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5. 주일설교
이사야 29장 15~16절
마스크 천국에서
■ 시절이 ‘코로나19’ 사태인지라 대부분의 만남을 자제하며 지냈지만 제자들과의 만남은 자제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완전무장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큰 쇼핑몰이 임시휴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입니다. 제자들보다 좀 일찍 도착했기에 얼른 연락책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신은 잠시 후에 도착할 것이고, 이미 와 있는 친구가 있다며 그에게 교수님께 전화해서 모시라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전화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리고 3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 있던 한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세상에! 제자였습니다.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가까이서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척에 있었으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혹시 100년 만에 만났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마스크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는 흰 마스크, 저는 검은 마스크를.☺
마스크 천국시대를 살면서 마스크의 용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스크는 전면을 가리는 전면 마스크가 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코와 입을 가리는 부분 마스크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부분 마스크 중에는 눈을 가리는 마스크도 있더군요. 이 마스크는 그 용도가 크게 보호용(방어용)과 은폐용(위장용)으로 구분됩니다. 요즘 우리의 마스크는 보호용(방어용)입니다. ‘코로나19’로부터 우리는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미세먼지가 심한 때도 보호를 위해 사용하지요.
그런데 마스크가 은폐용(위장용)으로 사용될 때는 선한 목적 보다는 악한 목적일 때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강도짓이나 도둑질 등과 같은 해악을 저지를 때 사용하지요. 자신이 하는 못된 일을 숨기기 위해서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스크를 은폐용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못된 일을 은밀하게 진행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분노와 경고의 말씀입니다.
■ 오늘 본문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금 번역본 보다 쉽게 번역된 것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스스로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너희, 너희는 하나님을 밖으로 내보내고 몰래 일을 꾸민다. 만사를 모두 꿰고 있는 것처럼 장래 일을 계획하고, 은밀하게 활동하며 정체를 숨긴다. 너희는 모든 일을 뒤집어서 생각한다! 옹기장이를 진흙 덩어리처럼 취급한다. 책이 저자를 두고 ‘그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음식이 요리한 여자를 두고 ‘그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메시지)
하나님이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분노하십니까? 자기의 계획을 하나님께 숨기는 자들에게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계획을 숨기는 것 때문에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혹시 이 계획이 착한 계획인데도 분노하시는 것일까요? 오른 손이 하는 착한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아닙니다. 착한 일을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15절을 한번 보세요.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자, 생각해 봅시다. 이들이 계획한 일이 착한 일이라면 어두운데서 꾸밀 일일까요? 그리고 누가 볼까 두려운 마음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요? 어두움 가운데서 은밀히 진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못된 일, 악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을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은밀한 것도 문제지만 이는 둘째 문제입니다. 은밀히 꾸민다고 모르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꾸미고 있는 일이 악한 일이고 못된 일 그 자체이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토기장이를 진흙 같이 여기는 태도입니다. ‘메시지’ 번역본으로 읽으면, “옹기장이를 진흙 덩어리처럼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옹기장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진흙 덩어리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속일 수도 있고, 속여도 되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니고, 별 볼일 없는 양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무시해도 되는 분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매우 우스운 것입니다.
16절을 한번 보시죠.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 저는 이 말씀 읽으면서, 왜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으실까요? 이 사태는 신천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꾀하는 일들이 오늘 본문과 같고,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본문의 말씀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태도’가 있는데 이것은 신천지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특징적인 태도입니다. 15절에 보시면, ‘그들은 어두운데서 일을 행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 또한 신천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15절에 보시면,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는 태도’가 있습니다. 이 또한 신천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16절에 보시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진흙 덩어리처럼 하찮게 여기는 태도’가 있는데 이것 또한 신천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신천지 사람들에게 이만희는 하나님입니다. 보혜사(성령님)와 동격이라고 하지만, 보혜사 그 자체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만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특히 144,000명만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이 숫자에 들기 위해, 그리고 이 숫자를 위해 그들은 거짓말과 속임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하나님인 이만희를 위해 신분을 속이거나 위장하고 삽니다. 전국에 얼마나 많은 신천지 위장 집회소와 단체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특히 기성교회에 위장하여 들어와서는 얼마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을 파탄에 빠트리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모든 것은 어둠의 자식들의 태도요 행동입니다. 은밀하고도 거짓되게 행동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만희와 144,000명 이외에는 모든 것이 우습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조차도 우습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만희, 오직 144,000명, 오직 불사(不死)만 있을 뿐입니다. 자신들 외에는 사람도 아니고, 이만희 외에는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는 이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노를 나타내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분노의 맹렬함을 지금 보이시는 것입니다. 신천지를 향한 분노를 지금 쏟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참에 한국교회에도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매우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무엇일까요?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두렵고도 떨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천지에게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너무도 많이 빼앗겼습니다. 신천지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신앙 생활하던 성도들입니다. 집사, 권사, 안수집사, 장로, 심지어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10대, 20대 젊은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을까요?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 만큼 이유와 원인은 복잡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를 우습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사실을 우습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성도들을 하나의 성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개(個)교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내 교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내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태도로, 내 교회만 좋은 교회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살라고 단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렇게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천지가 날뛸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입니다. 신천지는 이 약점을 철저이 이용해 한국교회에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무서운 결집력과 공동체성으로 기성교회와 기성신자들을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가족보다도 더 친밀한 돌봄과 조직력으로 한국교회를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자기 교회만 알고, 자기 교회 세력(勢力)만을 불려가는 동안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신천지에 대해서만 말씀하실 일이 아니신 것입니다. 신천지와 같지는 않지만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태도와 모습에 분노하심은 너무도 당연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 어디를 가든 마스크입니다. ‘마스크 천국’입니다. 그러나 마스크 천국은 우리가 만든 아픔입니다. 그리고 불안입니다. 과연 언제나 이 아프고 불안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요? 의학적으로 보면, 마스크 잘하고, 손 잘 씻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만사를 조심하다 보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의학적 깨달음만이 아닙니다. 신앙적이고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무엇입니까?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라는 사실을,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도라는 사실을 놓치고 산 것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이 마스크 천국이 끝날 것입니다.
너희 교회, 내 교회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를 말하고, 서로를 위하고 챙겨주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와 세계를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민족만을 사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계를 품고 사랑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수만이 아니라 소수도 품고, 힘없는 이들은 더욱더 품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만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정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개교회중심이 아닌 하나의 교회로 살아갈 때에야, 진정한 신앙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비전교회부터라도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너네 교회, 우리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약자와 소수자, 힘이 없고, 힘을 빼앗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품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스크 천국이 끝나는 날, 마스크 속에서 깨달은 하나의 교회를 위한 미소를 멋지게 드러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