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구 온산읍 덕신리(德新里)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신야전탄(新野箭灘)이란 이름으로 처음 기록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이 마을의 명칭은 아마도 신야동(新野洞) 혹은 신밤(新夜)으로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탄(箭灘)이란 물 흐름이 화살처럼 빠른 냇물, 즉 급류가 소용돌이치는 강을 말함이니, 신야리 앞의 급류천(急流川)을 신야전탄(新野箭灘)이라 하였다.
이곳 신야전탄(新野箭灘, 現-울주구 온산읍 덕신리)은 임진왜란 당시 망조당(望潮堂) 서인충(徐仁忠) 장군의 전승지이기도하다. 선조 26년(1593년) 10월 1일, 이곳 남면 신야전탄(新野箭灘)에서는 진을 치고 있던 의병과 기장방면으로부터 쳐들어오는 왜군과의 접전이 벌어진다.
부산진포 첨사와 다대포 첨사를 제수 받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일등선무원종공신(一等宣武原從功臣)인 서인충(徐仁忠) 장군은 동구 동부동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육촌 동생 서몽호(徐夢虎)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이십여 일만에 3천의 장정을 규합한 후에 박봉수 여경원 박경새를 복병장(伏兵將)으로 삼아 전략적 요충지에 매복케 하고, 김계남 허사남 성대명 군관(軍官)과 박린복 박휘 박여담 군수(軍需) 담당으로 하여금 이곳 신야전탄으로 왜적을 끌어들이게 하여 크게 무찌른 뒤 동래까지 적을 쫓아내는 헉혁한 전공을 세운다.
한편, 장교 성대명(成大明)과 허사남(許嗣男) 그리고 아병(牙兵:대장 휘하에 있는 병사) 김인원(金仁元)이 각각 적군 한명씩 목을 베는 전과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자료출처>
울주구 온산읍 사무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