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글]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 전영철 대표는 11월 3일 춘천시 후평동에 소재한 재세례파 교회인 예수촌교회에서 열린 『KAC(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창립 11주년 감사 예배 및 세미나』에 참여하여 예수촌교회 회중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전영철 대표는 국가의 강요나 국가의 법에 지배 받지 않는 신자들이 구성원이 되는 공동체 지향의 재세례파의 급진성에 주목하여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게 됐다.
다음은 예수촌교회의 리더 중 한 사람인 김태민 님이 <새기운>카페에 올린 편지와 이에 대한 전영철 대표의 답장이다.
안녕하세요? 전영철 님.
저는 예수촌교회의 리더 중의 한 사람인 김태민이라고 합니다. 형제님(저희는 다 형제, 자매라고 불러서요)에 대한 얘기를 잠깐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카페에 들어오게 됐네요.
새로운 기독교운동에 관련한 취지에 적극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아직도 성경의 무오성을 믿고, 기적을 믿으며, 유신론적 하나님을 믿고, 창조론도 믿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훼손되는 세상과 대안사회가 아닌 종교집단화 되어 있는 기독교회에 대해 분노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정의와 사랑과 생명과 평화를 큰 축으로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의해 훼손된 창조질서를 회복할 책임이 예수를 통하여 교회에 주어졌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 비판만 하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세우셨습니다. 그 대안은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이방종교집단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무너져 버린 '세상 사회'에 대한 대안인 '새로운 사회'로서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왕국의 지상적 표현인 교회는 무너진 세상에 "대안사회"를 형성하여 하나님왕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회' 안에서 그들의 삶을 다시, 그리고 더 풍성하게 세워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예수가 말씀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이고, 그 모델로 초대교회가 세워진 것이죠. 초대교회가 공동소유를 지향한 것은 생산요소가 사유화되어 다수가 소수의 착취 대상이 되는 세상적, 자본적 질서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성경은 그들 중에 핍절한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의 삶의 시스템이 자본적 방식에 그대로 지배받는 한, 교회가 아무리 입으로 사회변혁, 예수 혁명을 외쳐도 세상은 교회로 부터 어떤 도전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혁명은, 교회가 자본의 원리에 저항하여 소유를 서로 나누고 하나님의 창조원리대로 생명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나가는 공동체, 대안사회를 형성하여 하나님왕국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세상에 보여줄 때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교회는 세상의 대안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삶의 일부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삶의 총체적 국면을 다루면서 하나님왕국의 원리에 맞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찾았다며 기뻐하며 들어올 수 있는 곳, 그들과 함께 상생의 경제방식을 일구어 가며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이루어 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외침을 공허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탐욕을 포기 못한 채로 하는 하나님왕국 운동이 효과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재세례파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또 교회사에서 재세례파의 위치만 유독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재세례파 외에도 진리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재세례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 예수,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게 급진적인 제자도를 요구합니다. 그 급진적인 제자도의 중심에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공동체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상생의 원리죠.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땅과 땅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삶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땅을 통해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 세상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더 많이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은 제게 땅 한 평도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의 손에 만들어져서 인간의 탐욕을 대변하는 소유화된 식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수많은 잠재 식량인 야생초(일명 잡초라고 하지요)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제게 보여주신 만큼 가려고 노력합니다. 아직은 저 혼자 고민하고 연구하는 단계이지만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새기운의 글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낡아 폐기처분되어야 할 교회들 대신에 새로운 교회들을 일으키고 계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새기운이 보다 더 많은 교회에 확산되기를 기도합니다.
김태민 님께
오래 기다렸습니다. 님과 같은 분이 나타나기를. 그리고 그날은 반드시 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의 적극 참여는 있었지만 정작 기다리던 기독교인들의 힘찬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덕담이 아니라, 목숨 내놓고 부르짖는 기독교인의 부르짖음 말입니다.
주변에서는 절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는 마르크스주의자들 밖에 없느냐. 왜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는 하나님의 목소리, 예수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느냐. 목말라하고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님은 타락한 기독교가 아니라 제국기독교 이전의 초대교회의 절절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예수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온유한 예수의 영성 뿐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내다보며 악의 세력을 끝장내는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하는 장엄한 혁명정신을,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과감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님은 물질을 신으로 떠받들며 무소불위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폭력적 자본체제에 대하여 이미 2천년전에 물질을 함께 나누는 초대교회인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과격한(?) 사회주의자들 이상으로 근본적인 비판과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새기운>은 ‘영성’과 ‘혁명’을 함께 추구하는 모임입니다. 어떤 종교, 어떤 종교예식을 따르느냐 하는 종교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초대교회를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원형을 가장 가깝게 반영하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한 교회였던 것으로 압니다. 초대교회는 훌륭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생각, 예수의 마음, 예수의 행동과는 차별화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초대교회조차도 마음 놓고 따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영혼이 있는 곳에 몸이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몸 된 회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회중의 성격을 벗어나서 종교적 예식을 갖춘 교회로 제도화될 때는 문제가 다릅니다. 그 한 본보기로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하나님으로 인정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를 공식적으로 하나님으로 승격시킨 것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 때부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싹은 초대교회 때, 아니, 복음서속에, 이미 나타나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방종교의 영향을 받아, 거의 처음 무렵부터 예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열정은 우상파괴자인 예수와는 달리, 그 많은 부분이 예수숭배에 집중되었습니다. 고유한 예배의식과 배타적인 신앙고백도 형성되어갔습니다. 어쨌든, 초대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훌륭한 무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형의 예수와는 다른 것이 분명합니다.
<새기운>은 지도계층과 일정한 신앙고백문이 형성된 제도교회와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서조차도 예수의 본디 뜻을 저버리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또 그것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새기운>의 초점은 초대교회에 앞선 원형의 예수로서 여기서 예수는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예수의 삶을 사는 사람 되는 것, 제도화 된 교회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의 분신이 되는 일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제도화된 교회가 아니면서 초대교회가 보여준 하나 된 회중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재세례파(아나뱁티스트)의 회중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관심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헤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뜻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님의 신앙체계는 물론 충분히 존중하되 우리의 관심은 종교 이전의 예수에 있음을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세부적인 면에까지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공명(共鳴)한다면 우리들은 100% 만족할 수는 없을지라도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우리의 원칙은, 만남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단순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만나기를 기대하는 지점, 우리가 갖고 있는 대원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하나입니다.
이 같은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하실 말씀이 많으실 줄 압니다. 가능한 한 더 분명하고 세부적인 사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한 한, 크게, 기탄없는 도전으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원칙, 대전제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리해주십시오. 그 도전이 클수록 <새기운>은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 도전을 거름으로 <새기운>은 성장할 것입니다.
<새기운>은 모든 종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타종교인들에게 그리고 사회주의운동을 하는 좌파운동가들에게 널리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원칙에만 동의한다면 말이지요. 이것이 영성과 혁명을 통해 세계 변혁을 추구하는 <새기운>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새기운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새기운 초청장 ]
지난 2천년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들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 하나 있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을 여러 사람들의 합작으로 그려진 것을 2천년이 지나면서 이것이 원형이라고 불변의 진실로 주장된 이 그림. 그러나 처음의 그림조차도 본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의 손으로 그려진 조각그림을 이어붙인 모자이크 그림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 것은 모자이크로 합성된 처음 그림 앞에서 절하는 일이 아니라 그 그림의 바탕이 된 원 모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그림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원 모델은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2천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얼룩지고 일그러진 저 모자이크 그림 저편 찬란한 후광 속에 가리어진 본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2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직도 때 묻지 않고 본 모습 그대로 있을 원형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탐험에 함께 하시지 않으렵니까.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 새기운
http://newchristianity21.org/http://cafe.daum.net/VoiceOfNewChrist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