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실천하는 ‘탈핵(脫核)’
가여연 연구교수 박 은 미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어느 여름날. 아파트 단지 전체가 초저녁부터 정전(停電) 된다는 소식을 듣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을 때 준비하여 이른 식사를 했다. 미리 예고된 일이기에,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은 전기 없이 지내는 체험을 해 보자”고 야무진 선언을 했지만, 그날 밤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 상태였다. 여름이어서 8시 정도까지는 각자의 활동이 가능했지만,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온 가족이 거실에 누워 돌아가며 이야기하다 잠들었다.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북서부 해양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붕괴사태는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일본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이웃에 위치한 우리나라 역시 직⋅간접 피해를 입고 있다. 아니, 지구촌이라 불리는 지구 전체에서 일본 원전 사고의 피해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일본 수입 식품은 먹지 말라거나, 국내산 해산물도 가능하면 안 먹는 게 좋다거나, 현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걱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의 심각한 피해를 인식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원래 서양인에게 주로 발생했던 질환인 갑상선 암이 동양권에서 급격히 발병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대기로 전파된 핵 오염물질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포감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공식 발표는 되고 있지 않지만, 이미 일본의 육상⋅해양생물계에서는 여러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시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소를 더 이상 건설하지도 말고, 차츰 원전을 포기해 나가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 각국은 핵발전소 운영을 축소,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부터 아시아와 비OECD 몇 나라를 제외하고 주요 국가의 핵발전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2011년 이전에 선진국에서는 ‘노후 원전 수명 연장’만이 논쟁이 될 정도로, 핵발전 업계는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폐쇄비용 지출을 지연해 보고자 할 뿐, 다수는 신규 투자를 포기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전력의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핵발전의 비중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했는데, 2009년에 14%였다. 이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약 2%에 불과한 수준”(표 참조, 프레시안 2월 21일자,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2009년 기준,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한국, 독일, 6개국 전 세계 핵발전의 73.2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독일이 ‘탈핵’ 선언을 했으니 이제 ‘원자력 5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한국은 현재 21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전체 전력에서 원자력발전의 비중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전체 발전량의 약 34%) 나라이다.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잦은 고장이 이미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듯이, 발전소의 기술적인 문제나 재난 등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력공급 차질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OECD 국가로 탈핵 이행국의 하나인 독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원전의 안전성에 관심을 갖고 단계별로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2022년에는 완전한 탈핵사회를 이룰 것을 천명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윈회는 천주교창조보전연대, 탈핵에너지 교수모임 등과 함께 2012년 2월 중순 독일의 에너지 중심 도시와 환경단체 등을 견학하면서, 한국의 탈원자력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했다(가톨릭신문 기사는 <독일에게 묻다>로 줄여 표기함). 독일이 탈원전을 택하게 된 배경은 장기간에 걸친 대안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를 위한 꾸준한 투자, 에너지와 기후문제를 환경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관심 고취와 정책수립 등이 원자력에 대체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가톨릭신문 3월 4일자, <독일에게 묻다 1>). 견학단 일행이 독일의 각 지역을 방문한 뒤 체득했다고 강조한 것은,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갖가지 아이디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에너지 씨스템을 찾아나가는 공동체의 노력,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순행하는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 수립의 필요성(가톨릭신문 3월 25일자, <독일에게 묻다> 4)”이었다.
원자력의 뛰어난 효율성 이면에 엄청난 재앙이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탈원자력/탈핵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면 사람들을 바로 ‘실질적인 대안’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물론 탈핵을 위한 대안 찾기에는 정부와 지자체, 환경단체와 각 개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녹색성장을 외치면서도 신재생에너지 활용은 1.4%에 불과한 현 상황에 침묵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더 큰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들은 각자의 생활양식부터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는 탈핵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 일, 나의 에너지 사용 상태부터 점검하고 절약을 실천하는 일을 시작하자. 그러니 탈핵의 ‘대안’은 우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셈이다.
● 글쓴이 : 품심리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