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6. 주일예배 설교
시편 23편 1~6절
설날, 가족의 의미를 깊이 느끼는 날
■ 설의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2002년 2월 9일자, ‘오마이뉴스’가 잘 설명하였더군요.
잘 아시다시피, 설은 새해의 첫 시작입니다. 지난해인 묵은해를 정리하여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입니다. 이런 설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몇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1. 먼저 “섧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선조 때 학자인 이수광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보면, 설날이 ‘달도일’(怛忉日)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렇게 달도일인 설날은 한 해가 지남으로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입니다.
2. 다음은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했다 설(說)이 있습니다. 세시기(歲時記)라고 있습니다. 일 년 중, 철을 따라서 행하게 되는 여러 가지 행사를 적어 놓은 책이 세시기입니다. 각종 세시기(歲時記)들에서 설을 신일(愼日)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3. 또 하나의 설은 나이를 말하는 즉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연세설(年歲說)도 있습니다. 한국말을 유래시킨 우랄 알타이어계 중에서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고 합니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솟는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4. 가장 설득력 있다고 보는 설입니다.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입니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입니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문화적 낯섦의 의미로 생각되어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답니다. 이 ‘설은 날’이 ‘설날’로 바뀌어졌답니다. 설득력이 크지요?
5. 이 밖에 한 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설다. 낯설다”의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만, 다른 것들도 제법 설득력이 있죠? 여하튼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열린 것이고, 그 길에 첫 걸음을 내딛는 날이 설날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길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설렘을 갖습니다. 물론 무덤덤한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는 시간 속에서의 설(날)의 의미였습니다. 이제 사실상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 안에서의 설(날)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설날을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 않습니까? 당연히 가족이 만나는 날이고, 당연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의 출발이 가족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님의 만남에서 나의 출발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중 가족이 아닌 곳에서 인생이 출발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해의 출발을 가족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의미, 사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가족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족은 무엇입니까? 어떤 의미입니까? ‘가족’으로 이행시를 한번 진행해 볼까요?☺
1. 가족은 ‘오늘의 위로, 내일의 용기’입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가족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대하십니까? 철저하고 안전하게 보호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위로와 용기로 가득한 말씀입니다.
① 하나님은 가족에게 무엇보다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이는 욕구(慾求, want)가 아닌 필요(必要, need)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욕구란, 필요이기도 하지만 욕심이 늘 끼어있습니다. 필요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이런 필요를 부족하지 않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② 하나님은 가족의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4절의 사느냐 죽느냐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5절의 어떤 권력과 폭력 앞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내 편이 되 주십니다.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것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시듯 가족은 마지막까지 가족의 위로여야 합니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의심해도, 가족은 끝까지 인정하고 믿어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은 오늘을 위로 받는 곳입니다. 하루 종일 시달려 지친 육체와 영혼이 위로 받고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또한 내일을 위한 용기를 공급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을 실패했지 내일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을 실패한 것이지 내일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듯 가족은 위로와 용기여야 합니다.
2. 가족은 ‘평생 따르고, 이끄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읽은 시편 23절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특히 6절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자, 6절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행동이 무엇입니까?
① 내 평생 반드시 나를 따라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평생 내 지지자’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이렇게 가족은 가족에게 평생 지지자여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원수의 목전”에서도 지지자이고, 평생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자여야 합니다. 가족은 공격자가 아니라 보호자고 지지자여야 합니다.
② 내가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도록 해주십니다. 변함없는 ‘영원한 집’이십니다. 어떤 시간에도 말입니다. 성공했을 때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집이십니다. 잘했을 때뿐만 아니라 잘못했을 대도 집이십니다. 언제나 쉬고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가족은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집이어야 합니다.
■ 혹시 설날, 낯선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날, 가족이 모였을 때, “내게 가족은 언제나 내 편이었고, 내게 부족함이 없었고, 영원한 집이야!”라는 말을 나눴다면 최고의 설날이 되신 것입니다. 어쩌면 설날은 이 사실을 확인하는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최고의 덕담이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비전 가족 여러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인 낯선 2020년의 첫 걸음을 내디디신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가족은 지금껏 설명 드린 가족이시길 소원합니다. 낯선 인생길을 사는 동안 지치고 쓰러지는 상황이 수도 없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의 지지자요, 평생의 공급처요, 평생의 은신처와 쉼터인 그런 가족이 있다면 얼마든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그런 가족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시편 23편 1절과 6절을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 읽어 보겠습니다. “가족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가족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가족과 함께 영원히 살리로다.” 가족은 마지막 보루(堡壘), 최후의 쉼터입니다. 영원히 서로 사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