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덤 용어사전
*팬덤: 특정 팬들의 집단을 일컫는 말
작성자: 손 수진
언어는 살아있다. 수 많은 말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변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특히 21세기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그 변화의 물살은 더욱 거세졌다. 한때는 온갖 특수문자를 이용해 개성을 뽐내던 ‘외계어’가 범람했었지만 한글파괴에 대한 우려와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미 유행이 지난 지 오래며,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생선(생일 선물)’ 등 과도한 축약으로 세대차이를 만들어내던 줄임말 역시 시들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매 순간 뜻 모를 단어들이 만들어지며 세대간, 그룹간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다양한 집단 중에서도 아이돌 팬덤은 특수한 언어집단이다. 나이나 성별의 제약도 없고, 처한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도 아니다. 10대 여학생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신화, GOD, 동방신기 등 10년 이상 꾸준히 유지되는 아이돌 그룹이 많아지면서 20대, 30대 여성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소녀시대, 카라, 아이유 등 여자 아이돌 그룹의 ‘삼촌팬’들까지 더해져 ‘팬덤’이라는 단어로밖에 규정할 수 없는, 남녀노소가 모두 속한 집단이 탄생했다.
팬덤에 속한 팬들의 활동기반은 주로 공식 팬카페, 팬페이지, 그리고 트위터를 꼽을 수 있다. 팬카페, 팬페이지가 주로 회원가입 및 등업을 필요로 하는 닫힌 공간인데 반해, 트위터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최근엔 팬덤에서 만들어져 쓰이던 단어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쓰이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즉, 지금은 생소한 단어라도 앞으로 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팬덤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와 그 의미를 알아보자. 몇 가지만 알아두어도 ‘머글(팬이 아닌 일반인)’ 취급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나다 순)
고나리: ‘관리’의 오타에서 유래한 단어. 타인의 게시글 등에 이견을 달거나 과도한 표현을 재제할 때 사용한다.
구오빠: 예전에는 두 그룹을 동시에 좋아하거나 다른 그룹을 좋아하는 것이 죄악처럼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다. 예전에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또는 멤버)를 지칭하는 단어.
기차: 팬들 사이에서 영상의 공유를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대용량메일의 다운로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하나의 링크로 최대 100번의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이 같은 인원제한 때문에 생겨난 말. 한 명이 영상 공유를 위해 기차를 세우면 최대 100명이 기차에 탑승 할 수 있다.
대포: 일부 아이돌 팬들이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를 일컫는 말. 크고 기다란 렌즈의 모습이 마치 대포 같다고 해 붙은 별명이다.
덕계못: ‘덕후는 계를 못탄다’의 준말. 좋아하는 아이돌을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를 ‘계 탄다’고 하는데, 열성팬(덕후)은 계를 타는 일이 흔치 않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덕통사고: ‘덕후+교통사고’의 합성어로, 예기치 못한 순간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우연한 기회에 특정 영상 또는 사진을 접한 뒤 갑자기 해당 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사용한다.
머글: 아이돌 또는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을 지칭한다. 판타지소설 ‘해리포터’에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멜림픽: ‘이메일+올림픽’의 합성어이다. 팬미팅, 사전녹화 등 인원제한이 있는 이벤트의 경우 기획사에서 이메일로 지원자를 받아 선착순 마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올림픽에 비유해 생겨난 단어이다. 비슷한 말로 ‘입금림픽(입금+올림픽)’이 있다.
사녹: ‘사전 녹화’의 준말. 생방송으로 이루어지는 음악방송의 특성상 무대 전환의 편리함을 위해 방송시간 전에 일부 출연가수의 무대를 미리 녹화하는데, 이 때 현장감을 위해 가수의 팬들이 함께 입장한다.
스밍: ‘스트리밍’의 준말. 음원사이트가 제공하는 음원을 재생시키는 것을 뜻하는데, 스트리밍 및 음원 다운로드 횟수에 따라 사이트 내 차트에서 순위가 결정되며, 이는 음악방송 순위로 연결되므로 신곡이 발매되면 많은 팬들이 스밍에 매달린다.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주로 2~30대 대학생 또는 직장인 여성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아이돌 팬임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자신이 아이돌 팬임을 밝히고 신곡발매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경우 ‘일코 해제’라고 하며,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아이돌 팬임이 우연히 주변인에 알려진 경우 ‘덕밍아웃(덕후+커밍아웃)’, ‘빠밍아웃(빠수니+커밍아웃)’ 등의 단어가 사용된다.
짤줍: ‘짤(사진)을 줍는다’의 준말. 누군가 업로드 한 사진을 저장하는 것을 뜻한다.
총공: ‘총공격’의 준말. 음원사이트 순위를 높이기 위해 특정 시간대를 정해 집중적으로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진행하는 경우에 쓰인다.
만일 주위의 누군가가 위의 단어들을 스스럼 없이 사용한다면, 그녀(혹은 그)는 ‘일코’중인 아이돌 팬일지도 모른다. 아직까
지 우리 주위에서는 ‘아이돌’은 10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돌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은 아이돌이 점령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 팬덤의 활동반경도 점점 넓어져 봉사활동, 기부, 숲 조성 등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엔 아이돌 팬덤 활동이 10대의 사회성 및 소통능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으니, 주위에 아이돌 팬이 있더라도 철없는 짓이라고 질책하지 말자. 누구나 취미생활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듯, 그들도 아이돌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얻는 것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