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린 돌
최 연 심
옛날, 간월산 자락에 큰솔이와 달래가 살았어, 큰솔이가 태어났을 때 큰솔이 부모님은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지, 아기가 워낙 작고 약해 보였거든, 그래서 이름을 큰솔이라고 지었어, 큰 소나무처럼 듬직하게 잘 자라라는 뜻으로 말이야.
큰솔이는 별 아픈 데 없이 자라긴 했지만 덩치가 크지는 않았어, 호리호리해서 힘도 없어 보였지, 그래도 손재주는 있어서 만들기를 잘했어. 짚신도 잘 삼고 대바구니도 멋들어지게 만들었지, 솔방울로 독수리를 만든 것을 보고 마을 어른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야.
달래는 큰솔이네 이웃에 살았는데 눈만 뜨면 쪼르르 큰솔이한테 달려갔어, 큰솔이가 무언가를 만들면 달래는 옆에서 신기하게 바라보았지, 달래가 응원의 눈길을 보내면 큰솔이는 신이 나서 손놀림이 더 빨라지곤 했어.
큰솔이는 자상한 오라비처럼 달래는 귀여운 누이처럼 둘은 그렇게 오누이처럼 자랐어, 그리니 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을 거야.
어느덧 처녀 총각이 된 달래와 큰솔이는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었어. 하루는 큰솔이가 달래 손에 빨간 댕기를 쥐어주며 말했지.
“내일 네 아버지를 찾아 뵙고 허락을 받은 뒤에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달래야! 나하고 혼인해 줘,”
달래는 사실 이제나저제나 큰솔이가 청혼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막상 청혼을 받아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어, 아버지가 지나는 말로 돌석이를 사위 삼고 싶다고 한적이 있거든, 달래는 큰솔이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어, ‘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해.’라는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말이야.
달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밤새 뒤척뒤척, 그러다가 꼴딱 날이 밝았어, 큰솔이도 애저녁에 잠자기를 포기하고 단정한 매무새로 아침을 기다렸지, 식전 댓바람에 갈 수는 없어서 날이 밝고도 한참이나 뜸을 들인 뒤에, 큰솔이가 드디어 문을 나섰어, 늘 드나들던 달래네 집인데 그날따라 가슴이 쿵닥쿵닥 뛰는 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어, 큰솔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용기를 내서 달래아버지를 불렀지,
“아저씨, 저, 큰솔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마침 달래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오던 참이었어.
“자네가 아침부터 웬일인가?”
“저, 들어가서 말씀 드렸으면 합니다.”
“그래? 그럼 들어오게나.”
큰솔이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달래아버지에게 넙죽 절을 했지.
“저, 달래와 혼인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아저씨, 아니 아버니임,”
“허, 거 참, 아침부터 웬 뚱딴지 같은 소리람?”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달래도 저와 같은 마음이고∙∙∙∙∙,”
“흠, 내 좀 생각해 봄세, 오늘은 그만 돌아가게.”
달래아버지의 목소리에선 전에 없이 찬바람이 돌았어, 큰솔이는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 부뚜막에 앉아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달래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
달래아버지는 천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어, 사실 사윗감으로 점찍어둔 사람이 따로 있었거든, 마을에서 힘세기로 소문난 돌석이가 달래와 짝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으니까, 게다가 어제 주막에서 듣기로는 돌석이가 달래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어, 거짓말을 안 하는 동이어멈의 말이니 믿어도 될성싶었지, 그래서 오늘은 돌석이를 한번 만나볼까 했는데 하필 큰솔이가 온 거야, 달래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고 되짚어서 또 생각해 봐도 큰솔이는 미덥지가 않았어,
‘지푸라기나 솔방울만 잘 다뤘지 나뭇짐 한 단에도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라니.’
달래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의며 혀를 쯧쯧 찼어, 그리고 숨을 크게 한번 내쉰 뒤 달래를 불렀어,
“달래야, 찬물 한 그릇 떠 오너라,”
달래가 방망이 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사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어.
“게 좀 앉거라.”
달래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어, 아버지는 사발의 물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단호하게 말했지,
“너는 큰솔이와 혼인할 수 없다. 내 이미 돌석이와 너를 맺어주기로 결심했으니 그리 알거라.”
“그렇지만 아버지, 저는 큰솔오라버니가 좋아요.”
“네가 지금 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다만, 너도 알다시피 돌석이는 건장하고 힘이 세니 처자식을 충분히 건사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런데 큰솔이는 어떠냐? 저렇게 비리비리하니 네가 고생할 게 눈에 훤하구나.”
“그래도 저는 큰솔오라버니와∙∙∙∙∙,”
“씨끄럽다. 살다 보면 아비 말이 옳았다는 걸 깨달을 게다. 그리고 오늘부터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큰솔이를 만나지 말거라.”
달래는 더 이상 대꾸도 못하고 물러나왔어, 눈물이 펑펑 나서 온 세상이 흐릿해 보였지, 하루 종일 울고 밤새 또 울고, 다음날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 끼니도 거른 채 며칠을 울기만 하더니 결국 몸져눕고 말았지.
‘큰솔오라버니가 아니면 그 누구와도 혼인할 수 없어!’
달래의 머릿속에는 오직 큰솔이 생각뿐이었어,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아무리 생각을 짜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어, 자리에 누운 채 눈만 감았다 떴다 하는데 문득 날개를 편 독수리가 보였지, 방문 위 시렁에 올려둔 솔방울 독수리였어,
“독수리야 너라도 훨훨, 너 가고 싶은 데로 날아가렴.”
달래는 독수리를 보며 힘없이 중얼거렸어,
큰솔이는 며칠째 달래 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다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어, 달래 걱정에 아무 일도 못하고 애만 태웠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달래가 있어도, 당장이라도 달려가 만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아도, 달래아버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 어떻게든 달래아버지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지, 평상에 엉덩이만 걸친 채 한숨을 들이 쉬고 내쉬고 했어, 이리 왔다가 저리 갔다가, 좁은 마당을 빙빙 돌다가 멈춰 섰는데, 그때 간월산 천길바위가 딱 눈에 들어온 거야.
‘그래, 그 수밖에 없어.’
큰솔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어, 있는 힘을 다해서 부딪쳐 보기로 했지.
큰솔이가 달래네 사립문 앞을 지키고 있자니 밭일 갔다 오는 달래아버지가 보였어, 큰솔이는 뛰어가서 다짜고짜 달래아버지 팔을 붙들고 통사정을 했어.
“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아저씨! 천길바위에 돌이라도 한번 던져 보게 해 주세요.”
“자네가 천길바위에 돌을 던지겠다고?”
달래아버지가 어이없는 얼굴로 큰솔이를 돌아봤어.
“아저씨가 왜 저를 못마땅해 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한테도 달래를 행복하게 해 줄 힘이 있다는 걸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실패하면 우리 달래를 깨끗이 단념할 텐가?”
“저도 사내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슨 염치로 달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럼 좋네, 내일 아침에 만나지.”
달래아버지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어, 아직까지 천길바위 위로 돌을 던져 올린 사람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처녀총각이 천길바위 밑에서 돌을 던져서 그 돌이 천길바위 위로 올라가면 혼인하게 된다는 말이 있어. 하지만 천길바위 위로 돌을 던져 올린 사람은 거의 없지. ‘천길바위’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야, 입이 떡 벌어지게 높디높은 절벽이지, 그런데 큰솔이가 그 위로 돌을 던져 올리겠다는 거야.
달래 아버지는 달래에게 콘솔이가 한 말을 전해 주었어, 어차피 실패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전해준 말에 달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낱 같은 희망이지만 말이야, 천길바위에 돌 던지기는 백이면 백 모두 실패한다고,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라고 들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대던 달래는 시렁 위 솔방울 독수리에 눈길이 꽂혔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달래가 꼭 그런 심정이었지.
“큰솔오라버니가 던질 돌에도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개 달린 돌이라면 높이높이 날아올라 천길바위 위까지 갈 수 있을 텐데.”
달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눈이 번쩍 뜨였어, 가만히 손을 뻗어 독수리 날개에서 솔방울 비늘을 떼 냈지,
날이 밝았어.
큰솔이와 달래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간월산을 오르기 시작했어, 큰솔이가 앞서 걷고 달래아버지가 그 뒤를 따랐지. 천길바위가 가까워질수록 큰솔이의 표정은 더욱 비장해졌어.
드디어 천길바위,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았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천길바위 아래에는 자그마한 돌들이 널려 있었어,
“삼세번이네, 자네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지, 어제 한 약속을 잊지 말게.”
달래아버지의 말에 큰솔이가 입은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어, 손 안에 잡히는 적당한 크기의 돌을 골랐어, 한 개, 두 개, 세 개, 발치에 놓인 돌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지, 큰솔이가 돌 하나를 비어 들었어, 큰솔이가 숨을 멈추자 바라도 숨을 죽였어.
“달래야!”
큰솔이는 달래 이름을 외치며 힘껏 돌을 던졌어, 돌은 천길바위 중간쯤에 부딪쳐 떨어졌지, 큰솔이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다시 던졌어, 두 번째 돌 역시 천길바위 위에서 한참 못 미치는 곳에 부딪쳐서 떨어졌어, 큰솔이는 눈물이 나려 했어, 팔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지,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큰솔이가 마지막 돌을 집으려고 할 때였어.
큰솔이와 달래아버지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어, 달래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는 거야 . 된비알을 얼마나 서둘러 올라왔는지 온통 흙투성이였어.
달래가 옷섶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큰솔이가 받아서 보니 솔방울의 비늘 두 개가 실에 꿰어 있었지, 큰솔이는 마지막 돌에 실을 감았어, 실을 감고 보니 마치 돌멩이에 작은 날개가 돋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
큰솔이는 눈을 감고 다시 천길바위를 향해 섰어,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어, 달래가 간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지, 큰솔이는 온 힘을 다해서 힘껏 돌을 던졌어, 날개 달린 돌은 달래의 응원을 받으며 높이높이 날아올랐어, 천길바위 위까지.
영남알프스 간월산에 가면 천길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단다. 큰솔이가 던진 돌에 붙어 있던 솔씨가 자란 게 아닐까 싶어, 천 길 낭떠러지에서도 새싹이 트듯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거야.
길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천길바위 이야기처럼 말이야.
<자료출처>
『꼬두박샘에 돛대를 세워라』(미오세), 작가시대, 2012. 157~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