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일이란 없다. 성서는 심지어 이스라엘을 유린하고 약탈한 이방침략자들의 만행조차도 하나님은 타락하고 정신 나간 이스라엘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그들의 손을 잠시 빌린 것이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때로는 건전한 이성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주장들이 오히려 가로 막힌 담을 헐고 역사적 발전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에 일어난 사태만 해도 그렇다. 회원들의 동의 없이, 네 사람의 준비위 대표들에 의해 발표된 ‘1.13 공동선언문’ 이 보도되자, WCC에 가입하는 일은 ‘에이즈환자와 동침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며 WCC조직 자체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안티WCC세력이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그와 같은 공동선언문은 논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는 이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동선언은 우려의 목소리보다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만큼, 한국기독교사회에서는 여타 해외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정리 완료되어 공인된 전근대적 사안들이 아직도 유령처럼 백주에 활보하고 있다. 자신의 교회, 자신의 교단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양도 마다하지 않는, 정복자의 야망을 숨기지 않고 노출하는, 과거 서구제국교회의 야만적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대 환성을 지른 것은 흔히 말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일말의 가책은 이를 계기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즉각적으로 에큐메니칼 진영의 학자들은 심포지움을 열었다. 그것은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공동선언문’이 보여준 진정한 뜻은 아직껏 해결하여 정착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준 점이다. 다행히도 ‘공동선언문’은 우리가 짚어야 할 문제, 우리가 알기는 알아도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일, 과감하게 이야기하지 못한, 미해결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말해준 것이다. 문제의 제시만이 아니다. 이제는 그 문제를 확실하게 짚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 더 이상 늦을 수 없는 막바지 한계에 이르렀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21세기가 되도록, 아니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기독교인의 뇌리에서 이스라엘이 수난 당했던 바빌론과 앗시리아 제국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강대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 정복자의 잔인함과 악랄함 때문이다. 오늘 한국기독교계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타 종교계나 문화계에 화제를 뿌리고 있는 ‘공동선언문’은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그것은 어쩌면 이를 작성하면서 우쭐거렸을지 모르는, 동조하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구태의연한 신앙고백문을, 기억이라도 해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 것인가.
세상에는 일을 내는 사람, 곧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을 푸는 사람과 매듭짓는 사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엔 일을 내는 사람이나 푸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서로 우쭐거리며 내가 잘났다고, 내 생각이, 내 신앙이 옳다고 내심 미소 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모래성을 쌓고 또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를 휩쓸고, 언제 그곳에 모래성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파도다. 밝아오는 계사년을 지척에 둔 이 시점에서 문제의 ‘공동선언문’이 이 땅에서 열릴 제10차 WCC 총회를 더욱 뜻깊은 밑거름으로 승화될 것으로 믿는다.
2013년 2월 6일
전 영 철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대표)
[글쓴이 소개] 전 영 철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 대표, 우석대학 명예교수(영문학), 마음사랑교회 목사.
전영철은 2011년 5월, 인류의 역사에서 제국주의 기독교의 시발점이 된 1차 니케아공의회(325년)를 현지 답사차, 공의회가 열렸던 오늘날의 터어키 이즈닉(Iznik)을 방문했다. 전영철은 니케아공의회에서 비롯된 종교적·정치적 야합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종교간 적대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적인 기독교인·무슬림·유대교인들과의 진솔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11년 11월에는 메카 순례(Hajji)에도 참가하는 등 국내외 무슬림과도 직접 대화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불교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인 인드라망 정신을 변혁적인 원형의 예수정신과 연계하여, 가난한 이웃들이 스스로 그 사회의 주체로 성찰하고 네트워크화 할 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된 종교운동의 하나됨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