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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번역하신 『근친성폭력, 감춰진 진실』을 읽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도움을 청하고자 무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인데, 제 친구가 청소년기부터 친아버지에게서 성폭력을 당해 왔다고 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지만, 어머니는 믿어주고 도와주시기는커녕, 악마가 씌었다느니 정신이상이라느니 오히려 제 친구를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고 비난하여 더 화가 나고 힘들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책을 읽어 보니, 미국에는 근친 성폭력을 전담하는 기관들이 많이 있는 것 같던데,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요? 제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 친구를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나는 이런 답변을 보내 주었다.
*** 같은 친구가 곁에 있으니 친구가 참 든든해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그 친구겠지요. 제 책을 읽었다니 잘 아시겠지만, 자녀를 학대하는 아버지가 존재하는 가정의 구조상 아마 어머니는 가정이 파괴되는 것이 두려워, 딸과 절연할지언정 남편과의 직면하기를 회피하고 침묵하는 것입니다. 친구 어머니도 상황을 변화시킬 용기를 내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약자인 동시에, 또 다른 방식으로 친구와 같은 근친강간 피해자를 학대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근친 성폭력 문제를 전담하는 기관은 없고, 경찰서와 연계 아래 가정폭력 쉼터가 그 문제도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친구가 가족들로부터 벗어나 기관의 도움을 받으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그런 조치를 취하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성인이니 이제 독립한다는 마음으로 용단을 내려, 쉼터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격려해 주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연락 주십시오. |
요즘은 직장이나 기관마다 정기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가끔 그 교육에 초대되어 강의를 하다보면, 다양한 저항에 부딪히곤 한다. 예방교육이다 보니 각종 사건, 사고 사례를 많이 들게 되는데, 수강자들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고 나면 성에 대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인식만 늘어난다거나, 인간관계를 너무 폐쇄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항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질문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아름답고 건강한 성’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우리 각자는 나름의 긍정적인 성 인식을 정립하고 있을 터이다. 혹시 생각해 보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립하시기 바란다.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직면해 보자. 갖가지 사연으로 청소년 쉼터에 오게 된 청소년들의 6,70%가 친부(또는 아버지 역할을 떠맡고 있는 인척 남성들)로부터의 성폭행에 시달리다 가출한 경험을 갖고 있다. 아동(청소년)기에 근친남성들로부터 당한 성폭력 상흔은 결국 여성들의 삶을 무기력하고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런 경험을 한 청소년들은 자기 잘못도 아닌 일에 대해 죄의식과 피해망상, 우울감에 빠져 유약하고 자기 파괴적 심리를 지닌 채 성인이 되고, 그러다보니 청소년 쉼터 경험은 다시 성인을 위한 가정 폭력 쉼터 경험으로 악순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성폭력의 흔적은 개인에게 평생 지속될 뿐 아니라, 다음 세대로까지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누구에게도 비밀로 할 이유가 없고,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성과 관련된 모든 행동.
이런 ‘아름답고 건강한 성’ 인식을 정립하고, 또 가정이나 직장, 모든 생활환경에서 우리 각자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만이 근친성폭력이라는 가장 잔인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