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자료 수집가 최웅규 씨가 모으는 물건은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포스터, 음반, 삐걱거리는 책상과 사이다 병, 라면 봉지 등 35년 동안 모은 자료가 30만 점 이상이다. 역사의 혼이 담긴 태극기만 800가지가 넘는다. 전시회도 여러 번 했다. 그는 “그토록 찾았던 물건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기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글·최윤섭 기자(yschoi@4wdrv.co.kr) 사진·정진호 기자(jino@4wdrv.co.kr)
나훈아와 남진 음반부터 1970~80년대 인기가수의 음반 표지를 한쪽 벽면에 전시해 두었다
800여점이 넘는 태극기는 최웅규 씨가 가장 아끼는 애장품
50년대 이전의 책부터 현재 쓰고 이쓴 초ㆍ중고등학교 교과서
책ㆍ걸상을 꾸며 만든 추억의 교실. 난로 위의 도시락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교복과 책가방도 수십 점을 모았다
우리나라 태극기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쥐가 얼마나 많았으면 ‘오늘은 쥐약 놓는 날’이라는 벽보를 전국에 붙였을까. 이발소에 걸리는 달력 사진의 촌스러움의 끝은 어디일까. 가요계의 라이벌이었던 남진과 나훈아 음반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낡은 교복과 책·걸상, 그리고 가방과 몽당연필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준다. 구석에 처박아 두면 쓰레기 취급을 받을 것도 정리를 해 놓으면 훌륭한 수집품이 될 수 있고, 역사 자료로도 쓰인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이 달의 컬렉터는 생활자료 수집가 최웅규(55) 씨다.
컨테이너에 싣고 가 LA서 전시회 열기도 취재를 위해 찾아간 곳은 인천 만수동의 지하실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하실이 미로로 바뀌어 버린 탓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박스란 박스는 모두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쌓아 놓은 물건이 산을 이룬다. 자료를 보관하는 창고가 3곳이나 더 있다고 한다. 최웅규 씨가 생활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약 35년 전. 처음에는 그림과 도자기, 고서(古書) 등 미술품에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값이 워낙 비싸 형편을 맞출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수집한 것이 반대로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나만의 수집품을 찾아보자는 것. 일상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눈여겨보면서 본격적인 생활자료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다. 참기름 병으로 쓰던 사이다 병을 찾아 나서고, 라면 봉지, 19세기 한글 성경책, 일제시대 연극표와 영화 포스터, 얼음을 넣어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고, 삐라, 음반 등 공짜로 얻은 것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값을 주고 구한 것까지 그가 갖고 있는 자료는 30만 점이 넘는다. 테마별로 분류해도 20가지 이상이다. 수집품 중에서 최고로 아끼는 것은 태극기다. 동학혁명 때 쓰인 것부터 삼일운동의 혼이 담긴 태극기, 6·25 때 마당에 묻고 피난을 갔다가 나중에 파낸, 흙에 전 태극기 등 800점이 넘는다. 각종 포스터 문구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가 어떤 단계를 거쳐 왔는지 알 수 있다. 누렇게 변한 교과서와 삐걱삐걱 소리 나는 책상과 의자, 칠판을 갖고 추억의 학창 시절을 꾸밀 수도 있다. 최웅규 씨는 한국 자동차 역사를 줄줄 꿰는 자동차 매니아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운전면허증과 버스 시간표 그리고 자동차 메이커에서 만든 선전용 팜플렛 사진까지 차와 관련된 자료도 많다. 하지만 너무 깊숙한 곳에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개화기 시절의 제물포항 사진 엽서 전, 근대 교과서 전, 태극문양 전시회 등 그가 개최한 전시회만 40회가 넘는다. 컨테이너 9개를 갖고 미국 LA까지 가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0월에는 대구에서 ‘추억으로’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수집 대상이 된다. 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사라진 것, 단순하지만 교육적 가치가 있고 역사를 담아내는 물건도 수집품목 중 하나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으지는 않는다. ‘과거를 반성하고 기록의 의미로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이 수집 대상이다. “거창하게 한 번에 많은 것을 모으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모으는 것이 진정한 수집가가 아닐까요. 자료를 보는 눈, 자료로 배우는 문화의 흐름, 그리고 이것을 통해 얻는 자기 만족이 수집의 원동력입니다.” 최웅규 씨는 “그토록 찾았던 물건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기쁨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른다”고 말한다. 연구하지 않는 수집가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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