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월미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작은 섬이 1883년 개항이후에 이 나라 근세사의 험한 풍파를 온몸으로 겪은 섬이기 때문이지요. 월미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된 후 사진으로 남겨지기 시작한 월미도의 모습에는 너무도 소중한 역사의 순간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1897년 영국의 여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여사가 촬영한 월미도의 모습입니다. 월미도의 정상에 아주 커다란 건축물이 보이는데....이 건축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포대(砲臺)였을까?> 기록에 의하면 당시 조선의 정부는 1902년 8월 14일 월미도 정상에 야포 2대를 설치하고 9월 15일 부터 4년간 운용한 후 1906년 8월 1일 폐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외국의 군함이나 기선들은 수심이 앝은 제물포 내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월미도앞의 외항으로 입항하여 정박했는데 이런 군함이나 기선들이 오는 경우 예포를 쏘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예포의 발사는 당시의 국제적 관례이며 조선의 존재감과 국위를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포대가 설치되기 5년전인 1897년에 촬영된 것이므로 이 미스테리 건축물이 포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진을 더 보시지요.
이 사진은 비숍여사의 사진보다도 더 이른 시기....1885년경의 모습으로서 개항 후 2년이 지나 비좁아진 제물포 항을 넓히기 위해 부두축조공사를 하고있는 모습입니다. 역시 월미도 정상에 미스테리 건물이 당당히 서 있습니다.
이 사진은 1900년경에 프랑스 신문에 소개된 로즈섬(월미도)의 모습으로서 제물포항의 부두 축조는 완료되어있고 월미산의 건물도 그 모습이 건재합니다.
이 사진은 1902년의 모습입니다. 중앙 왼쪽의 건물이 일본 영사관이며, 가운데 건물이 1888년에 지어진 최초의 호텔 "대불 호텔" 입니다. 여기에도 월미산 정산의 건물은 어김없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진은 1904년에 촬영된 것으로 만국공원(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월미도의 모습입니다. 이 때도 건물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시간을 더 소급하여 올라가 거의 개항직후인 1883년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이 사진에도 그 건물은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 건물이 1902년에 설치되었다는 포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사진은 1899년 경인철도 개통당시 인천역에서의 행사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때까지도 월미도 정상의 건물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 사진은 1903년에 외국인이 촬영한 모습으로서 제물포의 선착장에서 바라 본 월미도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이 모습과 아래의 사진이 미스테리 건물이 나타나있는 마지막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의 사진은 1903년에 건어물(북어) 하역장에서 바라본 월미도의 모습입니다.
위의 사진은 1904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 부터 그 미스테리 건물은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 사진의 년대가 1904년이 맞는다면 포대를 폐기하였다는 1906년 이전에 이 건물이 사라진 것이므로 역시 포대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행궁(行宮)일까?> 도대체 이 건물은 무엇이었을까? 세워진 위치나 건물의 규모로 보아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었을 이 건축물에 대하여 왜? 이렇게 역사적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숙종초 1680년에 인천부사 "윤격"은 비밀리에 월미도에 행궁을 세웁니다. 이는 병자호란 당시에 인조임금이 강화도로 피신을 하려다가 적군이 김포방향에서 강화도길을 막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대피하였다가 치욕의 항복을 하게된 것을 교훈삼아 유사시 한양에서 최단거리로 제물포에 당도하여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강화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임금님의 일시적인 거쳐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옛날 임해사터에 지었다는 이 행궁은 고종 당시에 폐기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고종이 공식적인 폐기를 명할 당시에 이미 그 건물들은 폐허가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궁은 7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이 건물중에 월미산 정상에 정자나 망루를 같이 세웠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또 사진에서와 같이 미스테리 건물은 망루나 정자로 보기에는 건물이 너무 큽니다.
과연 이 커다란 건축물은 무엇이었을까? 불과 100년전의 의미있는 건물이 기록에도 남겨지지 않고 민중의 입으로 전해지지도 않은채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오늘 날, 월미도 정상부에는 조그마한 성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은 텅 비워져 있습니다...
나는...역사에 대하여 어거지적 상상력을 즐기는 이 김바사는 이 조형물을 보고 담담히 웃었습니다.
" 이 작가가 의식을 했건 아니했건 간에 여기에는 역사의 의지가 머물고 있다.... 발견되기를 원하는 역사는 작가의 영혼을 움직여 여기에 미완의 공터를 만들어둔다. .... 훗날 자신의 존재가 발견되어 이 공간에 채워지기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