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Again!
이 구호는 세계 2차대전 시, 600백만 유태인들의 희생을 기리면서 이들의 리더로부터 나온 구호로 더 이상 그러한 인간의 잔학상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온 구호입니다. 2005년 방문하였던 폴란드 남쪽에 위치한 포로수용소 ‘아우츠비츠’; 그 곳에서 마주친 유태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심지어 독일 정치인 이들 희생자들의 유품들이 모여져 있는 곳에서 발견한 이들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모직물, 모자, 칫솔, 신발, 양말, 브러시 .. 참으로 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더욱 난감했던 곳은 이들을 처형한 독가스실과 화장터와 그 굴뚝입니다. 시신을 불태워져야만 그 연기로 이 죽음의 수용소를 벗어날 수 있다는 너무나 가슴 저린 이야기; 3시간 여 방문 후, 그 곳을 벗어나면서 마음이 더욱 먹먹하고 무거운 가운데 유태인들이 왜 특히 홀로코스트 문학 등을 통하여 ‘Never Again!’을 소리 높여 외쳤는지 가슴 절절이 동의하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하였습니다. 이후 유태인의 삶과 그네들의 종교 ‘유대교’와 삶의 지혜서 ‘탈무드’를 다시 읽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팔레스타인의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 지구에선 하루 1000여명이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더하여 전쟁 중에 보호받아야 하는 병원까지 폭격을 받아 환자까지 희생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끔직한 만행을 저지른 이스라엘 대변인은 그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도부가 있기에 폭격을; 지금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 군인과 그들의 모습과 그리고 그 수용소에서 한줌의 재로 자유(?)를 찾은 이들의 선조들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나이트’의 저자 ‘엘리 위젤’은 1986년 12월 노벨상 수상 연설 말미에서 ‘…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은총의 순간이고, 한 시간 한 시간이 헌신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은총과 헌신을 나누지 않는 것은 그것을 배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수용소 첫말 밤에 맞이한 그 굴뚝의 연기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던 어린 위젤은 이후 비록 그 순간은 결코 잊지 않았으나 주님의 은총을 나누길 만인들에게 촉구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후예들은 자신들의 진가(?)를 보여준다는 미명아래 이웃 팔레스타인 인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있습니다. 진정 이들 두 나라 및 두 인종간 평화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인가요?
여기에 한 술 더 뜬 나라가 있습니다. 짐작하죠?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포탄 수출 세계 1위 포함 방산수출액이 엄청 늘었다는 기사가 방송을 타고 있습니다. 방산수출 기사는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뉴스가 빈번하게 방송을 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받아들이긴 매우 어렵지만 우리의 많은 국민이 이를 용인한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우리가 수출하는 무기가 전쟁에서 사용되고 전쟁은 살인이고 학살을 초래한다는 인식을 어떻게 함께 공유할 수 있는가요? 전쟁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인가요? 주지하는 바대로 이상기후로 인한 천재지변과 다르게 전쟁은 인간이 일으킵니다. 물론 이상기후는 그 근본 원인들을 파헤쳐보면 인간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광기, 탐욕, 시기심, 지배, 소유욕 등이 공격적 행태가 만들어내고 상대방 포함 당사자간 엄청난 희생과 한쪽 진영의 항복만이 그 결론입니다. 작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하마스와 이스라엘간의 전쟁에서 보듯이 서로간 희생 특히 민간인들의 희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러한 엄청난 희생을 초래하는 전쟁물자를 우리나라는 수출한다고 대대적으로 방송하고 있죠! 전쟁 당사자 나아가 외국에선 이를 어떻게 이해할까요? 이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더욱더 원자력 포함 방산산업에 빙점을 띠고 해당 산업/기업에 엄청난 자금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주님께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시고 이들을 어떠한 치리하실까요? 우리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눅 23:3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선언하신 것으로 이해하며 이에 구속을 받은 우리 인간은 지속적인 구속을 위하여 그 십자가에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매일 실천함에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