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만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천문학 연구로 태양과 지구 간의 거리를 알게 되고 8대 행성의 궤도의 거리를 알게 되어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모르고, 지리학으로 강의 명칭과 소재는 알아도 생명수 얻는 방법은 모르며, 인종학과 인류학을 공부하여 거처와 환경에 관한 과학적 설명을 듣게 되었지만 인생의 근원과 살아가는 법은 들을 수 없다. 이렇듯 세상의 지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되는 법과 천국에 들어가는 법을 배울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늘 가는 길을 알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늘에 대한 부족한 생각 두 가지를 하고 삽니다. 과학적 규명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맹신을 하는 것이 그 첫째이고, 단지 아름다운 문학적 상상력에 기인한 낭만성이 바로 둘째입니다. 이 두 생각은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하늘의 창조주와 주인이 누구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에 근거한 하늘은 아주 우연히 진화한 영장류의 임시 거처로서의 행운에 불과하고, 문학에 나오는 하늘은 동화적 상상력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분명히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곳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입니다. 하늘에는 신비가 있고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바라 보고 있는 것만으로 하늘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입이 딱 벌어진 채로 하늘만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는가? 주님은 지금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 받고 은혜받은 그리스도인 중에 교회 안에서 마냥 하늘만 쳐다 보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이땅에서 사시며 가르쳐 주신대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신비가, 성령의 체험이 감격스럽고 좋을지라도 하늘만 쳐다봄이 하늘바라기, 주바라기로 사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삽시다. 그러면 우리도 주님처럼 하늘로 올리워 가게 됩니다. 주님처럼 삶이 참된 준비요, 예약임을 믿고 살아갑시다.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그 하늘은 우리의 소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