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독자들은 학대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 성중독자들은 대부분 암암리에 학대가 행해진 병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 학대와 수치감에 대처하기 위해 성중독자들이 채택하는 방어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그들은 병적인 수치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로, 그들은 자기 자신이 받아 보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줄 대리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그것은 결국 동반의존을 가져온다.
1. 도피(Escape)
- 성중독자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성행위를 통해 그 감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 성중독이 악화되면 될수록, 성중독자들은 성 상대자에 대해서는 점점 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된 목표는 감정의 고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성 상대자를 찾지 못한다면, 자위행위가 그들에게 ‘속성 처방’(quick fix)을 해 줄 것이다.
- 학대를 심하게 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은 다중 중독에 빠지기 쉽다.
- 도피와 기분전환이 특정한 화학 작용제나 행위(섹스, 일 등)를 중독적으로 만드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러한 것들이 보상(reward)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이다.
2. 동반의존성(Co-dependency)
- 병적인 수치감을 처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자아의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 동반의존성은 인정중독, 즉 인정을 얻기 위해 시도하는 행위중독이다. 성중독자가 치유되려면, 건강한 방법으로 인정받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동반의존성에 관해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대부분의 동반의존자들은 어릴 때 버림을 받은 사람들로,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또다시 누군가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극도로 두려워한다.
- 동반의존자들은 사람들을 자기 주위에 계속 있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 동반의존성은 일시적으로 수치감을 덜어 주지만, 장기적으로 오히려 수치감을 증가 시키는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정받고자 하는 절실한 욕구와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감정의 진폭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것은 끝없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 성 중독은 매우 강력한 것이다. 그것은 병적인 가정이 만들어 낸 병적인 수치감을 다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 성은 매우 매력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마귀가 사용하는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료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 성중독자가 행위표출을 멈추도록 도우려면, 우리는 우리에게 동의하는 성인과 그렇지 않은 상처 입은 아이를 동시에 다루어야만 한다. 만일 논리적으로 우리에게 동의한 성인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3. 종교중독과 동반의존성
- 종교중독은 인정, 행복, 성공으로 이어지는 공식이 존재한다는 신념과 관련이 있다.
- 종교중독의 위험은 종교적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보다는 종교적 노력이나 행위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데 있다.
- 바리새인들은 종교 중독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종교적 실천이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종교에 중독된 그들의 완고한 사고방식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종교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 속에 거짓된 안전감을 만들어 낸다.
- 종교중독은 종교적인 일중독이다. 일 자체가 도피 수단이 된다.
- 궁극적으로 종교중독자는 종교적 행위가 그들이 기대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에 빠진다.
- 종교중독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특징은, 교회의 회중들이 성중독자를 실제로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종종, 성중독자들의 죄악된 행위를 거절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이 성 중독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많은 성중독자들이 본받을 만한 신앙 인물로 비춰진다.
- 교회의 동반의존자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구절을 이렇게 재해석한다. “그들이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성 중독자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없다.
- 동반의존적인 사고의 결과로 행해진 기독교적 미덕과 선행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획득하려는 시도이다. 그분의 사랑은 획득되는 것이거나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