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 갈보리 길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그 금요일 그리스도께서 따르신 정확한 길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이 시작된 곳만은 분명하다. 그 길을 빌라도의 법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뜰에서 시작되었다. 그분의 뜻은 오직 하나,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인간은 과연 마음에 근본적인 변호가 필요하다. 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시작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 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십자가 밑이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죄인을 향하는 그 분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때 그 변화가 일어난다. J.N.D. Anderson
각기 제 갈 길로 간 우리
“우리가 다 … 제 갈 길로 갔거늘” (이사야 53:6); 바울은 우리의 반역을 한걸음 더 깊게 끌고 들어간다. 우리는 단지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그분을 대적한다. 우리는 “경건하지 않은 자” (로마서 5:6), 즉, “하나님을 대적하여 살던 자”였다. 10절에 가면 더 강한 표현이 나온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에” 너무 심한 표현이 아닌가? 원수 곧 적이며 모르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고의로 해치는 자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된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떤가?
-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한 적이 있는가? - 하나님의 자녀나 피조물 세계의 일부를 해친 적이 있는가? - 하나님의 적인 마귀의 일을 거들거나 성원한 적이 있는가? - 대중 앞에서 하늘 아버지를 모른 척한 일이 있는가? - 있다면, 당신은 그분의 원수 역을 행한 것이 아닌가? - 우리가 그분의 원수가 될 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
아버지가 떠나오신 날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길은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즉 ‘슬픔의 길’이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갈보리로 가신 바로 그 길이었다고 한다. 그 길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기도하는 14개의 지점이 표시되어 있다. 주후 70년과 주후 135년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도시의 거리의 흔적들로 사라졌다. 따라서 그 금요일 그리스도께서 따르신 정확한 길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이 시작된 곳만은 정확하고 분명하다. 그 길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뜰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 집을 떠나시던 날 그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얻으시고야 말겠다는 열정 외에는 아무 장비도 없이 찾아오셨다. 그분의 뜻은 오직 하나,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
성경에서 기독교인의 가장 큰 죄악으로 지정한 교만 (오만),과 수치, 이 둘은 보기엔 너무 다르지만 자매지간이다. 교만은 가슴을 내밀대로 내민다. 수치는 고개를 숙일 대로 숙인다. 교만은 뻐긴다. 수치는 숙인다. 교만은 내보이려고 한다. 수치는 달아나려 한다. 그러나 속지 말라. 두 감정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교만도 수치도 당신은 하늘 아버지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교만은 말한다. “너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기엔 너무 착해!” 수치는 말한다. “넌 하나님께 가기엔 너무 추해!” 교만은 당신을 몰아낸다. 수치는 당신을 가둬둔다. 교만이 넘어짐의 앞잡이라면 수치는 넘어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
저자는 이 글을 마치면서 독자에게 현실 삶에서 적용할 것을 2가지 실천사항을 권고합니다.
첫째,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사무엘하 13장 – 19장 8절에 나오는 다윗과 압살롬 부자의 비극적 사연과 비교해보라. 두 이야기의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집안에 닥쳐온 비극을 막기 위해 다윗을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있었을까?
둘째,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각 자녀에게 당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일을 하나씩 생각해보라. 긴 편지를 쓸 수 있고 시내로 단둘이 데이트를 나갈 수도 있다. 아들이나 딸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실천해 보라.
탕자의 비유를 통해 저의 '주님의 사랑'에 대해 지지리도 부족한 몰이해와 주님의 사랑의 몸짓에 대해 너무 감격하고 이후 주님께 좀 더 가까이 그리고 감사를 전하는 삶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사랑스러운 딸, 아들이 있습니다. 마음 속으론 이들에 대한 온전하고 더 없는 사랑이 가득하지만, 표현이 부족한 저이기에 제때 제대로 입으로 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특히 아들에겐 더욱 미흡합니다. 오늘 말씀과 권고사안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실천할 수 있도록 손 끝과 발끝을 움직이도록 하렵니다. 이러한 감격과 사랑을 실천할 행동지침을 알려주신 주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