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03. 주일예배 설교(요한복음강해 34)
요한복음 8장 31~59절
아브라함 잘·알·못
■ 청소년 은어 중에 ‘잘·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 알고 있다’의 줄임말입니다. 무언가 또는 어떠한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야구를 잘 알면 ‘야·잘·알’, 게임을 잘 알면 ‘겜·잘·알’ 등으로 쓰입니다. 그러면 ‘잘·알’의 반의어는 무엇일까요? ‘잘·알·못’ 또는 ‘알·못’입니다. 이것은 ‘잘 알지 못한다. 알지도 못하면서’의 줄임말입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믿음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봐서는 딱히 그럴만한 건수도 없었는데 믿음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입니다. 참 희한안 일입니다. 그래서 들여다봤습니다. 과연 이들의 믿음은 무엇인가하고 말입니다. ‘잘·알’일까요, ‘잘·알·못’일까요? 자, 시작해 볼까요? 렛츠 기릿!(Let’s get it!)
■ 자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생기자 예수님은 31~32절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새번역)
예수님은 믿는다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였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한다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을 순종하고 살면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고 싶으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됩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진리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게 되는 순간 그렇게 찾고 기다리던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유는 모든 염려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특히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사실 인생에서 제일 큰 불안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도 적지 않은 불안이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은 훨씬 큰 불안입니다. 그래서 염려의 대부분이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게 되는 순간 바로 이러한 염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자유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을 합니다. 33절입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이들의 질문에서 보게 되는 심리 상태는 어리둥절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늘의 소리, 하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의 개념, 육체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이 아브라함을 꺼낸 이유는 하늘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고 듣고, 따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를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말씀이신 예수님, 진리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렇게 믿었다고 설명되는 이들에게서 잠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정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4~38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이해가 되시죠? 여기서 이해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종’(從)과 ‘자유’(自由)의 상관성입니다. 종이기 때문에 자유가 없는 것이고, 자유를 누리려면 종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들이 아닌 죄의 종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지만, 아들이 종들에게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들이 아들을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자유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38절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 폭로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I am telling you what my Father has shown me, just as you are doing what your father has taught you.)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너희 아비는 아브라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도 충격적이기에 충격을 받은 이들은 바로 이 사실을 되짚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39절)
이에 예수님이 뭐라 답변하셨는지 보십시오. 매우 흥미롭습니다. 39~40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 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증거를 이렇게 대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41절)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41절)
이에 예수님은 긴 설명을 하셨습니다. 42~4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예수님의 평가는 단호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도 아닌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도, 믿지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을 보면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들은 그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48절을 읽으면, 그들이 길길이 뛰는 것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도 하고, 귀신이 들렸다고도 하는데, 그 말이 옳지 않소?’”(새번역)
이들의 말인즉, 오히려 당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오히려 당신이 귀신들린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야, 이 미친놈아!’였습니다. 예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49~51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무엇인가요? 52~53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이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은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는 25절에서 질문한 그 질문입니다. ‘당신 누구요?’ 이들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셨을 것 같습니까? 54~56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응수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은 나를 알아보는데 너희들은 나를 못 알아보는구나!’며 한탄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알아들을리 없는 그들을 57절에서 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아마도 이러한 말은 아비 마귀에게서 나온 그들이 할 수 있는 말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58절에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이 정도로 이야기하셨으면 알아들었을 법도 한데 이들은 끝내 <잘·알·못>이었습니다. 59절을 보시죠.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아직 때가 안 되셨기 때문에 그들을 피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 하나님과 신앙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구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회라는 조직과 운영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과 신앙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알지만,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모르고, 교회는 오지만, 교회의 전부이신 예수님은 만나지 않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현상을 분석만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진리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게 할까요? 진리를 발견한 우리가 진리 가운데서 누리는 자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이 아닌 삶으로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기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의 ‘잘·알·못’이 아닌 ‘잘·알’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실천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십자가의 실천적 사랑을 본받아 살 때, 신앙 회의자들, 신앙 시비자들을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입니다. 이를 위한 수고를 비전교인들이 열심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