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초에 경남 지역의 한 여교사가 승진에 필요한 ‘근무 평정(이하 근평)’ 때문에 자살했다. 그런 비극적 사태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비단 그 일만이 아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2001년 9월 24일, 전남 나주의 공산중학교 모 교사가 같은 이유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교감으로 승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근평 1등 수’를 한 학교에서 단 한 사람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살로 까지 항거하지 못해서 그렇지 많은 중견 교사들은 ‘승진 의자놀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 못할 고초를 겪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혹자들은 ‘근평’을 아예 폐지하고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그 제안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교직 사회나 형식적인 근거를 중시하는 인사제도의 원리를 고려하여 근본적인 시각에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각적·점진적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 ‘전근대적인 관료제도’가 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근본 원인은 교장, 교감과 평교사 간의 처우에 너무나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많은 수업과 생활 지도, 행정 업무 등으로 숨쉴 틈이 없는 반면, 교장·교감들은 업무 분장을 통해 행정 업무 및 잡무마저 교사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그래서 교감 승진 연수를 받게 된 교사들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진국들처럼 교사의 정원을 충분히 배치하여(현재 법정 정원 확보율은 약 80% 정도임), 교사들은 정해진 수업과 상담만 하되 연구 및 상담 시간을 충분히 갖게 하는 반면, 교장·교감은 약간의 수업과 생활 지도를 직접 수행하게 하고, ‘교무행정사’들을 활용하여 주요 행정 업무 및 각종 잡무의 대부분을 관장하게 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무행정사’의 대폭 충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만 예산과 고용 정책의 제약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목숨 걸고 승진하려는 교사는 줄어들고 오로지 아이들만 바라보고 교육 활동에 열성을 다하는 교사가 많아질 것이다.
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들도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고 상담하면서 학교와 교실에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효과적인 지원과 지도를 할 수 있고 교육자로서의 보람과 ‘소일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학교 중심의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이 위축될 것이다.
현행 ‘점수 위주’ 승진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의 ‘공정성 결여로 인한 비리 조장 효과’와 ‘타당성 결여로 인한 학교 운영의 파행 유발’이다. 승진에 뜻을 가진 교사들은 초임 때부터 ‘교육의 본질’ 따위에는 관심을 끊고 한 눈 팔지 않고 경력, 연수실적, 근무성적, 가산점 등 크게 4가지 영역에서 20가지 이상의 각종 점수들을 부지런히 모아야 된다.
한 마디로 ‘점수의 노예’로 살아간다. 소수점 셋째자리까지 점수를 다투어 승진 연수 대상자가 되어 승진 연수를 받고 자격증을 따도, 또 점수를 모으고 ‘근평’을 잘 받아야 빨리 임용이 된다. 한 마디로 ‘산 넘어 산’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그런 점수들을 따는 것이 ‘실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연줄’과 ‘아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복잡하고 까다롭게 선발해서 임명된 상당수의 교육 관료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학교 운영이 억망이 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그처럼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교사들이 왜 그런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제도’에 순응하는가? 사실 연로한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와 까다로운 학생·학부모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승진 못하면 조기 퇴직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를 쓰고 승진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한편 이미 따놓은 점수가 많은 교사들은 급격한 제도의 변화로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개혁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자는 대학처럼 아예 ‘교장·교감 자격증 제도’를 철폐하고 공모에 의한 ‘교원직급보직제’로 바꾸어 교장이 학교에서 ‘군림’하는 대신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너무나 큰 난제이므로 세부 내용은 다음 기회에 얘기하기로 한다.
최하책으로 현행 ‘점수 위주’ 승진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매우 섬세한 개혁 조처를 취해야 한다. 우선 나이 들어 승진 못하면 ‘무능교사’로 인식하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교장·교감·장학사 보다는 평교사가 우대받고 존경받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풍토가 조성된다면 교사들이 지금처럼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굳이 교장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교사들의 ‘살인적인 승진 경쟁’를 완화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그리고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교장중임제(8년)’를 ‘단임제(4년)’로 바꾸되, 대신 능력있는 유자격 교장 경력자에게는 ‘공모제’를 통해 기회를 더 주면 좋지 않을까? 아울러 교장 자격증이 없어도 능력있는 평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확대하면 아쉬운대로 괜찮은 인사 제도가 될 것 같다.
화순교육·복지희망연대 공동대표 박세철: 010-8781-5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