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쇠부리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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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쇠(鐵) 생산은 멀리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울산이 속해 있었던 변진(弁辰)지방의 쇠는 특히 유명하여 삼한사회는 물론 동예(東濊)와 왜(倭)에서도 무역을 해 갔으며 낙랑(樂浪)과 대방(帶方)을 거쳐 중국까지 공급되어 모든 매매를 함에 있어서 마치 화폐와 같이 통용되었다.
영남지방의 여러 고을에서는 조선조 초기에 이르기까지 쇠의 세공지(歲貢地)로 지정되어 각기 철장을 가졌으며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이곳 울산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생철 1만2천5백근을 세공하였다. 또한 지주사(知州事:지금의 군수)가 철장관(鐵場官)을 겸임하여 관리 생산하여 왔다.
세종 이후에는 한동안 철장이 폐쇄되었다가 서기 1657년에 이의립(李義立)이 다시 찾아 내어 일제 초기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채공이 이루어졌으나 수공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울산의 쇠산업도 일본 기업가의 대량생산에 밀려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우리 울산지역에는 북구 대안동 쇠부리터를 비롯하여 100여개소 이상의 쇠부리 유적터를 남겨져 있으며 오늘날 이 오랜 철생산의 과정을 놀이로 재구성한 것이 「울산 쇠부리 놀이」이다.
이 쇠부리 놀이는 1981년 울산문화방송의 정상태 PD가 이 땅의 마지막 불매꾼 최재만(당시 85세, 울주구 두서면 인보리 거주)을 만나면서 그 과정과 소리를 채록하여 재연하게 된 놀이이다. 이 놀이는 1984년 울산문화원에 의해 민속놀이로 재연되었다. 경남도 향토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지금에는 울산 북구청 주관으로 매년마다 「쇠부리 축제」를 성대하게 열고 있다.
쇠부리란 쇠를 녹이는 작업을 말한다. 쇠부리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일이 순조롭게 잘 돼 주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고사를 지낸다. 이 고사과정에서 종사자들이 음식을 나누며 풍물을 울리고 한바탕 놀이를 벌이며, 이후 각 과정마다 연희는 이어진다. 쇠부리 종사자들의 몸짓과 노래는 울산 토속향취가 배인 향토의 얼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가. 등장하는 인물
전주 1명, 대리관리인2명, 원불편수 1명, 윗불편수 1명, 골편수 1명, 둑수리 1명, 숯대장 1명, 숯쟁이 10명, 걸대장 1명, 쇠쟁이 10명, 풀무대장 1명, 풀무꾼 16명, 공양주4명, 기수 10명, 풍물10명이다.
나. 등장의장
놀이에 임할 종사자들이 ‘로(爐)’의 왼쪽에서 농악에 맞추어 일렬로 등장, 맨 앞에 「울산쇠부리」라 쓰여진 깃발을 든 기수가 서너 명, 뒤에 풍물패, 이어 쇠쟁이, 숯쟁이, 불매꾼, 운반꾼, 그리고 전주 골편수 불편수 등 편수들이 따르고 뒤에 공양주 4명이 제례도구를 들고 어깨춤을 추며 따른다.
이들 놀이꾼 사이에는 등에 토철을 실은 소도 두어 마리 섞여 있다. 신명나게 울리는 풍물에 맞춰 모두가 흥겨운데 운반꾼 다수가 오색 띠 모양의 금줄을 들고 어깨춤을 추는 게 흥미롭다. 종사자(놀이꾼) 모두가 각기 필요한 대소 도구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운반꾼은 지게, 쇠쟁이는 소쿠리 등이다.
이들은 로(爐)의 뒤를 돌아 시계 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원무를 한다. 도중에 숯쟁이는 왼쪽, 쇠쟁이는 오른쪽에 또 다른 원을 그리며 농악에 맞춰 춤춘다. 한편 전주와 편수들은 로(爐) 앞에서 고사를 지낼 준비를 하고(물론 공양주는 제사상을 준비하고) 운반꾼 다수는 로(爐) 앞에 설치된 풀무를 중심으로 오색금줄을 들고 원무하고 있다. 맨 앞에 등장한 풍물패는 로(爐)의 뒤에 일렬로 서서 놀이꾼들의 흥을 돋운다.
다. 제의의장
공양주들과 전주, 편수등은 등장 시 어깨춤을 추면서 이미 고사 지낼 준비를 마쳤다. 고사상엔 커다란 돼지 머리가 유난히 돋보이고 주과포가 가득한 가운데 향로의 향내가 쇠부리의 순조로움을 기원하는 부리꾼들의 마음을 정연하게 한다.
이즈음, 신나게 울리던 풍물이 그치고 전주와 부리꾼들의 재배에 이어 축문이 놀이장의 분위기를 조용하게 한다. 축문이 끝나고 다시 풍물이 서서히 울리면 제의에 임한 부리꾼들은 고사상을 중심으로 무리 지어 어깨춤을 추며 모여든다.
라. 식음의장
고사상을 중심으로 모여든 부리꾼들은 공양주가 주는 술잔을 받으며 음복을 즐긴다. 음식을 나누는 공양주나 술잔을 권하는 전주등 모든 이의 행위엔 춤사위가 깃드는데, 계속되는 풍물패의 악에 맞추는 어깨춤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덩달아 어깨춤을 일게 할 정도이다. 얼마만큼 식음을 한 뒤 풍물이 고조되면 부리꾼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쇠부리에 임할 태세를갖춘다.
그 이전에 운반꾼이 불매를 중심으로 둘러친 오색의 금줄은 원형으로 간간이 바람에 휘날리는데, 그대로 둔 채 운반꾼들은 숯과 쇠를 나르기 위한 준비를 위해 좌우로, 불매꾼은 풀무위로 오른다. 또 다른조(후거리)는 풀무 앞에 올라 같이 오른 편수들과 함께 쇠부리에 임할 지시를 하는 등 부산하다.
마. 쇠부리의장
골편수가 골바닥에 불소시게를 까는 행위를 하고, 숯대장에게 지시해 토둑 안에 숯을 채우려 한다. 숯대장의 감독아래 숯쟁이들 모두가 지게로 숯을 채우는 동안 불매대장은 선거리(선조)의 불매꾼을 정해진 장소에 대기시킨다. 이때 이미 각 분야의 분업에 따라 각기 장소에 따라 대기중인데, 이때도 물론 어깨춤은 계속된다. 모두가 대기 또는 집단으로 조화를 이루고, 여러개(5~6) 3색 깃발은 용광로 뒤에서 펄럭이는데, 여기에 시각적 묘가 있다.
불편수가 뒷불편수에게 불씨로 불소시게에 불을 붙이게 한다. 불이 붙어 토둑(용광로) 위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오르기 시작하면 불편수는 불매대장에게 “불매 올려라!”하고 외친다. 용광로 위에 서서 지시를 하는 품이 사뭇 위압적이다. 이전에 불편수에게 먼저 지시 받은 운반꾼과 숯쟁이들은 바쁜 걸음으로 숯을 운반하고 있는데 그 행동이 율동적이다.
불매대장의 지시를 받은 불매꾼들은 “불매 불자”하며 재빠르게 불매판을 디딘다. 서너 번 동작을 맞추는 구령을 하다가 점점 불매판 밟는 동작이 빨라지며 불매노래를 부른다. 선창은 불매대장 외에 별도로 내정된 불매꾼의 리더격인 사람이 소리 높여 부른다. 불매꾼들은선조 후조 모두 힘차게 후렴을 제창한다.
걸대장과 숯대장은 불편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숯쟁이 쇠쟁이 운반꾼들이 번갈아 숯과 토철을 붓는다. 편수들은 쇠부리의 순조로움을 위해 부산하게 점검하는 시늉을 하는데, 이때쯤 용광로의 불길은 하늘을 찌른다.
얼마가 지났을까. 불매노래가 고조될 대로 고조될 무렵, 골편수는 용광로 위를 오르며 길다란 쇠망치로 토둑의 외벽을 치는 시늉을 하며 쇳물의 고인 정도를 확인하고는 이윽고 “쇳물내자!”하며 활개치듯 행동 반경을 크게 하며 쇠창을 집고 초롱구멍을 뚫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숯쟁이, 쇠쟁이, 운반꾼등)은 “쇳물 나온다!”하며 환호하고, 좌우로 무리를 지어 “출출, 촬촬“하는 소리로 흥겹다.
바. 놀음의장
흥겹게 무리를 지어 춤 출 무렵 풍물패는 원을 그리며 신명나고, 전주, 편수는 만족해 깃발을 든 기수와 함께 용광로 꼭대기에 오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풍물패가 거의원형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 즈음 불매꾼, 운반꾼, 쇠쟁이, 숯쟁이 등은 불매 주위에 쳐진 오색의 금줄을 펼치며 용광로에 태울 준비를 하는데 한 꼬투리는 용광로 위에 선 편수와 전주가 잡도록 해 준다.
나머지 다섯 가닥은 놀이꾼 모두가 부채살 모양으로 펼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현란하게 할 정도이다. 신명나는 풍물에 맞추어 금줄은 용광로에 태워지고 쇠부리 놀이는 끝이 난다.
<자료출처> ‘쇠부리축제 추진위’ ‘울산광역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