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이 바뀌는 시점이 우리 아이 때는 아니길 바랐는데 딱 걸리고 말았다. 대입제도가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만큼 재수만큼은 꼭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교육에 더 매달리게 되지 않겠느냐?” “대입 정책을 3년 전에 발표하는 ‘사전예고제’를 시행해 예측가능성을 높인다고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3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학원에만 호재이고, 반면 학생과 학부모들이 제도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교육정책이 장기간 유지되면 학원엔 악재다.” 지난 8월27일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시안)’ 발표를 듣고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와 서울 강남의 사교육 업체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올해도 어김없다. 대입제도를 둘러싸고 해마다 반복되는 논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건국 이래 우리 대입제도가 크게 바뀐 횟수는 해방 이후 작년까지 16회(평균 4년에 한번 꼴)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정권이 바뀐 첫 해에는 대입제도가 여지없이 큰 홍역을 치르곤 했다. 불순한(?) 상상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돈 안들이고 정권의 존재감을 과시하기엔 이만한 효자도 없나보다. 정권들은 ‘조령모개 교육정책’이라는 ‘오명’을 언제까지 반복해서 들으려고 하는가?
교육부는 9월 23일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시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거쳐, 이런 내용이 담긴 ‘2015∼2016학년도 대입제도 확정안’을 발표했다.
201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수시모집 때 최저학력기준으로 수능 백분위 성적 반영을 금지하되, ‘등급’으로만 반영하도록 하고, 국어·영어·수학 1등급을 요구하는 식의 ‘과도한 수능 성적 반영’이 사실상 금지된다고 한다. 영어·수학 특기자전형도 제한돼 모집 규모가 지금보다 줄어들고, 수시모집에서 대학별 논술고사를 보는 대학도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수시모집 전형의 3가지 유형 중 하나인 학생부 위주 전형은 내신 성적 위주의 ‘학생부 교과’ 전형과 비교과 영역을 종합해 보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구분하기로 했고, 학생부 종합 전형은 현행 ‘입학사정관 전형’과 같다고 한다.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불신을 야기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입학사정관 전형’이 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앞서 지난 8월27일 교육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시안)’을 내놓으며, 수시 및 정시 전형 방법을 대학별 6개로 축소하고, 두 차례로 나뉘었던 수시 모집을 통합하며, 수시모집의 전형 유형을 학생부·논술·실기 위주 등 3개 유형으로 구분하고, ‘수시모집 지원 횟수’를 축소하며, 수능 점수는 정시에서만 반영하도록 유도한다고 했었다.
그 때 교육부는 3가지 ‘수능체제 개선안’도 함께 내놓으며 ‘폭탄 발표’를 한다. 불과 1년 만에 ‘수준별 수능’을 폐지하고, 현행 골격을 유지하는 ‘문·이과 구분안(제1안)’과 문·이과별로 교차하여 과목을 선택해 수능시험을 치르는 ‘문·이과 일부 융합안(제2안)’ 그리고 문·이과 구분을 아예 없애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한 ‘완전융합안(제3안)’을 제시했다. “제1안으로 정해놓고서 제2안과 제3안은 구색 맞추기 위해 내놓지 않았을까? 왜 ‘문·이과 통합안’을 내놓아 혼선만 초래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어떤 학부모의 ‘합리적 의심’에 공감이 간다.
수능체제 개편의 첫 시행 대상은 현재 중3 학생들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3은 아직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만큼 대입제도가 바뀌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도 모 중학교 3학년 한 학생은 “당장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 갑자기 새 대입제도가 시행되어 혼란스럽다”며 “친구들 중에는 자신의 수학 실력, 한국사 실력 등에 따라 찬반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또 지난 1월에는 올해 처음 시행될 ‘선택형 대학수학능력시험’(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나눠 수험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도)에 대해, 시험 시행 불과 10개월을 앞두고 ‘유보하자는 쪽’과 ‘강행하자는 쪽’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다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한 바 있다. ‘성취(절대)평가제’는 다행히 재검토하기로 했다지만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의 운명은 예측 불허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입 제도의 변화무쌍한 혼란상을 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단다.
그간 우리의 입시 제도는 ‘본고사’, ‘내신 성적’, ‘예비고사’를 조합하며 수시로 변형되어 오다가, 1980년대부터 때로는 ‘사교육 열풍’을 해결 한답시고 ‘내신(수시)’을 강화했다가 때로는 ‘변별력’을 높인다며 ‘수능(정시)’을 강화했다가 오락가락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수시를 강화하더니 ‘논술’과 ‘면접’과 ‘적성검사’를 도입했고, 이명박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특효약’이라고 선전하며 다양한 ‘스팩’을 쌓도록 학생․교사․학부모들을 몰아세운 바 있다.
최근 ‘2014 선택형 수능 유보 논란’과 ‘2017 수능체제 문․이과 융합안 논란’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필자가 그토록 강조해 왔던 ‘좀 더 근본적인 대입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우리 교육의 3주체, 학생․학부모․교사들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조령모개’식의 입시제도의 잦은 변경으로 인해 그간 얼마나 큰 혼란과 고통을 겪어 왔던가? 이제 이 길고 긴 질곡의 터널을 빠져나와야 할 때이다.
따라서 정부는 미봉책에 불과한 ‘대입제도 단순화’와 ‘수능 체제 개선’을 뛰어 넘어 보다 ‘긴 안목’으로 우리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모 교원단체가 줄곧 주장해 왔던 것처럼 국회 산하에 탈정치적·중립적 차원에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권력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는 ‘교육부’나 ‘대학교육협희회’가 아닌 ‘국가교육위원회’가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대학 서열 완화를 위한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안’이나 ‘대입제도 5년계획’같은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의 교육 제도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교육이 진정으로 국가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가 되도록 하자. 이제는 정부가 먹고 살기도 힘에 벅찬 국민들을 제발 더 이상 교육 때문에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용 : ‘문·이과 통합 땐 수학·대학별 고사 영향력 커질 듯’- 대입제도 개편 영향(김영우, 한겨레 - 함께하는 교육, 2013. 9. 9)
‘선택형 수능 어떻게 봐야 하나’(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 한겨레신문 논쟁, 2013.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