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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스크랩 고 희(古稀)
길상이 추천 0 조회 36 17.03.01 19: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뭉개구름과 바람도 태산준령을 넘을 때에는 힘이들어 잠시 쉬었다 넘기도 하는데 세월은 하롯불에 엿을 붙여 놓고 왔는지

아니면 예쁜마누라 속고쟁이에 불이라도 났는지 어찌하여 일년 삼백육십오일 단 하루도 쉬지를 않고 주야장창 앞으로 가기만 

한단 말인가?

나이를 먹을 수록 세월은 더더욱 빨리 흘러간다고 하드니 그 말이 맞기라도 하듯 엊그제 병신년 새해를 맞이한 것 같은데

세월은 번개처럼 흘러 어느새 섣달그믐 끝자락에 다달아 이틀후면 우리를 찾아올 정유년에게 세월에 바톤을 넘겨고는 역사

저편으로 떠나려고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고 있다.

어릴 때는 하루라도 빨리 설이 오라고 짧은 모가지 길게 빼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학수고대(鶴首苦待) 했는데 지금은

쥐꼬리만한 나이탓인지 설이 와도 반갑기는 커녕 벌써 설인가 하는 세월의 빠른 흐름에 안타까워하노라면 허망함과 쓸쓸함이

한겨울 뷘밭에 말달리듯 달리는 바람소리처럼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젊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일인데 고희 코 앞에선 지금은 늙는 것도 서러운데 왜 이런 회심한 생각마져 드는 것인가?

아마도 그 것은 옛날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월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을 못해서 소외감을 느끼기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까?

철학자도 아닌 무지랭이 같은 내가 오묘한 세상의 이치를 어찌 알 수 있으랴마는 아둔한 머리로 추측해보건데 아마도

그 것은 한 달 전 건강미를 자랑하던 차돌 같은 친구가 백수는 받아 놓은 밥상이라고 입버릇처럼 자랑을 했는데 차돌에도

바람이 든다고 갑자기 몹쓸 병을 얻어 한달 만에 저세상으로 떠난 일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꽃은 피어도 이윽코 시들고 생명이 있는 것들은 누구나 꼭 한 번은 죽음의 길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을 가지 않는 방법은 없슬까?

죽음의 길을 가지 안으려면 나이를 먹지 않으면 가능한 일인데 인간은 태어나서 일년이 지나면 자연히 나이를 한 살씩

먹게 된다.

일년도 눈깜빡 하는 사이에 흘러 가지만  따지고 보면 일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일년도 못 살고 죽음의 길을 가는 것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가면서도 자손까지 남기고 가는 것을 보면 하루도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가 없다.

이 세상에 나이만큼 공평한 것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억만장자라고...

잘 났고 학식이 높고 권력이 높다고...

온갖 재주를 가졌다고 해서 일년에 반살을 먹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고 못생기고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문맹자고 산골오지에서 두더지처럼 흙을 파먹고 사는 농삿꾼일지라고 나이는 

일년에 두 살을 먹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공평하게 한 살씩 먹으니 나이보다 공평한 것은 이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잠꾸러기인양 하루종일 쿨쿨 퍼질러 낮자믈 자든 핸드폰이 해질녁 갑자기 천둥에 놀란 개뛰듯 오두방정을 떨어 대면서

아가리질을 해댄다.

화들짝 핸드폰을 열어 보니 죽마고우가 보낸 문자 멧세지다.

얼른 안경을 콧등에 걸고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보니

" 정유년 새해를 맞이해서 벗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정월 초 닷세 저녁 18:00 제천 OO장소에서

친지를 모시고 고희연을 갖고자 하오니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셔서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죽마고우 중 생일이 제일로 빠른 친구가 보낸 문자다.

 

" 고희....!!!"

칠십을 일커르는 어휘(語彙)다.

친구가 고희라면 나 또한 이번 설만 지나면 칠십줄에 들어 선다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벌써 고희란 말인가......!!!

놀라 자빠질 일이다.

고희는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남들의 이야기라고  생각 했는데 내가 어느새 고희라니......!!!

구년 전 환갑을 맞이할 때는

"내가 벌써 환갑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저승문턱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 라고 회심한 생각이

들었는데 세월이 총알처럼 흘러서 내가 칠십줄에 들어 섰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저승문턱이 아니라 저승에 입학원서를 

제출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아직도 꽃 피고 새가 우는 이팔청춘 봄 같은데 몸은 벌써 칠십줄에 들어섰으니 내 신새도 서산에 기울어 노을를

퍼내리는 석양과 뭐가 다를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딴에는 늙기 전에 뭔가를 꼭 이루워 놓고 고희를 맞으리라 생각하면서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

왔는데 뒤돌아보니  무엇 하나 이루워 놓은 것도 없이 식충이처럼 나이만 칠십살을 꿰찼단 말인가?

이루워 놓은 것이 없으니 생을 헛살았다는 후회막급한 생각만이 가슴을 슬프게 한다.

 

고희!

고희를 입속에 밀어 넣고 되뇌여 보니 

" 아............! " 하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탄식만이 터져 나온다.

칠십이 가까워저서 그런지 근자에는 젊은이들도 나를 보면 듣기도 싫은  할아버지라고 자주 읊조린다.

"할아버지......!!!"

하기사 대추나무에 연걸리듯 벌써 손자 손녀가 주렁 주렁 열렸으니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때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손자 손녀가 아닌 젊은이들은 " 아저씨!"라고 불러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젊은사람들은 내 기분은 아랑곳하질 않고 한사코  할아버지소리를 빼 놓지 않고 읊조린다..

할아버지.....!!!

늙는 것도 서러운데 어쩌면 열 받아 저승에 빨리 입적하라고 볼 때마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듣기 싫은 할아버지 소리를  듣노라니 불현듯 어린시절 바지저고리에 흰두루마기를 걸치시고 멋스런 갓까지 눌러쓰신 

학처럼 위엄이 있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갑자기 떠 오른다.

그 시절 어른들은  "이십 전 자식이요 삼십 전 재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시면서 그 말씀을 실천이라도 하기 위해서

그러셨는지 자식들을 대부분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시집 장가를 보냈다.

과일나무도 비닐하우스속에서 재배를 하면 일찍 열매를 수확 하듯 그 시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손자 손녀들이 주렁주렁 해서 우리 보다 십년 아니 이십년이나 일찍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그시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환갑을 전 후 해서 저승으로 떠나셨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이십년 가까히 할아버지소리를

듣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왜 그 시절보다 수명이 이십년이나 길어졌단 말인가?

 그 이유는 아마도 보릿고개를 없앤 덕분에 의식주와 생활환경이 향상 돼서 배를 곯지 않고 잘 먹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70%가 농민이였던 가난한 그시절에는 쥐꼬리만한 논과 밭이 대가족의 생명줄이였기에 춘궁기 보리를 수확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식량이 떨어져서 조반석죽도 감지덕지 했으며 몇몇집은 초근목피로 근근득생 명줄을 이여갔다.

그렇게 굶기를 밤먹듯 했기에 그 때는 쌀밥에 고깃국만 원 없이 먹을 수만 있다면 평생 남의집 종살이도 해도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새마을 운동으로 반만년을 이여 온 보릿고개를 없애고 쌀밥과 고깃국을 원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셔서 지금은 국민들이 모두다 디룩디룩 돼지처럼 살이 쪄서 살을 빼려고 살과의 전쟁을 벌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못 먹고 못 입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식은 왜 또 그렇게 많이 낳았든지 한 집에 칠팔남매는 보통이 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을 세종대왕께서 만들어 놓으셨는데도 배울 시간이 없어서 국민들 대다수가 

문맹자였으니 산아재한인들 실천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게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면서도 무지한 어른들은 사람이 태어나면 의 식 주도 함께 생긴다면서 초가삼간 좁은

방에서 자식들이 올챙이처럼 바글바글 살았으니 아이들은 학교도 가기 전에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

그야말로 그 때는 명 짧은 놈은 일찍 죽고 명이 긴 자식들만이 남아 열일곱 열여덟살만 되면 대부분 시집 장가를 보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집 장가를 보냈으니 자연히 할아버지 소리도 이 지금보다 이십년 일찍 듣게 됐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 시절에는 대부분 환갑까지 사시는분이 드물었기에 환갑까지만 살면 장수 하셨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거하게 환갑상을 차려서 마을 잔치를 열어드렸다.

그런데 어제가 옛날이라고 지금은 환갑이 지나도 피둥피둥 젊어서 환갑잔치상은 커녕 할아버지 축에 끼지도 못하고 고희나 돼야

조금 늙었다면서 어른대접을 해주면서 고희연을 열어줄 정도로 세상이 무척이나 변했다.

 

반만년 동안이나 이여 온 가난을 몰아내고 오늘처럼 잘 살게 된 것은 1970년 4월 기적이 일어 났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1961년 5월 16일 " 고 박정희" 장군이 군사혁명을 일으켜서 무능하고 부?한 대통령을 몰아 내고 그 분이 직접 대통령으로 당선

돼서 1970년 4월 "전국지방장관 회의"에서 처음으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창시 하시고 그해 5월과 6월 새마을 가꾸기 사업

방안을 구체적인 마련하시고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고 쿨쿨 잠자고 있는 국민들 가슴에 새마을운동 등불에 불을 밝혔다.

 

그 때 새마을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요약해 보면

 

첫째 초가집을 허물고  슬레으트 지붕으로 개량을 했고 새로 짓는 주택은 서양식 현대화 주택을 짓게 했고

둘째  농기계등 첨단장비를 전국에 보급 했으며

셋째  좁고 구불구불한 황토길을 넓히고는 시멘트나 아스팔트길로 포장하라고 했으며

넷째  도시 및 도로미화사업을 지시 했으며

다섯째  새마을지도자 양성과 각종 교육을 실시 했고

여섯째  국민들의 정신을 개조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정신교육을 실시 했다.

 

새마을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십여년만에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훌훌 털어버리고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한 경제의 기적을 이뤄서 지금은 

세계에서 11번 째의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새마을운동으로 반만년의 가난을 몰아내고 나니 환갑만 지나면 저승으로 직행했든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명이 여름철

엿가락처럼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을 하드니 고희를 코 앞에 둔 지금은 남자는 평균 수명이 81,4세이고 여자는 86,7세까지

산다고 한다.

앞으로 생활과 의술이 더욱더 향상 되면 우리국민들의 수명은 몇년 더 연장될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의 수명대로 산다고

하면 앞으로 십여년은 더 살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 어린시절 일찍 결혼 시키고 환갑에 저승갈 때나 팔십까지 사는 지금이나 이십년간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는

마찬 가지가 아닌가?

 

고희를 입 속에 밀어 넣고는 잘근잘근 씹어보니 그 동안 살아 온 삶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가면서 인생은"초로인생"

이라는 말의 참뜻을 오늘에서야 비로서 알 것 같다.

한평생 오직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어느새 칠십이라니.......!!!

삶이 참으로 덧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가득 회한이 밀려 온다. 

내가 벌써 고희란 말인가?

지금의 나를 해에 비유한다면 서쪽하늘끝자락에서 노을를 퍼내리는 석양과 같고 계절에 비유한다면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소설(小雪) 절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고 나무에 비유한다면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무서리에 설한풍만

불면 속절 없이 떠러져서 한줌의 흙으로 되 돌아갈 때가 아닌가?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일장춘몽 봄날 꿈을 꾼 것 같다.

 

"인명호피(人命虎皮)"라고 했던가?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범은 가죽을 남긴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민족의 태양이신 세종대왕과 임진왜란 때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장군께서도 쉰넷에 하늘나라로 떠나는데

나 같은 무지랭이는 "고 박정희"대통령을 만난 덕에 그 어른들 보다 무려 십육년이나 더 살았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남길

것도 없이 그 저 밥만 축내는 식충이처럼 살아 왔으니 삶이 더 더욱 덧 없으면서 한켠으로는 그동안의 삶이 부끄러워지면서 

자괴감마져 든다.

지금까지 산 것도 많이 살았는데 식충이로 더 살아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차라리 이쯤에서 안락사를 하든지 아니면 고려장이라도 당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 안락사나 고려장....!!!"

"자문"을 해보지만 그 또한 용기가 없어서 답은 말도 못하고 비겁하게 "인명은 재천" 이라는 격언(格言) 뒤에 숨어서 사는날까지

살아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허망하기 그지 없다.

차라리 부딪쳐서 깨어지는 파도처럼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소멸됐으면 좋으련만 그 것 역시 요망사항일 뿐이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무릇 집을 짓는데도 아람드리 굵은 나무만 가지고는 멋진 집을 지을 수가 없다.

멋진 집을 지으려면 기둥과 대들보에 쓰일 곧고 굵은 나무도 필요 하지만 서까래와 외를 얽는데 쓰일 작은 나무 또한 반드시

있어야지만 멋진 집을 지을 수가 있기에 지금까지의 내 삶은 외를 얽는데 쓰이는 작은 나무라고 스스로 안위를 하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 겠다.

그동안의 삶이 아무리 무지랭이 같다고 해도 고장도 없는 세월을 되돌릴 수 있는 재주가 없기에 가버린 세월은 가슴속에

묻어 두고 남은 세월이라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가 가는 것이 그나마 한을 조금 덜 남기는  삶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어쩌면 나처럼 무지랭이 같은 삶이 있기에 훌륭한분들의 삶이 더욱더 빛나고 돋보이는 지도 모를 일이다.

 

고희!

그 동안 살아 온 삶을 잠깐 뒤돌아 보니 감개가 무량해지면서 만감이 교차 한다.

하루 나들이 길에서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칠십년 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두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잠시 눈을 감고 떠 올려보니 한동안 잊고 살아 온 수 많은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 간다.

어떤 이를 생각하노라니 갑자기 제주도 바다가 눈에 떠오르고 또 어떤이를 떠올리노라니 설악산이 떠오르고 또 어떤 이를

떠올리노라니 학창시절 경주로 수학여행 가든 일이 떠오르고 또 어떤 이를 떠올리노라니 징집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해서

삼년간 거시기 빠지게 고생한 일도 떠 오르고 그야말로 그동안의 삶이 별 것 아닌줄 알고 살아 왔는데 다시 떠 올려 보니

그 동안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는데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온 것도 하느님이 돌봐주신 덕인 것만 같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 온 수 많은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밀려 간다.

그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착하고 성실하고 이웃을 도와주는 선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였지만 약방에 감초처럼

몇몇 친구들은 양두구육(羊頭狗肉) 같은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사귈 때에는 "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를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고 하셨다.

"익자삼우"를 사귀라 하심은 정직하고 신의가 있고 지식을 겸비한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고 사귀지 말라는 "손자삼우"는

분수에 넘침을 즐겨하고 게으르면서 주색을 즐기는 사람을 뜻함이다.

일찍이 "익자삼우, 손자삼우"를 가려서 사겼드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인데 사람을 사귈 때에는

모두가 내 마음 같거니 하고는 사겼드니 손자삼우는 결국 나에게 손해만 남겨준 사람들이다.

머리 검은 짐승은 도와주면 끝내는 은혜를 원수로 가린다드니 그 말이 맞기라도하듯 사귀지 말았어야할 몇몇 인간들은 내

가슴에 상처만 남기고는 모두 떠나 버렸다.

어릴 때부터 성현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친구를 사귀었더라면 결코 손자삼우는 가까히 하지 않았을 것을.......!!!

후회막급한 일이지만 어쪄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며 저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인 것을.....!!!

유행가 가사처럼 만약 하느님이 내게 칠십년의 세월을 다시 빌려준다면 "손자삼우"만 가려서 사귈텐데.... 그러나 그런 요행을

바라란다는 것은 썩은 고목에서 새 싹이 돋아나기를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눈알이 빠져도 그만하길 다행이다"라는 속담처럼 일개 분대도 넘었든 죽마고우가 지금은 절반도 넘게 저승으로 떠나고 달랑

서너명만이 남아서 고희를 맞이 했으니 돌아오는 정월대보름날에는 달님께 두 손 모으고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겠다.

 

나는 언제 염라대왕이 부를까?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하긴 고희까지 살았으니 이제는 내일 죽어도 원도 한도 없고 지금 죽는다 해도 일찍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생을 다 하는 그날까지 하루를 젊은 날 열흘처럼 생각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가 구름이

손짓하며는 털끗만큼의 미련도 없이 따라나서리라.

 

내 어린시절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씀을 귀에 덕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자라났는데 칠십년이 지난

지금은 세월의 변화속에 속담 또한 변하는지 "왕대에서 왕대 나"고 " 개천에서는 용이 아닌 미꾸리가 난다"고들 씨부렁거린다.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으로 변한다해도 그렇지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기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어디 그 뿐인가?

옛부터 우리나라 부자는 삼대를 못간다고 했는데 요즘은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로 살고 사업을 한 번 실패해서 쪽박을 차게

되면 죽을 때까지 쪽박을 차고 죽는다고 한다.
그런 패단은 자본주의 산물이 아닐까?

더구나 경악을 금치못할 일은 옛날과 달리 요즘은 예의을 차리고 선행을 하는 착한사람들 보다는 갑질하는 금수 같은 못 된 

인간들이 잘처먹고 잘사는 미친 세상이로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무슨 장원급제라도 한냥 착각을 하고는 큰소리 탕탕치는 꼴불견의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우리민족의 앞날에 크나 큰 재앙이라도 내리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기 그지 없다.

 

정치에는 문외한인 내 눈에 비친 작금의 우리나라 여,야정치인들의 작태는 꼴불견을 넘어서서 참으로 가관(개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부귀공명에 눈이 멀어 떡에 기름 바르듯 세치

혓바닥으로 국민들을 현혹시켜 더 많이 자기 배에 태우고는 산으로 끌고 가서 바위를 받으려는지 위험천만한 짓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데도 많은 국민들은 남의 일인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만 하고 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 비일비재 일어 난다.

아흔 아홉섬을 가진 자(대기업)가 백석을 채우기 위해서 서민들의 한 섬을 빼앗으려고 온갖 추악하고도 악랄한 못된 짓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는데도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책임 있는 인간들은 그들에게서 꿀을 받아 처먹었는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고희가 코 앞으로 다가서니 만감이 교차 한다.

칠십년 동안 살아오면서 삶이 가장 보람스러웠든 시절은 언제 였는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삯을세에서 고생하다가 내집 마련하고 이사할 때일까?

아니면 자식들 교육시켜서 출가시 때가 가장 보람스러웠든 때일까?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이후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물리친 새마을운동을 하든

시절이 내 생애서 가장 보람스러웠고 즐거웠든 시절인것 같다.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도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집을 없애고 기와집 짓고

좁을 길을 넓혀 자동차나 경운기가 달릴 수 있게 길을 넓히고 볍씨를 개량해서 소득증대에 힘을 쏟아 우리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그 시절은 몸은 고달퍼도 진정으로 삶의 보람이 느끼면서 참으로 행복한 삶이였다.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몰아내고 이웃과 더불어 오순도순 정을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배에 살이찌기

시작하면서 오순도순 이웃간에 넘치든 정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기 시작을 하는가 싶드니 끝내는

금수 같은 정치인들이 국민들 편을 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삶은 나락의 구덩이로 빠져들기 시작을 한다.

지금은 경제도 거꾸로 가고 정쟁으로 해가 뜨고 정쟁으로 해가 지는 희망이 없는 나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오직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은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해서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쏟아부어도

통일을 이룩하기엔 역부족인데 나라의 지도자라는 몇몇 화상들은 불공에는 뜻이 없고 오직 잿밥에만 눈이 멀어 사상누각을

지으려고 하고 있으니 고희를 코 앞에둔 나로서는 앞길이 망막하기만 하다.

어떤 국민은 몇몇 정치인들이 꼴보기가 싫어서 뉴스는 아예 보지도 않고 있고 또 어떤 국민은 그들의 작태가 보기 싫어서

갈 수 만 있다면 이민이라 갔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들 한다.

반만년의 가난을 물리치려고 새마을 운동을 펼칠 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과 긍지를 느꼈는데 어쩌다가

지금은 이지경에까지 이르단 말인가?

참으로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몇몇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자신만이 대한민국의 희망이고 등불이라고 떠벌리면서

개울물을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처럼  나라를 망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후보가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런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이다.

첫째 국회의원을 백명으로 줄이고

둘째 시의원과 도의원을 없애고

셋째 사형제도을 부할시키고

넷째 전과 십범 이상은 무조건 동해바다에 수장 시킬 수 있는 사람

 

우리 국민들은 하느님을 신처럼 숭배하기에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면서 자나 깨나 하느님을 

칭송하고 있는데

하느님.......!!!

하느님은 정말로 존재하시기는 하신겁니까?

존재 하신다면 우리민족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똑똑하고 영명한 지도자를 한 분 점지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잿밥에

눈이 멀어 헛소리 하는 쓰레기 같은 허접한 후보에게는 냉수 마시고 정신차리라고 벼락을 한 방 내려 주시옵소서.......!!!

하느님께서 벼락을 내려주시질 않고 허접쓰레기 같은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면 인생 끝자락에 서성이는

고희들은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살아간단 말입니까?

이렇게 살바에는 차라리 낯 설고 물 설은 머나먼 남쪽나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랍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요지경 속이라고 해도 이것 하나 만큼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 것은 바로 한 해에 한 살씩 먹는 나이다.

"나이.....!!!"

나이는 부자든 가난뱅이든 학식이 높든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든 잘 낫건 못 낫건 벼슬이 높건 낮건 차별하지

않고 한 해에 한살씩 나이를 먹게 한다.

잘 생기고 벼슬이 높고 많이 배우고 부자라고 해서 일년에 반살을 먹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지렁이에다 가난하고 못생겼다고 해서

일년에 두 살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재벌총수가 하느님께 수백억을 재물을 바치고는  일 년에 반 살만 먹게 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손바닥만

닳을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나이야 말로 얼마나 공평한 것인가?

 

이팔청춘 젊을 때는 못생긴 얼굴이라도 거울에 구멍이라도 날듯 시도 때도 없이 드려다 봤는데 환갑이 넘고나니 거울과는

차츰차츰 거리가 멀어지드니  고희 코 앞까지 다가 선 요즘은 늙어가는 내 모습이 보기가 싫어서 거울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산다.

허나 오늘은 고희를 코 앞에 둔 내 모습이 어떤지 궁금해서 큰 마음 먹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속에는 김빠진 맥주처럼 후줄그래 늙은 멋대가리 없는 할아버지가 백내장이 끼였는지 촛점을 잃은 동태 같은 눈을 뜨고는

뻐질러 서 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검은머리는 한올 없고 마치 파뿌리를 거꾸로 세워 놓은듯 흰머리 뿐이고 넓은

이마에는 물길을 뚫어 놓은듯 내 천(川)자가 술 취한듯 길게 들어 누워 있고 이마를 받치고 있는 눈썹마져 절반은 흰 머리카락을

닮아가고 있다.

그 밑으로는 흐리멍텅한 동태 눈을 원한서린 휴전선의 철조망인양 다크서클(지방)이 혹인양 불룩 튀여나와 있고 다크서클 

탄력을 잃은 볼딱지에는 거미줄인양 잔주름이 쳐저 있고 얼굴 한복판에 기둥인양 솟아 있는 콧대는 수많은 바람이 들락거려서

땅굴처럼 어둑컴컴하고 그 밑에는 늙은 멧돼지 털인양 희끗희끗한 윤기 없는 구렛나루가 낡은 구두솔인양 돋아나 있고 흰빛을

잃는 누리끼리한  이빨은 뒷뜰 밤나무에서 알밤이 떨어지듯 몇개는 곧 빠질듯 흔들거린다.

젊었을 때는 잘생기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촌구석에서는 그런대로 봐줄만 얼굴이였는데 칠십년의 세월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은

끈 떨어진 갓처럼 후줄그래해저 있다.

"너도 이제는 볼장 다 봤구나....!!! "

구시렁 거리면서 뚫어져라 자세히 드려다 보니  볼품없는 그 화상이 바로 나 내 모습이 아닌가.......!!!

거울 속에 볼장다 본 늙은이가 나란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도 모르가 "아.....!!!"하는 탄식과 함께 밤송이처럼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는다.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 인데 얼굴이 저렇게 폭삭 늙어 쭈구렁 밤송이가 됐으니 내일이라도 저승사자가 이 세상 소풍이

끝났으니 가자고 하면 아무말 못하고 따라나서도 억울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 속 저 화상이 정말로 나란 말인가? "

눈썹을 비비고 눈을 화등잔처럼 치켜 뜨고는 다시 보지만 백번을 봐도 볼품 없는 거울속에 화상은 내가 맞다.

혹시 꿈은 아닌가 싶어 얼굴을 꼬집어 보니 거울속 화상이 인상을 쓰면서 아프다고 구시렁거리는 것을 보니 결코 꿈도 아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고희는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나이인줄로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어느새 고희라니......!!!

일순 말문이 막히면서 가슴이 셧터인양 덜컹 내려 앉으면서 그동안 삶이 다시 한 번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 간다.

 

"고려장 "

고구려는 한 때 고희가 되면 고려장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부모가 칠십이 돼서 늙고 병이 들면 지게로 져다가 광중(흙구덩이)에 버렸다가 죽으면 그대로 매장하는 풍습이다.

그렇게 시행하던 고려장이 금지된 이유는 지혜로운 고구려 임금님 덕분이라고 한다.

어느 해 나라에서 인재를 뽑기 위해 과거를 실시 했는데 공교롭게도 사대부의 자식과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막상막하라 누구를 뽑아야할지 고민을 하던 임금님은 두 선비 중 어느 선비가 더 지혜가 많은지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 문제를 내고는 열흘의 기한을 주면서 먼저 답을 알아오는 선비에게 장원급제의 영광을 준다고 했다.

임금님은 두 선비들에게 홍두깨처럼 깎은 막대기를 한 개씩 나눠 주고는 어느쪽이 뿌리쪽 인지 알아 오라는 문제였다.

막대기를 받아 든 두 선비는 임금님이 하사한 말을 타고 곧 바로 집으로 갔다.

부자인 사대부집 선비는 재력과 권력을 총 동원해서 백방으로 막대기의 뿌리쪽을 알아내기 위해 각고에 노력을 기우렸지만

어느 누구도 단 번에 뿌리쪽을 알아 내는 이가 없어서 전전긍긍 애간장을 태우고 있고 가난한집 선비 역시 막대기 양쪽 끝이

똑 같은 지라 뿌리쪽이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잠도 못 자고 고심 고심 하다가 삼일 후면 고려장을 치뤄야할 할아버지에게

막대기를 보여주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할아버지는 그 것을 알아내는 일이야 식은죽 먹기라는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자에게 답을 일러 줬다.

답을 안 농부의 손자는 삼일 후면 고려장을 치룰 할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는 곧바로 궁으로 달려 갔다.

사대부집 선비보다 농부꾼의 자식이 먼저 궁에 당도하자 임금님은 농사꾼 자식에게

" 어느쪽이 뿌리 쪽이냐? "고 묻자 농사꾼의 자식이 뿌리쪽을 가리키자 임금님은

" 그 쪽이 뿌리쪽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

농부의 자식은

"오늘 고려장을 치루실 할아버지께서 "막대기를 흐르는 시냇물에 던져보면 뿌리쪽이 아래로 흘러간다고 가르켜 주셨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시면서

"늙은이의 경륜이 참으로 지혜롭고나 당장 달려 가서 고려장을 치룬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너라 "

임금님은 말 한마리를 더 내어주시면서 당장 가서 고려장을 치룬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랍신다.

선비는 말을 달려 고려장을 치룬 할아버지 광중으로 달려 가니 천행으로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계셔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궁으로 오니 임금님은 할아버지에게 후한 상을 내리시고 선비에게는 장원급제의 영광과 함께 벼슬을 하사하시면서

" 고희면 나이가 들어 몸은 비록 늙었지만 경륜만은 지혜로우니 앞으로는 국법으로 고려장을 금한다 "고 선포하셔서 그 날로

고구려의 고려장은 없어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배운 고려의 고려장은 고희가 돼면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노동력을 상실함으로 노인들은 살림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고 식량만 축 내기에 부모를 지게로 져다가 산에 버렸다고 배웠다.

그러다가 고려장이 금지 된 것은 아들이 자식과 함께 고희를 넘겨 늙고 병든 아버지를 고려장을 하고는 지게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 오는데 손자가 아버지가 버린 지게를 다시 지고 오자 이를 본 아버지가 그 연유를 물었다.

" 내가 버린 지게를 왜 다시 지고 오느냐? "

손자 왈

" 살다보면 아버지도 고희가 되시면 그 때 이 지게로 아버지를 져다가 고려장을 하려구요 "

자식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그 말에 깨닳은 바 있어 광중에 버린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효도를

다 함으로서 고려의 고려장도 금지됐다고 배웠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알고 보니 동아시아 여러지방(인도 중국 일본)에서 고려장 같은 이야기가 고전처럼 떠 도는 것은 사실이지만

벽을 문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는 쪽발이 왜놈들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일본인들이 1920년대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찬탈하고는 우리민족을 폄하하고 우리민족에게 식민사관을 고취 시킬 목적으로 고려장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사실인듯

가르쳤다고 한다.

 

어찌됐든 며칠 후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을 맞이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삶은 나이 칠십줄에 들어서게 된다.

고희!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는 고희가 영 믿어지지가 않는다.

성현들께서 불혹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말씀하셨는데 회갑을 지나 고희 코 앞까지 왔으니 이제는 세상살이를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 살아갈 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인간관계는 옛날과 달리 충 효 예와 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아가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고희에 다가 선 요즘의 인간관계는 상호간 행복을 얻기를 바라지만 막상 관계를 맺으려면 행복감을 느끼기 보다는 심적으로

불안함 가운데 슬픔과 분노 모멸감과 배신감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것만 같다.

특히나 고희가 되면서 할 일이 없어지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득은 없어지고 몸은 나약해지자 돈독하든 배우자와의 사이도

조금씩 멀어지고 형제나 가까웠든 이들로 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 해지는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환갑이 지나면 노련함이나 숙련됨이 나아지다가도 고희가 지나고나면 기력이 쇄잔해지고 나약해져서 사고가

편협스러워지는 것만 같다.

작금의 우리나라 사태를 보면서 지난날 과는 달리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렵고 불안해 진다.

그렇다고 마음에 빗장을 걸고 두문불출한다는 것은 나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기에 친구를 만나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중에 꼭 한 두 명은 편향적인 이념대화로  목소리를 높혀  결국에는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났기도 한다.

고희는 가까워 오고 시국 또한 불안해서 그런 것인지 요즘은 사람들 만나기가 두렵게만 느껴진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친구들은 십여년 전 직장을 퇴직을 하고는 연금으로 생활을 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뒤늦게 경비나 힘이 비교적 들지 않는 주차일이나 폐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소일을 하고 있고 몇몇 친구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빈둥거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고희가 됐으니 앞으로 몇년이나 더 일을할 수가 있을까?.

우리나라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80세가 조금 넘는다고 하니 앞으로 십년이면 우리도 삶도 마감을 하겠지.

 

아침 해가 뜰 때 물을 마시고 해가 지면 그 때 물을 마시라고 하면 하루 낮도 무척이나 길지만 세월이 나이 속도로 달려서

그런지 요즘은 한달도 눈 몇번 껌뻑거리면 흘러가 버리는 것만 같다.

고장도 모르는 세월아 제발 천천히 흘러가려마.......!!!

 

 

 

 

 

                                                                       - 끝 -

 

 

 

 

                  2017년    3 월   1 일           길    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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