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무(處容舞)
----------------------------------------------------------------
처용무는 궁중무용(宮中舞踊)으로서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신라 헌강왕(憲康王) 때의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유래된 가면무용(假面舞踊)이다. 조선초기부터는 일명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로 구성되었으며, 처용의 얼굴을 본딴 탈을 쓰고 5방위(五方位)을 상징한 동의 청, 남의 홍, 중앙의 황, 서의 백, 북의 흑의 옷을 입은 5인의 가면무(假面舞)이다.
처용무의 유래를 살펴보면,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삼국유사 권2 처용랑(處容郞) 망해사(望海寺, 문수산 자락에 있는 절)조에 나타난다.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고려사〉충혜왕조와 신우조에 처용희를 즐겼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으며,〈용재총화〉에는 처용무가 본래 흑포사모(黑布紗帽)에 적색 가면을 쓰고 춘 1인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5명이 추는 처용무로 확대되었고 〈악학궤범〉 권5에 있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이라 하여 섣달 그믐날 나례의식 때 추던 장엄한 의식절차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처용무는 학무(鶴舞)·연화대(蓮花臺)·처용무의 3가지가 합쳐져 화려한 춤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있다. 처용무에 쓰이는 음악은 봉황음(鳳凰吟)으로 조선 세종 때 개찬(改撰)된 것이나 지금은 많이 축약되었다.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기본정신을 기초로 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춤사위는 화려하고 현란하며, 당당하고 활기찬 움직임 속에서 씩씩하고 호탕한 모습을 엿볼 수 있고, 가면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먼저, 처용 5인은 두팔을 허리에 붙이고 청, 홍, 황, 흑, 백의 차례로 대기하고 서면 수제천(壽霽天: 일명 빗가락정읍, 궁중연악의 하나로 처용무 반주음악으로도 쓰이는 장중한 아악곡)을 아뢴다. 차례로 들어와 좌로 돌아 북향하고 서고 악지(음악이 그치는 것)하면 처용가를 부른다.
다시 악작(음악이 시작하는 것)하여 향당교주하면 처용 5인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소매를 들었다가 다시 허리 위에 놓고 허리를 구부려 마주본다. 내족(왼쪽에 선 사람은 왼발, 오른쪽에 선 사람은 오른발이 내족)을 들어 다시 북향하여 섰다가 허리를 젖혀 서로 본다. 이를 '무릎 디피춤(방향을 바꾸어 추는 춤)'이라 한다.
청, 홍, 흑, 백은 모두 외족을 먼저 들고, 황은 왼발을 먼저 들어 당면 5도, 상배 2도로 춤을 춘다. 청, 홍과 흑, 백은 모두 소매를 들어 안으로 끼고 황은 손춤을 추면서 우협(우측으로 낀다)을 하고 반대로 청, 홍, 흑, 백이 외협을 하고 황은 좌협을 한다. 이것이 '도돔춤'이다.
청, 홍, 흑, 백은 내족으로 선진하고 황은 오른발로 선진하는 발바딧춤(발을 올려 걸으며 무릎을 굽히는 동작)으로 전정중앙에서 모두 북향하고 선다. 황은 동을 향하고 춤추고 청, 홍, 흑, 백은 서를 향하여 춤춘 다음 반대로 홍은 서향, 청, 홍, 흑, 백은 동향하고 춤춘다.
홍은 오른발을 들어 무퇴(춤추며 뒤로 물러섬)하여 남에 서고 흑은 왼발을 들어 무진하여 북에 선다. 즉, 황은 중앙에 청은 동, 백은 서에서 '발바닷작대무(발을 들어 옮기며 다른 열을 만드는 춤)'를 한다.
황은 북을 향하여 춤추고 청, 홍, 흑, 백은 중앙을 향하여 처음 흑과 황이 대무하고 차례로 청 ,홍, 백과 대무한 다음 중앙을 등지고 제자리를 향하여 춤춘다.
회선 우선으로 흑이 먼저 나오고 황은 백과 홍의 사이에 들어가 모두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흑은 뒤로 물러서고 홍은 앞으로 나가 처용 5인이 일렬횡대로 서면 일제히 무퇴하여 북향하여 선 다음 노래를 한다.
악작하면 '낙화유수(落花流水: 전진하면서 한삼을 좌우 어깨에 차례로 메었다가 앞으로 뿌리는 동작)'를 춘 다음 차례로 회선하여 퇴출한다.
성현의 용재총화 권1에 보면 처용무가 처음에는 흑포사모(黑布紗帽)의 1인무였으며, 또 가면은 벽사색인적색면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이후 5방 처용무로 확대되었고 악학궤범 권5에 보이는 바로는 학, 연화대, 처용무합설이라하여 섣달 그믐날, 즉 제야의 나례때 추던 장엄한 의식절차이던 것으로 학무와 연화대무와 처용무의 세가지가 종합된 자못 호화스러운 것으로 변천되었다.
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 39호(1971.01.18)로 지정되어 있으며, 최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 되었다.
<자료참조>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