
여왕 사이즈로 주세요 이러한 말의 힘이 비즈니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체중 135kg의 낸시 오스틴은 1970년 여성 전용 속옷가게를 열었는데 거구의 고객들을 위해 그 가게에선 엑스트라라지(XL) 사이즈를 작다는 의미의 프랑스어인 ‘프티 사이즈’로 불렀고, 그보다 더 큰 사이즈는 ‘퀸 사이즈’로 부르기 시작했다. 거구의 여성들이 ‘매우 매우 큰 사이즈 주세요’ 대신 ‘여왕 사이즈 주세요’를 외치면서 거구의 기분에서 여왕의 기분이 들도록 한 이 가게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당연한 일. 제임스 랜스(James Lance)는 《두통(Headache: Understanding Alleviation)》이라는 책에서, ‘의사가 선택하는 한마디의 말만으로도 환자의 목을 거북처럼 안으로 쑥 들이밀어 목 근육이 계속 수축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두통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하면서 말은 우리의 몸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언어의 위대한 힘! 말의 영향력!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러한 말의 영향력은 타인 못지않게 자기 개인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실 우리가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대화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자기대화(Self Dialogue)’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대화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아개념(self concept)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자아개념이란 개인의 믿음, 가치, 태도, 정서 등을 뭉쳐놓은 것으로 내 삶의 지휘통제센터라고 할 수 있다. 자아개념은 우리가 살면서 얻은 모든 경험의 결과가 저장된 것이다. 신념의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자아개념은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 행동, 기분, 반응 등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자아개념은 나의 자부심(self-esteem)을 형성한다. 자신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게 자부심인데,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느낌이 바로 에너지의 원천이고, 발전소이며,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강력한 힘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자아개념 안에 있는 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나 자신이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가, 나의 직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또는 나의 회사를 얼마나 좋아하는가와 같은 자부심, 즉 모든 생활에서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 삶의 효율성과 성과는 달라진다. 놀랍게도 이렇게 중요한 자아개념과 자부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대화이다. 나의 생각, 독백, 혼잣말 등은 나의 자부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Heidegger)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의 주택 속에 인간은 산다”라면서 언어는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창조함을 역설했다. 우리의 말은 우리 의식의 일부가 된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이끌어가며 삶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말이 있기 전에 우리의 생각은 어둠의 혼돈이다. 말과 더불어 우리의 생각에는 빛이 나타나고 질서가 생긴다. 생각해보자. 나는 나에게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가? ‘나는 안 돼’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중얼거림은 나의 무의식에 깊게 각인돼 그러한 나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확신을 갖자! 내 말이 내 인생을 만들어낸다. 더더욱 내 스스로 하는 독백은 나를 규정짓는다는 것을. 그리고 실천하자! 되고 싶은 나, 간절히 원하는 내 모습을 외쳐보자. ‘나는 내가 좋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기분이 좋다!’ 놀랍게도 이러한 자아를 향한 나의 외침은 나의 기분, 나의 느낌을 달라지게 하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가 외쳤던 나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정말 나는 내가 좋다는 기분을 가지고 외쳐보라. 그런 기분이 아니라도 마치 그런 기분인 것처럼 외쳐보라! 실제로 시카고의 이안그룹 회장인 클레멘트 스톤은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나는 오늘 기분이 좋다’ ‘나는 오늘 건강하다’ ‘나는 오늘 멋있다’라고 외치게 했다. 회장은 확신에 담긴 이 세 가지 문장을 세일즈맨에게 훈련시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그들이 외치는 말에 의해 그들의 하루가, 그들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실천했던 것이다. 당신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성경의 창세기 1장 3절은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라고 시작된다. 하느님이 말의 힘을 이용해 소리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말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그 말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의 말은 우리를 창조하고 그 말은 우리가 만든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다스림으로써 우리는 우리 인생의 하느님이 될 수 있다.
<연습>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다음을 외쳐보라. ★ 오늘은 좋은 일만 일어날 거야. ★ 정말 기분 좋은 하루다. ★ 나는 내가 좋다.
우리의 말은 우리 의식의 일부가 된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이끌어가며 삶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부정적인 중얼거림은 나의 무의식에 깊게 각인돼 부정적인 나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확신을 갖자! 내 말이 내 인생을 만들어낸다. 더더욱 내 스스로 하는 독백은 나를 규정짓는다는 것을. 그리고 실천하자! 되고 싶은 나, 간절히 원하는 내 모습을 외쳐보자. ‘나는 내가 좋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기분이 좋다!’ 놀랍게도 이러한 자아를 향한 나의 외침은 나의 기분, 나의 느낌을 달라지게 하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가 외쳤던 나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의 모든 조직과 신경은 동시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최근 해외 연구진은 뇌의 특정 부위가 오로지 음악에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의 조쉬 맥더못 박사에 따르면 측두엽의 청각피질이라고 부르는 청각 조절 중추는 사람이 음악을 들었을 때에만 체내 전기 자극을 통해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전문가들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복합적인 소리 즉 타인의 말소리 주변의 소음을 탐지하고 ‘해독’하는 과정의 연상선산에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우리 뇌에는 오로지 음악을 탐지하고 이를 감상하기 위한 신경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는 음악과 우리 뇌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10명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소리 165개를 들려줬다. 여기에는 편집된 대화의 일부나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나 차량 경적 소리, 전화벨 소리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소리를 들을 때의 뇌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실시했다. 뇌신경 전달물질의 소모량 변화로 혈류량의 증가량과 감소량을 측정한 것인데, 그 결과 청각피질의 신경세포에서 음악을 포함해 각각의 소리에 반응하는 신경세포 조직을 찾아냈으며, 그중 일부는 오로지 멜로디가 있는 음악을 들을 때에만 독특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구를 이끈 조쉬 맥더못 박사는 “뇌의 이러한 기관은 태어날 때부터 유지되어 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뇌 기관의 기능은 삶에서 다양한 음악에 자주 노출 됐을 때 더욱 발전한다”면서 “다만 뇌의 이러한 기능이 음악적 능력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연구의 다음 단계는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나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의 뇌 기능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 기능을 구분해 분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인간이 어떻게 아름다운 음조나 힘찬 리듬을 감상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는지를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뇌 피질에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는 기능을 하는 영역이 있다. 귀가 먹게 되면 이 영역은 청각 대신 영상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이 영역은 영상정보를 이용해 원래의 임무였던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이같은 결과는 하나의 감각을 잃는 경우 뇌의 해당 영역은 다른 감각을 처리하는 일을 맡되, 원래의 기능은 계속 발휘한다는 새로운 이론을 뒷받침한다.
물론, 예컨대 청각과 같은 주요 감각을 잃는 경우 나머지 감각이 예민해져서 청각 손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나의 감각을 잃는 경우 뇌의 해당 영역이 어떤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미국 버지니아코먼웰스대학과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 공동연구진은 먼저 청각이 정상인 동물의 뇌에서 청각자극에 반응하는 영역을 검사했다. 소리에 반응해서 그 음원의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는 행동을 제어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귀머거리 동물의 경우 똑같은 대뇌피질의 영역이 시각자극에 반응했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방향 설정 및 위치파악 행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됐으며 과학논문 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 과학뉴스사이트 사이언스데일리 등이 최근 보도했다. 박도영 기자 (catsalon@kormedi.com)
소음이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소리나 떨림을 말하는데, 이 소음은 감각적 공해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연령 및 정신·신체적, 사회·문화적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건강한 사람에 비해 환자인 경우 소음에 매우 예민하여 쉽게 짜증을 느끼고 클래식이나 팝송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소음공해로 받아들이게 되며 비포장 길을 달리는 자동차 안의 어린이는 재미있어 하는 반면 대부분의 어른이나 노인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불쾌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공해란 측면에서 생활하는데 방해가 되는 소리나 떨림, 불쾌한 소리, 없는 편이 나은 소리나 떨림 등으로 일컬어지며 청취방해, 작업방해, 수면방해, 정서불안등과 같이 인간의 정서나 행위목적을 방해하는 소리 및 떨림은 어느 것이든 소음 공해라 할 수 있다.
소음 크기의 단위로는 dB(데시벨)이 사용되는데 같은 기계가 한 장소에 여러대 있을 경우 1대의 소음이 60dB 이라면 10대의 소음은 70dB이 되며 사람의 귀로는 약 2배로 크게 느끼게 된다. 또한 같은 기계가 100대 있을 때의 소음은 80dB이 되며 사람의 귀로는 1대에 비해 약 4배, 10대에 비해 약 2배 크게 느끼게 된다.
또한 소음 공해는 대기 및 수질오염등과는 달리 귀나 몸으로 느끼는 감각공해로서 생물·화학적이 아닌 물리적 현상이므로 축적성이 없고 피해범위가 좁아 국지적이며, 소음이 발생할 때에만 느끼는 일과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반면, 소음에 노출되면 곧바로 심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장기간 노출되면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우리 인간이 생활하는데 있어 직·간접적으로 많은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러한 소음의 발생원을 보면 자동차·철도·항공기 등의 교통기관에 의한 교통소음, 공장에서 사용하는 기계·기구 등의 가동에 의해 발생되는 공장소음, 건설공사 시 건설장비에 의한 건설소음, 종교 및 상업행위 등에 사용하는 확성기·가전제품 등에 의한 생활 소음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및 설비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사례별 소음 수준을 보면 다음 표와 같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원의 사례별 소음수준
소음의 전달로서 발생원으로부터 나오는 소음은 공기 등을 통하여 귀의 감지부에 전달된다. 즉, 진공상태에서는 소음이 전달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소음원으로 부터 2배의 거리씩 멀어질 때 마다 6dB씩 감소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발전기로부터 20m 위치에서 80dB이었다면 40m에서는 74dB, 80m에서는 68dB이 된다.
또한 소음은 온·습도 및 풍향, 풍속과 주변의 건물, 나무 등의 장애물 유무 및 상태에 따라서도 그 전달이 달라지는데 온·습도가 높고 풍속이 클수록 더욱 잘 전달되며 건물, 나무 등의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는 경우에는 소음의 크기가 감소하게 된다.
반면 소음도 빛과 마찬가지로 어떤 장애물이 있으면 반사하게 되는데 장애물의 표면이 매끄럽고 딱딱하고 무거울수록 많이 반사되고 표면이 스폰지처럼 구멍이 많이 있고 부드러울수록 반사는 적으나 음을 많이 흡수하게 되므로 이를 이용하여 소음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발생원에서 나오는 진동 중 일부는 땅을 통하여 그리고 일부는 공기 등을 통하여 가옥이나 사람에게 전달되는데 사람에게의 전달방법은 사람 몸 전체로의 전달, 몸을 지지하는 바닥면 등의 표면으로부터의 전달, 손·머리·발 등 진동 발생원으로부터의 직접 전달이 있다.
소음의 영향으로는 인체의 생리적, 심리적 및 작업능률 등에 영향을 미친다. 건강하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명시한 대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양호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건강피해란 단순한 신체적 피해만이 아니라 정신적 피해, 생활방해를 말한다.
즉,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게 되며 생활에도 피해를 받는다. 반대로 정신적 스트레스는 소화불량, 두통, 혈압상승 등을 일으키며 신체적 피해와 생활피해를 유발한다. 따라서 이들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신적 피해와 생활방해를 주체로 하는 소음공해는 반드시 건강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음에 대한 생리적 반응은 단기적 영향과 장기적 영향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단기적인 영향으로는 소음을 느끼는 짧은 순간 지속되는 반응이다. 또한, 장기적인 영향으로는 수시로 이상의 기간을 지속하거나 반응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단기적인 영향이 상당 기간 쌓여 장기적 영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단기적 영향으로는 갑작스러운 높은 소음에 대한 방어본능에 의해 일어나며 소음이 반복됨에 따라 일어나는 심장 박동수의 감소 경향과 주로 피부 근방에서 나타나는 말초혈관의 수축 현상이 있다. 또 다른 영향으로는 호흡 속도가 감소하면서 호흡의 크기가 증가하는 현상이 있다. 이외에 소화기 계통에도 영향을 준다.
장기적인 영향은 주로 내분비선의 호르몬 방출에 의해서 일어난다. 혈관 내에 호르몬이 과다하게 존재하는 경우에는 신체의 다른 부위로 전달되어 여러 가지 장애를 일으킨다. 이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으로는 동맥장애와 스트레스가 있으며 동맥장애는 심장과 뇌 등에 영향을 미치며 스트레스는 위장과 대장 등 소화기 장애와 호흡기에 영향을 준다.
소음의 심리적 영향은 주로 대화 장애와 수면 장애 및 단순한 짜증과 불쾌감 등 정신적 측면과 관련된다. 그러나 정서불안과 스트레스 증가 등으로 인하여 생리적 장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소음의 심리적 영향은 생리적 영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음의 심리적 영향으로는 귀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소음의 귀찮은 정도는 음압도의 크기와 소음의 지속시간으로 결정한다. 발생원별 소음수준과 인체영향으로는 다음과 같다.
표_2 외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원의 사례별 소음 수준
소음의 영향으로서 첫째는 소음성 난청으로, 소음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큰 소음에 일시적으로 노출되더라도 귀의 감각부가 무뎌져 일상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질환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난청을 예방하기 위한 소음수준은 작업 장내에서 90dB(A) 이하, 일반 환경 중에서 75dB(A) 이하로 정하고 있다.
둘째로 청취방해는 듣고자 하는 소리와 소음이 동시에 존재하면 이들이 대뇌의 지각부를 동시에 자극하게 되어 듣고자 하는 소리를 소음 때문에 명쾌하게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대화, 전화, TV, 라디오 청취 및 수업 등에 장해를 주며 소음의 크기가 60dB(A)를 넘으면 그 영향이 심화된다.
셋째로 정신적 영향으로는 학습방해, 수면방해, 작업능률 저하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영향은 학습방해의 경우 소음수준이 60dB(A)을 초과하면 산수계산 능력이 저하되고, 어학분야의 이해률이 저하한다.
수면방해의 경우 소음수준이 35dB(A) 미만일 때는 수면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깊은 잠을 이룰 수 있으나, 35dB(A)를 넘으면 상대적으로 깊은 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수면을 취할 때에 비해 수면시간이 길어져야 한다. 작업능률 측면으로는 소음수준이 85dB(A)를 넘게 되면 복잡하거나 정밀한 작업의 능률이 저하된다.
넷째로 정서 및 생활에의 영향으로는 소음에 노출됨으로써 불쾌감, 분노, 놀람 등의 정서방해, 식욕 및 성욕부진 등의 생활방해를 유발한다.
다섯째로 생리적 영향으로는 호흡기, 순환기, 소화기 등에 영향을 미쳐 호흡의 촉진, 맥박수의 증가, 혈압상승, 위액분비의 감소, 위장운동 억제 등 자율신경계에 장애가 출현하고, 임신율 저하, 사산율 증가, 유아의 출산체증 감소등의 임신 및 발육에 영향을 끼치며,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각종 호르몬의 정상 분비에 영향을 준다.
어떤 한 장의 결정 사진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결정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랑·감사' 라는 글을 보여준 물인데, 물이 기뻐하면서 꽃처럼 활짝 핀 모습의 결정을 나타낸 것이다. 내 인생을 순식간에 바꿔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결정 사진이었다. '사랑·감사' 의 물은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과, 의식이 세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었다. (24쪽)
물에 음악을 들려주면 왜 결정이 변할까. 또 말을 걸거나 글자를 보여주면 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는 걸까. 그것은 모든 것이 진동이기 때문이다. 물은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한 주파수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대로 전사(轉寫)한다. (71쪽)
자연계의 대부분은 하나에 고정된 주파수밖에 내지 않는다. 참새의 울음소리는 모두 똑같이 들리고(참새 입장에서는 각각 다르게 울지도 모르지만), 개나 고양이도 울음소리에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 그에 비해 인간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자유롭게 노래하고,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모든 것과 공명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우주의 모든 것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에너지를 주고, 반대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인간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자연의 조화를 어지럽히는 에너지를 세계에 퍼뜨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지구를 이렇게 오염시킨 것은 우리 인간이 산업혁명 이래 오로지 생활의 편리함과 자신들의 부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의 의식이 대량 소비사회라는 생활양식을 만들어냈고 그것으로 지구환경을 위협해왔다.
이제 인류는 의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어떤 파동과도 공명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므로 자연과 공생하며 지구를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의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파동을 세계로 내보내고 지구를 어떤 별로 만드느냐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과 감사로 마음을 채우면 사랑해야 할 상대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일이 차례로 찾아와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미움과 불만, 슬픔이라는 파동을 내보내면 어떻게 될까. 아마 더욱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 슬픔이 가득한 결과만 낳게 될 것이다. 어떤 세계를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사느냐는 여러분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 물은 답을 알고 있다, 81~82쪽, 에모토 마사루, 더난출판, 2008.8.29. (초판 7쇄)
놀라운 일입니다.
게다가 위의 사례와 실험에서 보듯이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