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의 반격
우리나라에서 군대문화는 대한민국 남성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문화이다. 그런데 몇 년 전 한 예능프로그램을 계기로 군대문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진짜 사나이’다. 최근엔 여성출연자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군대 문화가 대중 모두에게 익숙하게 되었다. 물론 실제 군대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비주류 취급을 받던 군대 이야기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처럼 최근 대중에게 익숙치 않던 비주류 문화(서브컬처ㆍSub-culture)가 주류로 올라서는 현상을 다양한 장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만화는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유해 매체로 인식되었으며, 만화가는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되어 환영 받지 못하는 직업이었다. 소수의 마니아들만 즐기는 비주류문화(Sub-culture)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만화가와 만화의 위상은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만화인 ‘웹툰(Web toon)’의 등장은 스마트폰의 빠른 확산을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장했고, 출퇴근시간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비주류였던 만화라는 장르가 주류 문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최근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패션왕’과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미생’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웹툰은 영화와 드라마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와라!편의점’의 경우 실제 편의점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많은 웹툰 작품이 문구, 의류 등의 캐릭터상품 제작을 통해 부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천대받던 만화가 주류문화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은 물론, 하나의 컨텐츠로 여러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One Source Multi Use’의 가장 좋은 예가 된 것이다.
만화와 마찬가지로 유해 컨텐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게임산업 역시 최근 e-스포츠로 인식되면서 전 연령에게 사랑 받고 있다. e-스포츠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올해 열린 세계 규모의 e-스포츠 대회인 ‘블리즈컨’에서는 우승은 물론 16강전에 출전한 선수들이 모두 한국선수였을 정도이다. 국내 대회의 경우도 점차 관중이 늘어나고 있어 입장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외 e-스포츠 대회뿐만 아니라 매년 부산에서 열리는 게임 컨벤션 지스타(G-star)는 개최할 때마다 큰 이슈를 만들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행사 기간 중 개최되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게임 동호인들의 친목의 장이 되는 것은 물론, 전세계의 최신 게임을 체험하며 앞으로의 게임기술 발전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서브컬처의 확산은 비단 만화나 게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90년대 등장 당시만 해도 10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아이돌 음악은 한 때의 유행일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21세기 들어 한류바람을 타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K-POP’이라는 이름을 얻어 대중음악의 한 갈래로 자리잡았다. 최근엔 아시아를 넘어 유럽, 남미 등지에서 큰 규모의 공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직은 비주류에 속하는 보컬로이드나 홀로그램 공연 등의 서브컬처가 미래에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류 문화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컬로이드는 Vocal과 Android의 합성어로, 성우 등 사람의 음성을 입력하여 이를 노래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만화 캐릭터의 음성과 결합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보컬로이드의 공연에 실제 팬들이 자리를 가득 채울 정도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한국형 보컬로이드가 등장하며 팬을 만들어내고 있다. 홀로그램 콘서트 역시 아직은 시범단계이지만, SM엔터테인먼트가 홀로그램 전용 공연장을 짓는 등 앞으로의 한류문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컨텐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서브컬처가 반격을 준비하며 메인컬처(main culture)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향유계층과 대상에 관계없이 모든 컨텐츠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므로, 어떤 서브컬처가 다음 주자가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2015년 메인컬처로 도약해 ‘대세’로 자리잡을 서브컬처는 어떤 것이 있을지 점쳐보는 것도 좋겠다.
글쓴이 손 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