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8. 주일설교
전도서 6장 10~12절
지금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신다.
■ 인간은 흔히 자기 뇌의 10%도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천재과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 자기 뇌의 15% 이상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19세기 심리학자인 윌리암 제임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보통사람은 뇌의 10%를 사용하는데 천재는 15~20%를 사용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인간의 뇌사용 비율을 10%가 아니라 6%라고 수정했습니다. 1990년대에 와서는 단지 1% 이하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고, 최근에는 아예 0.1%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제기됐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뇌의 몇 %를 쓰고 있다고 보십니까?
뇌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기억하는 곳입니다. 한 개인의 ‘살아있음’과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 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가 100% 사용된다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고, 다 깨달을 수 있고, 다 기억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처럼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뇌의 100% 사용의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이 지상에서는 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혜를 다 날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같이 전지(全知, 모든 것을 다 앎)와 전능(全能, 모든 것을 다 함)은 아니지만 거의 알고, 거의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지상에서 뇌를 100%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깨달을 수도, 기억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더 정직한 표현은 우리가 아는 것, 깨닫는 것, 기억하는 것 모두가 형편없다는 사실입니다. 죄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은 한계적 존재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사실을 전도서 기자는 6장 10~12절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 6장 10~12절을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오래 전에 생긴 것이다.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도 이미 알려진 것이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다. 말이 많으면 빈 말이 많아진다. 많은 말이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가?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갖고 있는 번역본 보다 이해하기가 쉽죠? 그렇다면 전도서 기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1. 지금 일어나는 일은 ‘운명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10절)
특히 이 일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운명은 모든 인간 보다 강한 자가 해 놓으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일을 변경하거나 건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섭죠?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커다란 의문, 의심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이미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일, 운명적인 일이라면, ‘우리가 수고하며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수고해야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된다니 말입니다. 결국에 인간에게는 자율, 자유라는 것이 한 터럭도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지는 말라’고 하신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결론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살면 저렇게 된다고 하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느냐, 자기 멋대로 사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결과일까요? 아니면 뜻대로 살지 않은 결과일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응보가 아니라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할 일입니다.
2.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떠드는 많은 말들은 빈 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많은 해석과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다 헛말입니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11절) “말이 많으면 빈 말이 많아진다. 많은 말이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가?”(새번역)
일어난 일에는 언제나 여러 해석이 등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 숫자만큼 해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답과 진실은 언제나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다 헛된 말입니다. 그럼에도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늘 큰 목소리와 논리 정연한 목소리가 진실을 대신합니다. 물론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실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하나님이 혹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 과연 하나님이 혹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많은 말들이 잠잠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3.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이유를 인간인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12절)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좀 더 살아 봐야 다 이해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다 이해가 되기 전에 죽습니다. 조금 더 살아보면 다 이해가 될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죽기 전에 이해되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오해와 불만, 불평 속에 살게 됩니다. 조금만 더 살면 알게 되고, 이해됐을 텐데 말입니다.
전도서 기자의 유머는 폐부(肺腑)를 찌릅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기 전까지도 알지 못할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어쩔까요? 그러므로 이 말씀의 속뜻은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생과 운명에게 시비하지 말고, 이 일의 의미와 가치를 하나님께 넘겨 드리라는 뜻입니다.
‘코로나19’, 과연 무슨 의미이고 가치일까요? 우리가 죽기 전에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을까요? 이 사태의 가치를 다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알기 위해 애써야 할 것입니다. 아는 것에 힘쓰는 것도 우리의 신앙적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알게 해주실 시간을 견뎌내는 것도 신앙입니다. 신앙은 자유와 자연을 잘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건이 클수록 말쟁이들이 많아집니다. 진실을 가장(假裝)한 헛소리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등장합니다. 선지자 노릇하는 이들이 사방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진실을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는 따로 있습니다. 그 진실을 아는 것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진실을 알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이고 우리의 자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겪는 현재의 일,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잘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의 답을 하나님이 또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뇌가 알고 있지 않습니다. 알고 있더라고 희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답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온 맘과 온 몸으로, 그리고 온 영혼을 다해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그런데 혹시 이 일에 대한 답을 이 생이 다하도록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듣지 못한 것은 하나님 나라 가서 들을 것으로 넘기고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인생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비전교인들의 신앙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