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어떤 가톨릭 모임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된 30대 커플이 있었다. 여성은 가톨릭 신자로 차분하고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데 비해, 여성보다 연하로 보이는 남성은 ‘나는 무신론자로 이런 모임에서 나 자신을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태도를 온 몸으로 내뿜는 인상이었다. 6개월이나 지난 며칠 전, 여성 쪽으로부터 결혼 문제로 상의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스치듯이 잠깐 만났던 터라 두 사람에 대해 아는 정보도 별로 없었지만, 둘의 관계에 이미 어떤 걱정스러운 기운이 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사람(안젤라*수영-가명)은 대학 동문으로 7년 넘게 교제를 해 왔는데, 나이도 있고 앞으로의 거취 문제도 있어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혼인 날짜를 잡으려 만난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 남성쪽 부모가 재정 형펀상 혼사를 1년 반 정도 미뤄야 겠다는 말씀을 꺼내 결혼이 크게 동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까지는 경제형편이 좋았는지 수영은 강남 모처의 빌라에 살던 시절이 그립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가세가 기울자 빌라를 처분하고 인천에 작은 건물을 얻어 입대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졌고, 수영의 부모는 아들을 좀 더 반듯하게 결혼시키고 싶으시다며 그 건물이 팔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좋은 학벌에 직장까지 반듯한데,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 결혼을 미룰 사유로 보이지는 않았다.
수영 부모님의 본심은 안젤라가 외모로서나 가문의 형편으로나 아들의 배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그게 마음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견례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표출되고 말았다. 종종 상견례 자리에서 혼사가 어긋나는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안젤라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고, 상견례 날 눈물로 밤을 지샜다는 어머니는 안젤라의 눈치만 살피고 계신다고 했다. 눈앞에서 시어른이 될 분들로부터 내 딸이 탐탁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어느 부모가 결혼시키고 싶으시겠는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으시다니, 안젤라의 부모님이 참느라 무진 애를 쓰셨겠다고 말하니, 안젤라는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님이 아니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불거진 부모님의 무례와 일방적인 혼인 연기 결정에 대해 드러낸 수영의 태도가 더 중대한 문제였다. 상견례 후 두 사람만 남았을 때, 수영은 자기 부모의 태도를 두둔하면서 결혼식 연기도 우리 두 사람을 위한 것이니 수용하고 기다리자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헤어진 그 날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수영은 먼저 연락을 취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안젤라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이 안젤라가 사정하다시피 하여 2번 만났지만, 이야기는 더 진전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아 온 수영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안젤라와 수영 두 사람이 연애를 통해 각각 어떤 면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말해 보라고 하자, 안젤라는 이렇게 말했다.
수영씨는 어려서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로 최고 대학에 입학했고 지금까지의 진로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댁에서는 아들이 최우선 순위에 있었으니까요. 특히 어머니는 청소년기부터 치맛바람이 대단한 분이셨대요. 매 학기 담임선생님과 거의 친구처럼 지내셨다고도 하고. 수영씨가 고시 준비를 했을 때, 보통은 그냥 학교 앞 고시원에서 공부하잖아요. 수영씨보다 한 살 많은 누나가 있거든요. 수영씨 어머니는 아들이 고생스럽게 공부하면 안 된다며 학교 앞에 아파트를 얻고 대학 다니던 누나를 휴학하게 해서는 뒷바라지를 시키셨대요. 연수원에 다니게 되자 다시 연수원 앞에 집을 얻어 누나와 같이 살리고. 수영씨는 성격이 워낙 강직하고 자기 틀이 분명한 사람이라, 친구도 많지 않아요. 저도 이 친구랑 교제하면서 친구가 많이 줄어든 면이 없지 않아요. 연애하면서 저는 누구에게서보다 수영씨로부터 사랑받았다고 생각하고, 수영씨도 저를 만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조금은 여유롭고 편안해 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수영씨랑 헤어지면, 제가 누군가와 만나질 수 있을 싶은 불안감이 들어요.
아들의 ‘사회적인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이미 사라진 과거의 행복을 곱씹으면서, 현재의 불행쯤은 미래의 행복이 보상해 주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모. 그런 부모로부터의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을 여전히 달고 다니는 아들. 이런 가부장제에서 헌신하기를 자처한 누나. 7년간의 사랑을 놓치는 것이 두려워 가부장제의 거대한 틀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약혼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된 ‘어른’이 되는 일은 인생 전체를 걸고 나서야 할 지난한 자기 성장 작업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특히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결혼에서 ‘독립’과 ‘공존’에 대한 철학이 동의되지 않는다면 난파선에 올라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모든 관계의 목적은 의무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창조한다는 데 있다. 특히 결혼이라는 관계에서 마련되는 기회는, 성장할 기회, 자기표현을 충분히 할 기회, 자신의 삶을 그 최고 잠재력으로까지 끌어올릴 기회, 당신이 지금껏 자신에 대해 가져왔던 모든 잘못된 생각과 열등한 관념들을 치유할 기회, 두 영혼의 교류를 매개로 신과 긍극적으로 재결합할 기회를 창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