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하셨다
김해 동림사 화엄스님 이야기
범어사에서 1백2십여명이 같이 공부를 하다가 백중 해제후에
6~7명의 스님들이 기장으로 다니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날이 어두워 아무집이나 두드려 하룻밤 묵고 가게 되었죠.
어느집 문을 두드리니 백발노장이 나오더니 우리를 보자마자
“아이구 대선사들 오셨습니다”하며 극진하게 대접을 하더군요.
그 노장은 얼핏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죠.
공양후 모두들 피곤했든지 잠이 들었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마루에 걸터앉아 달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장이 부채질을 하면서 나오더니
“모두들 자는데 여기 눈밝은 수좌가 하나 있는가”하고 말을 걸어오더군요.
그러더니 나에게 선방수좌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을 했죠.
그랬더니 이 백발노장이 “부처님께서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하셨는데,
일처전심만 해도 될 것을 왜 삼처전심을 했는가?”고 묻는 겁니다.
삼처전심이란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 빙그레 웃었던 것과
지나가는 가섭에게 다자탑의 자리 반쪽을 내어 주어 나란히 앉았다는 것과
부처님입멸로 슬피 우는 가섭에게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발을 내밀어 보이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뜻을 알지못해 대답이 궁색하다보니
선방수좌라고 말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비참한 심정이었죠.
그 노장은 “겉만 멀쩡했지, 모두들 밥만 축내는 것들이구만”하고는 벌렁 눕더니
눈을 뜬 채 코를 골며 자더군요. 그 노장이 나에게 준 충격은 너무나 커
새벽에 살짝 빠져나와 철로따라 걸어서 범어사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그 노장이 던진 화두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걸망지고 길을 가다가 상여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동네어귀마다 상여를 보관하는 집이 있었거든요.
상여집에 들어가 좌선하고 앉아 있으면 절대적인 고독을 느끼게 되죠.
배가 고프고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가만히 앉아 있자니 잠이 오더군요.
잠속에서 상여집을 지키는 귀신이 말하기를
“귀하신 손님이 왔는데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 어떻게 하지요?“하는 겁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하길, ‘내가 저놈을 봐야 하는데 저놈이 나를 보다니.
내가 공부가 없으니 저놈이 나를 보는 것이니 큰일났다’했어요.
공부를 했다면 내가 무아경에 들어가 귀신이 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을
겉모습만 중이지 속마음은 속인과 다를 바가 없구나
하고 정신을 차려 다시 화두를 잡았죠.
‘일처전심만 해도 되는데 왜 삼처전심을 했을까’하는 화두를 계속 참구했지요.
마음을 가지고 말한 것 같은데 마음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마음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이 세상에 온 일도 없을 것이고,
살아도 산 바가 없고 죽어도 따라가지 않는 마음이 있을텐데,
도대체 그 마음이 뭔가 하고 간절히 참구하다 잠이들면
잠속에서도 화두가 뚜렷하게 있거든요.
그렇게 화두삼매에 들어 있으니
아까 그 귀신이 “이 스님이 어디갔느냐”고 밤새도록 찾아요.
참 희안한 일이죠. 화두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고 힘을 얻게 되었죠.
3, 4년정도 공부를 하다가 범어사에 돌아왔지요.
어느 날 새벽종소리가 뎅- 하는데 마음이 휙 돌아가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아, 이거 뭔가 되었구나’ 싶어 기장의 그 노장을 찾아갔지요.
바로 전날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가부좌를 한 상태로 이불 호청이 덮어져 있더군요.
독경을 해드리고 아들에게 덮어놓은 것을 걷어내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역시 눈을 뜨고 돌아가셨더군요.
내가 그 시신을 보고
“당신께서 4년전에 나고 죽음이 없다고 했는데 왜 금일에 죽음이요?”
했더니 손을 들어올리더군요. 내가 또다시
“그러면 그 손이 없었다면 무엇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실겁니까?”했더니
손을 더 높이 올리더군요.
거기서 또 한방 얻어 맞은 겁니다.
그게 바로 열반인 것입니다. 말그대로 자유자재 한 것이죠.
부처님께서 관밖으로 발을 내놓은 것과 같은 것이죠.
생사가 본래 없는 겁니다.
생사가 뭐냐 하면 사랑하는 것, 애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미워하는 것,
사량 분별, 학문있다, 교양있다, 잘났다, 못났다 하는
그 생각들이 나고 드는게 전부 생사입니다.
그러나 그건 전부 꿈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것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내가 그 감정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내가 그것들을 끌고 가는게 아니라 그것들에 휘둘리면서 사는 이상
그것은 아무 보람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염불하는 이는 염불하고
참선하는 이는 참선하며
깊은 몽중에라도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가 제대로 익으면 염불하고 참선하느라고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식도 잊어버리고 학문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마침내는 텅 비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가 망상이므로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학문이니 교양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꿈이며 나를 가리고 있는 장막일 뿐입니다.
그 장막을 벗기고 맑히는 것이 공부입니다
.
그 칠흑같은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참선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염불을 해서 업장을 녹이자고 하는 것이 공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몽중에도 염불이 나오고 몽중에도 화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화두 염불마저도 잊어버리고
나라는 생각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오각성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주삼라만상이 내 마음안에 들어있게 되는 것이고
바로 불(佛)이 되어 가는 것이죠.
부처님이 마음이 여기 있다고 설명한 적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역대 조사가 마음을 전한 바도 없고 설명한 바도 없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것과 관련되어 간단히 예를 하나 들지요.
어떤 남편이 엿을 먹고 있는데 한번도 엿을 먹어보지 못한 아내가
“여보, 엿맛이 어떻소?” 물었어요. 그 남편이 “맛있고 달콤하오.”
그래도 그 부인은 엿맛을 모르겠거든. 또 물었지.
“여보, 엿맛이 어떻소?” 그러자 그 남편 하는말 “묻지 말고 직접 먹어 보구료”
그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엿을 먹고 있을 때
남편이 묻기를 “여보, 엿맛이 어떻소?” 하니까
그 부인이 빙그레 웃었답니다.
허허. 이것이 바로 삼처전심입니다.
여러 불자님들도 이 삼처전심의 화두를 풀어
달콤한 엿맛을 보듯이 마음자리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원효사 : 원효
출처 :원효사 원문보기▶ 글쓴이 : 원효
사진 출처 不二家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무엇일까요 마음~ ~마음을 생각하며 눈물이 납니다
일소보살님 공부잘하고 갑니다 감 사드려요 무량행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