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정래의 등단 50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조정래 작가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영훈 교수가 『반일종족주의』에서 일제 경찰이 우리 주민을 사살했던 장면을 비판도 하고 했는데 그런 (역사적) 부분을 소설로 구현할 때 얼마나 많이 투영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조정래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버립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앞서 "반민특위는 반드시 민족정기를 위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150만, 60만 하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질서가 되지 않고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태백산맥』 『한강』 등의 소설로 1500만 여권의 책을 팔아 글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존경하고 기억되지만 한동안 좌파소설가로 인식되기도 했던 조정래 작가는 위와 같이 답변합니다.
이에 대하여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기자간담회 후 나온 연합뉴스의 기사를 12일 페이스북에 링크하며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죠”라고 썼습니다. 연합뉴스의 기사 제목은 '조정래 “일본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돼…150만 친일파 단죄해야”’였다고 합니다. 이어 진중권 전 교수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두 번째 글을 올려 "대통령의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아는데... 일본유학 하면 친일파라니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되어 민족반역자로 처단 당하시겠네요"라고 썼습니다.
조정래작가는 14일 오후 5시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이를 반박했습니다. “작가를 향해서 광기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 사람한테 대선배입니다.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로도 그렇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통령의 딸까지 끌어다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래서 진중권 씨에게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정식으로 사과하기를 요구합니다. 만약에 사과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을 시킨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토착왜구’라는 명칭을 두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조정래 소설가와 요즘 인기 ‘짱’인 진중권 평론가 사이에 비하하는 멸칭인 ‘토착왜구’라는 단어를 두고 공방전이 치열합니다. 진영논리로 따져보면 보수를 ‘토착왜구’라고 부른다면, 진보도 비하하는 멸칭인 ‘토착종북’으로 불리는 게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토착왜구’라는 단어는 진보좌파의 인식 속에 박혀있는 정치적 개념으로서 보수우파정권이 집권한 기간이 길고 특히 군사정권의 통치기간이 장기화되는 데서 오는 반 군사, 반독재투쟁의 한 방법으로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계열의 두 노선이 합작으로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함으로써 북한의 김일성 세습정권이 한반도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 토착종북(주사파)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토착종북’ 세력은 보수우파가 해방이후 지금까지 친일 반민족 이념으로 정권을 잡고 통치해왔다는 멍에를 씌워 친일 반민족 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에 가둬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남한에서 태어나 자유민주주의의 모든 혜택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김일성 세습정권을 추종하는 ‘토착종북’의 이념을 지켜왔기 때문에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주류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조정래작가의 문맥을 들여다보면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버립니다”라는 말 중 토착왜구를 주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해하기에 상당히 이상한 문장이 됩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까지가 주어이고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버립니다”가 술어가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즉 한국에 살고 있는 보수주의 사람들은 애초부터 토착왜구가 되고 그 사람이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면 친일파가 돼버린다는 겁니다. 이미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토착왜구가 되고나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다는 논리입니다. 토착왜구가 일본유학? 맞는 논리인가요?
‘토착왜구‘라는 말은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옴을 뜻하는 '토착'(土着)과, 전근대 일본의 해적집단을 가리키는 단어인 ‘왜구’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한국의 신조어입니다. 대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이 단어의 원형이자 준말인 토왜(土倭)는 놀랍게도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이용된 단어였습니다. 토왜가 가리키는 자는 같은 한민족이지만 왜인보다도 적극적으로 매국 행위를 일삼은 자로서, 2019년 초 역사학자 전우용에 의해 토착왜구로 변형되어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작 전우용은 토착왜구가 자신이 만든 단어가 아니라면서 본인에게는 토착왜구 단어의 저작권이 없다“고 말했다고 적혀있습니다. KBS가 뉴스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유학자인 정암 이태형(1910~1942)이 쓴 정암사고‘라는 산문집에서 ’토왜(土倭)‘라는 말이 친일부역자란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고 보도합니다. 또 토왜는 1908년 4월 5일자 ’대한신보‘에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1910년 6월22일자에는 ’토왜를 나라를 좀 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간의 종류‘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정래작가가 주장하는 대로 토착왜구라는 불리는 사람이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친일파가 돼버린다고 했는데 적어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려면 만 20세가 넘어야 가능했다고 봅니다. 필자는 당시 만7세였습니다. 금년이 해방75주년이니 일본에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 살아 있는 사람은 적어도 95세 이상의 생존자만 해당되며 그 중에서 생존자가 실제 토착왜구라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95세 이상의 사람들이 몇 명이나 살아 있다고 150~160만 명의 친일민족반역자를 반민특위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정래작가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김현정앵커가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 일본에 유학을 갔다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돼 버렸던 사람들” 이렇게 해석하면 될까요?라고 정리하자 “바로 그런 뜻이라고”대답합니다. 설령 이 말이 맞는다손 치더라도 말단순사나 순사보조 중 악랄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판사나 검사, 군수 등 총독부의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들 중에서는 동족에 대한 연민의식으로 업무를 처리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일제 식민당국에서 일정 직위나 계급 이상의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전부 반민족행위자로 분류한 것이 타당할 것인가에 관하여 깊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정래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지금 생존한 토착왜구가 몇 명이나 되기에 150만~160만 명이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 토착왜구의 자손들을 연좌제에 묶어 처리하자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만약 토착왜구라고 불리는 자들의 후손들까지 ‘토착왜구’라고 연좌제로 묶어버리겠다고 하면 이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이런 발상이 사실이라면 과거 백정의 자식이 백정으로 불리고, 갓바치라고 불리던 자식은 갓바치로 불리우며, 머슴이라고 불리던 자손은 머슴이라고 불러야 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게 됩니다. 또 백번을 양보해서 조정래작가 말대로 토착왜구라고 불리는 사람과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친일파를 반민특위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기가 앞장서겠다고 하는데 그 인원이 150만~160만이 된다는 숫자를 어떻게 추계했나요? 그 산출근거가 궁금합니다.
조정래작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의 한 사람입니다. 저도 ‘태백산맥’을 정년퇴직 후 읽어보고 지주들과 군인, 경찰, 공무원 등을 저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억압당하며 권력에 희생되는 죄 없는 민중들과 사악한 지주들 때문에 가을에 빈손 농사에 우는 소작인들의 비참한 빈곤생활을 상상하며 정의의 두 손을 불끈 쥐던 때도 있었습니다. 빨치산이 미화되고 반자본주의 민족해방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민주화란 사회적 분위기 속에 침투한 선전문학이지만 ㅗㅛ한 매력에 끌려 사위가 가지고 있는 태백산맥 전집을 빌려다가 며칠 동안에 다 읽어버렸으니까요. 그래서 감동한 만큼이나 이번의 토착왜구 발언에 실망도 많이 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참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만약 보수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토착왜구’라고 비판하던 진보좌파를 비판하기 위한 패러디로서 토착왜구의 안티테제 적 파생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토착빨갱이’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2020. 10. 16) 시조시인 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