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기에 영성 생활을 포함하여
다방면에서 서방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540경~604)입니다.
역대 교황 중에서 교황 레오 1세(4세기 말~461)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두 분만이 대(大)교황으로 불립니다.
또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암브로시우스(339~397),
히에로니무스(347/48~419/20),
아우구스티누스(354~430)와 함께
서방 교회 4대 교부로 꼽히는
서방 교회 마지막 교부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수도 생활을 실천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재임 시에도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졌으며,
수도자들을
북유럽 선교를 위한 선교사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수도 생활을 실천했으며,
586년에 로마로 귀환하자 바로 자신의 수도원으로 돌아가
수도원장 직분을 맡았습니다.
590년에 로마에서 전염병이 돌아
교황 펠라기우스 2세가 선종하자,
서방 교회는 그레고리우스를
차기 교황으로 추대하여 선출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최초의 수도자 출신 교황이 되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즉위 전후에 했던
강의 및 강론을 (591~594년) 출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욥기 주해서인 "윤리서"
사목자의 자질을 다룬 "사목 규범"
미사 강론을 모은 "에제키엘서 강론집" 등이 있는데,
윤리적이고 사목적이며 영성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출신 성인들의 행적을 기록한 "대화록"이 있는데,
제2권에서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의 생애를 다루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교회 구성원들을 세 계층으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 계층은 "평신도" 였습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자녀’이기 때문에,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에게 윤리적인 행동 규범을 강조했으며
성경 말씀의 의미와 관상 기도 실천을 가르쳤습니다.
두 번째 계층은 ‘성직자’ 였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성직자들에게 신앙인들의 영혼을 잘 다스려
하느님께 이끌 수 있도록 사제다운 마음인 고행과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세 번째 계층은 "수도자" 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멀리 물러나서
고요함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모든 육체적 욕구를 포기하고
일상에서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거룩한 독서와 육체 노동을 실천하며
관상 생활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활동 생활"과 "‘관상 생활’ 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을 제시했습니다.
활동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돌보는 모든 형태의 삶을 의미합니다.
관상 생활은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과 이웃에게만
마음을 두는 형태의 삶을 의미합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서방 교회 전례 개혁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동방 교회와 차별화된 미사 경문과
성사 예식을 마련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11세기에 완성된 "그레고리오 성사 예식서" 를
처음 집필하기 시작한 인물이
교황 그레고리우스 였으며,
9세기경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를 집대성해 만든
단성 무반주 성가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고 여겨
교황의 이름을 붙인
"그레고리오 성가" 라고 명명했습니다.
한편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 하였으며,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읍니다.
그는 라틴 교부의 일원으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그는 604년 3월 12일 로마에서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고,
사후 즉시 시성 되었으며
축일은 그가 로마의 주교로 축성된 9월 3일에 기념한다.
글.가톨릭평화신문,전영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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