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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빚은 샴페인
곽재혁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대였던 1668년, 30세의 젊은 신부 피에르 페리뇽은 베네딕틴 오빌리에 수도원의 재무 담당 수도사로 임명된다.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미사주로 쓰이는 와인을 제조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상파뉴 일대의 포도밭을 조사해서 지역별로 재배하기 좋은 포도를 찾아내는가 하면, 약한 압력으로 포도를 눌러 피노 누아 같은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유난히 긴 겨울을 보낸 후에 맞이한 어느 이른 봄날, 여느 때처럼 와인 저장고를 순회하던 피에르 페리뇽 신부는 와인 한 병이 ‘펑’ 하고 터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겨우내 정지 상태였던 발효 작용이 봄의 시작과 함께 재개되었고, 그에 따라 발생한 탄산가스의 압력으로 인해 병이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그 당시에만 해도 와인에 탄산 거품이 생기면 악마가 깃든 것으로 여겼고, 이를 재앙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거품 낀 와인은 곧 실패한 와인으로 간주해 즉시 폐기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이 괴짜 신부님은 버리려던 와인을 슬쩍 맛봤다가, 그 반전의 맛에 사로잡히고 만다. 마치 입안 가득 별이 차오르는 것 같은 황홀한 풍미에 매료된 그는 동료 수도사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고 전해진다.
“형제님들, 어서 와 봐요! 저는 지금 은하수를 마시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샴페인의 탄생 비화다. 그러니까 샴페인의 시초는 바로 실패한 와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실패한 와인 그대로의 상태로 머물렀더라면, 샴페인이 사회 특권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고급주로써 오늘날까지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하는 환희의 술로 자리하지 못했을 터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신의 소명’이라 여기며 발효 연구에 평생을 매달린 피에르 페리뇽 신부의 헌신이 있었기에, 악마의 거품 와인이 별을 담은 술로 진화할 수 있었다.
피에르 페리뇽 신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최초의 프레스티지 뀌베 샴페인 ‘돔 페리뇽’의 돔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인 존칭이다. 그는 코르크 마개와 이를 고정하는 철실을 고안했으며, 탄산가스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두꺼운 유리병을 영국에서 수입해 사용하기도 했다. 피에르 페리뇽 신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가 연구하고 개발한 방법들은 샴페인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돔 페리뇽 샴페인은 영국인 로렌스 벤의 제안을 바탕으로 모에 샹동 샴페인 하우스에서 만드는 빈티지 샴페인 브랜드다. 첫 빈티지는 1921년이었고, 첫 출시는 1936년이었다. 상파뉴 지방의 엄선된 포도 농장에서 그해 최고의 포도만을 선별해 만드는데, 이상 기온으로 인해 포도의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는 아예 빈티지를 제조하지 않는다.
이렇게 양질의 돔 페리뇽 샴페인 한 병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6년이며, 숙성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말하자면 상파뉴 지방의 지중해성 기후 속에서 자라난 포도송이가 영롱한 빛깔의 향기로운 샴페인이 되어 우리 앞으로 오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제조 과정뿐만 아니라 어두운 지하 저장고 속에서의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글쟁이로 살겠다고 결심한 지 어느덧 3년 차로 접어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영감의 비가 내려야만 쓸 수 있는 수필은 일 년에 한두 편이 고작이었고, 겁 없이 도전해서 18개월간 매달려 있었던 웹소설 연재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완결을 맞았다.
작년 봄에 등단의 기쁨을 맞았을 때만 해도 나는 꼭 글쓰기 면허증이라도 받은 듯 의기충천했고, 무엇이든 다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에 불타올랐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높은 현실의 벽을 절감한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소질과 가능성을 의심하며 글쓰기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대형 서점의 판매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들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흘겨보며, 나는 왜 저들처럼 될 수 없을까 한탄하곤 한다.
그러다 나는 문득, 내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도 가려진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그들을 그저 부러워하기만 했을 뿐, 그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 숨겨진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간과한 나였다.
한 병의 질 좋은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데에도 복잡한 제조 과정과 6년 이상의 숙성 기간이 요구되는데, 하물며 한 사람의 쓸만한 글쟁이가 탄생하기 위해선 얼마나 더 큰 노력과 긴 세월이 필요하겠는가? 이제 겨우 3년 차 초보 작가에 불과한 내가 너무 섣불리 성공의 빛을 탐하려 했음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글쓰기는 아직 숙성이 덜 된 와인과 같다. 어쩌면 아직은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불량 와인 상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쓰기를 향한 내 꿈은 열정과 고뇌의 배양액으로 채워진 와인병 속에서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다. 언젠간 나의 재능과 노력이 재미와 공감의 기포가 되어 세상 가득 행복한 감동의 샴페인을 터뜨릴 그 날을 그리며, 조금씩 익어가는 중이란 말이다.
첫댓글 글쓰기를 와인의 탄생과 적절히 비유한 아주 좋은 글입니다. 다만
"그에 따라 발생한 탄산가스의 압력으로 인해 병이 폭발해버린 것이었다."는
"~~~폭발해버린 사건이었다.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처럼 "것이었다."고 하는 대명사로 처리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표현히 더 생동감이 있지 않을까요?
충고 감사드립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작품에서도 ‘것이다’라는 표현을 지적하신 신종찬 선생님의 댓글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에겐 선생님께서 자주 쓰시는 ‘성싶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현실에서는, 특히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거든요.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안써봤습니다.)
물론 ‘것이다’라는 표현을 남발해선 안 되겠지만, 적절히 사용하는 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명 작가님들의 작품이나 책에서도 ‘것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어찌보면 글은 말을 기록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익히 쓰는 말을 글에는 쓰지 못할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것’은 대명사가 아니라 의존명사가 아니던가요?
https://cafe.naver.com/loveop/353266
확신, 결정, 결심, 추측,...
저도 습관처럼 쓰긴하지만 것이다가 좋은 표현은 아닌 거 같아요.
'것이다'는 물론 유명작가들의 표현에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작품일수록 더 심하고 특히 자연과학도 서적에서는 더 심합니다.
이는 일본문학의 영향으로 ' It is that~~~'과 같이 진주어 가주어 법을 일본어로 표현하기 위해
명치유신 후 나스메 소세키와 같은 유학파들이 일본문학을 만들면서 서양의 표현법을 배운 탓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근대문학이 처음에는 배재학당이나 양정의숙 보성학교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일본어 영어독본을사용하기 시작하며 도입되어 일제를 거치며 우리에게 정착한 말이라고 합니다.
하여 우리말과 글을 살리자는 차원에서 '~것이다'를 피하자는 운동이 대한교과서(주)에서 발간한 대학교재나
이오덕선생 등이 주장을 폈고 유시민 같은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은 유명 자가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그냥 써서 향후 개선이 안 될 수도 있으나
저는 글 쓰는 사람들부터 관행으로 굳어진 이런 표현을 고쳐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이런 예는 아직도 방송이나 유명 작가들이 '기라성 같은'이란 말을 쓰고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유명 작가의 작품을 예로 들며 수긍을 하지 않더군요!
과학, 철학, 구두처럼 일본말이지만 이미 굳어졌고 대안도 없다면 모르겠지만
혹시 지금이라도 고치면 어떨까 하는 작은 소망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직접 연구한 것이 아니고 책에서 읽은 거라 잘 모르면서~ ㅎㅎ ㅎ흐
곽이사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샴페인이 그렇게 생겨난거군요
유익한 상식도 얻게 되고요
어려움에는 뜻밖의 유익이 숨어있기도 하지요
그렇죠 뭐든 성공의 이면엔 인내가 있기 마련이죠
훌륭한 작가의 꿈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