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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그렇다’는 응답률 |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그렇다’는 응답률 | 차이 |
두발 길이나 모양 제한 경험 | 66.1% | 39.6% | 26.5%p |
면티/양말 색깔 제한 경험 | 32.2% | 17.5% | 14.7%p |
치마/바지 길이, 폭 제한 경험 | 68.7% | 55.4% | 13.3%p |
화장/미용제품 제한 경험 | 71.8% | 62.1% | 9.7%p |
수업외시간 핸드폰 제한 경험 | 84.0% | 74.4% | 9.6%p |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경험 | 23.2% | 11.5% | 11.7%p |
직접 체벌 경험 | 32.4% | 23.5% | 8.9%p |
간접 체벌 경험 | 40.6% | 30.5% | 10.1%p |
강제성 서약서, 동의서 경험 | 24.4% | 14.7% | 9.7%p |
이에 반해, 학생회 활동, 학칙 제개정 시 의견 수렴, 표현의 자유, 차별, 휴식시간 등에 관한 결과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 사이에 거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신체와 사생활을 억압하는 학교 규칙을 개선하는 효과는 컸으나, 그 외의 영역에서는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두 가지 설명을 떠올려 본다. 첫 번째로, 초기에 경기도나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을 때 “두발자유조례가 생겼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두발자유 등은 학생인권조례의 대표적인 내용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즉 학생인권조례의 내용 중에서도 학교 현장에서 인지도도 높고 준수에 대한 압력을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두발복장자유나 체벌 정도였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나 휴식권 등의 권리들을 학생인권조례 안에 그런 내용이 있는 줄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 사회적인 인지도나 지지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번째 설명은 조례의 제도적 집행력상 소극적인 인권 보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례는 법률에 비해 강제 수단이 적고, 상위법이 정한 학교 운영 구조 등을 거스를 수도 없다. 예컨대 학생인권조례에서는 학교 운영이나 교육 정책에 대한 학생의 참여권을 선언하고 있긴 하나,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할 수단은 미비한 편이다. 따라서 조례의 효력은, 학교에서 문화나 학칙에 의해 학생의 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한정되기 쉽다. 학교-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는 하지 못하도록, 소극적 보장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학교가 더 적극적으로 인권 보장을 위해 나서야 하는 차별 시정이나 참여 보장 등은 조례가 유의미한 작용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아가서 우리는 비록 2016년 국가인권위 조사 등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이 유의미하게 인권 현실이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두발규제나 체벌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학생인권 문제조차 해결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몇 년을 돌아봐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인 서울, 경기, 광주, 전북 등에서도 소지품 압수,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간자율학습 등을 고발하고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학생인권조례는 심각한 수준이던 학생인권 상황을 어느 정도 개선하고 인권 침해를 감소시키는 효과는 낳았다. 그러나 학생인권의 세부 이슈 중 어느 하나라도 완전히 해결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학생인권조례 시행으로 인해 ‘이제는 학생인권 문제 다 해결된 것 아니냐, 많이 좋아진 것 아니냐’라는 사회적 착시 현상이 생겨, 조례가 없는 지역의 열악한 인권 상황이 비가시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3) 학생인권조례가 뿌리 내리고 퍼져나가기 어려웠던 이유
이처럼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와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가령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해당 지역이라도 완전한 두발자유화가 된다거나 하는, 기대만큼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2013년 전라북도에서의 제정 이후 7년간이나 학생인권조례가 다른 지역에서 제정되지 못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생인권조례의 한계는 조례의 내용상 또는 조례라는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도 있다. 다만, 이에 더하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여건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한다.
2010년 최초의 제정 이후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감’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러 언론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찬반 사설을 싣는 등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됐다. 그런데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나섰다. 교육부가 서울, 전북 학생인권조례 등에 대해서 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초·중등교육법〉 및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악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학생인권조례가 최초로 시행되고 뿌리 내리기 위해 중요한 시점이었던 2010-2013년 기간,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상위법 위반이라거나 소송으로 곧 무효화될 거라는 등의 악선전이 횡행하였다. 비록 관련 소송에서는 학생인권조례의 유효성, 적법성을 인정받는 결과가 나왔지만, 조례 시행 초기 교육부의 비협조를 넘어선 이러한 훼방은 학생인권조례의 힘을 빼기 충분했다. 서울에서도 2012년 새로 취임한 보수 정파 측의 문용린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려고 하거나 전혀 시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법률 및 시행령의 개악은 실질적으로 학생인권조례 정착과 확산에 악영향을 미쳤다. 학칙이 학교장의 재량 사항으로 규정되고 두발규제 등이 학칙 기재 사항에 예시되면서 반인권적 학칙을 바로잡기가 더 어려워졌다. 개악 이후 제정된 전북 학생인권조례 등은 상위법 위반 문제를 피하기 위해 두발 관련 조항에서 완전한 자유를 명시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두발규제 규정을 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조문을 손질해야 했다. 충북 학생인권조례는 주민발의까지 이루어냈지만 상위법 위반이라며 발의를 거부당하고 법원에서도 패소하고 말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의 정치적 악조건 속에 학생인권조례 운동은 충북, 경남 등지에서 실패를 겪으며 정체 상태에 빠졌다. 일부 지역에서 주민발의나 교육감 추진 등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논의되거나 학교인권조례 등의 유사학생인권조례들이 논의되었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반면 동성애 혐오, 청소년 혐오 등을 앞세운 차별금지법/인권조례 반대 세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하에 결집되어 지역의 인권기본조례들을 폐기시키는 등 목소리를 키워갔다.
학생인권조례가 확산되지 못한 것에는 한국의 고질적인 서울/수도권 중심적 조건도 한몫했다. 지자체의 조례는 해당 지역 내의 일로만 여겨져 아무래도 사회적 관심을 잘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서울·경기의 수도권 외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은 고립되거나 무관심 속에 이루어지기 십상이었다. 이런 조건은 기득권 세력에 더 유리하게 작용했고, 조직력 등이 부족한 인권운동 입장에서는 정치적 지지를 만들어내거나 여론을 움직이거나 운동을 확대하기 어려운 여건에 놓이곤 했다. 각 지역에서, 지자체 의회 등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해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여러 어려운 조건들과 반동을 이겨내기에는 청소년인권운동 측의 역량이 모자랐다. 그렇게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4) 제도화에 관련된 고민들
마지막으로,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제도화를 목표이자 수단으로 삼은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해보고자 한다.
‘학생인권조례’(또는 ‘학생인권법’에도 해당되는데)라는 제도의 입법이 운동의 목표로 내세워지면서, 운동의 요구와 의제가 해당 법으로 모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는 양면성이 있다. 장점으로는 두발자유, 체벌반대, 종교자유, 강제자율학습반대, 학생자치보장 등으로 산발적으로 제기되던 의제들을 하나의 의제로 묶어내게 됐다는 점, 그러한 학생인권 문제들을 해결할 대안이 명확해졌다는 점이 있다. 단점은 학생인권조례라는 의제가 전면에 나서면서, 실제로 학생들이 겪게 되는 구체적 인권침해 문제들은 덜 언급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동이 제도를 다루게 되면서 현장에서의 인권침해 경험과 세부적 이슈와 거리가 생기게 된 것인데, 이 사이를 잘 연결하고 활동을 만드는 것이 운동의 과제라 하겠다.
그 연장선상의 평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소위 ‘진보 교육감’들의 대표적 정책으로 인식되면서(그러나 소위 ‘진보 교육감’ 당선 지역은 2014년 선거에서 13곳, 2018년 선거에서는 14곳에 이르지만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이런 인식은 허위적이다.)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어서 부작용이 생겼다는 우려도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실제 내용이나 효과와는 다소 동떨어진 정치적 공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개 운동이 현실을 바꾸려고 할 때 정치적 갈등을 거치게 되고, 애초에 입법·행정 어떤 영역에서든 정책을 바꾸는 과정은 정치적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실의 인권 문제보다도 일각에서 외치는 색깔론, 혐오표현 등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는 정치적 쟁점과 전선이 부적절하게 형성되었기에 문제이다. 즉, 변화의 과정에서의 정치 쟁점화는 불가피한 것이고, 문제는 어떤 식으로 쟁점이 형성되고 다루어지는지 개입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운동의 입장에서는 더 제대로 정치적 쟁점을 형성하고 여러 운동과 연대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학생인권조례라는 제도를 운동의 중심에 두게 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직후 일부 단체들에선 교육청이 해야 할 조례 홍보 활동을 한다든지 교육청의 해결을 기다린다든지 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운동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활동의 결실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긴 했지만, 제정 이후의 개입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충분한 준비나 논의가 부족했다는 반성을 해본다. 이는 운동 주체의 불찰이라기보단, 운동의 자원과 역량상 대비할 수 없었던 부족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제라도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돌아보고 평가하며, 조례 제정 이후의 운동의 방침이나 과제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운동이 바꾸어낸 구조이며,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환경이다. 그런데 운동은 그 환경에 머무르기보다는 변화된, 더 우호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실천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룩한 경로라고 해서 여러 지역에서 똑같이 조례 제정을 목표로 삼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와 한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첫 조례 제정 이후 10년이 지나고 다섯 번째 조례가 겨우 제정된 지금, 그 다음을 내다보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