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깊이 연구하는 학자들, 특히 현대의 기호학자들은
'돌을 돌이라 부르면 이미 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님들의 선문답 같지만 문학 비유법(메타포)을 이론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바로 라캉의 <메타포(비유) 형식>이라고 한다.
*라캉의 메타포 공식/권혁웅의 <시학>에서
사물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사물은 사라지고(돌을 돌이라 하면 이미 돌이 아니고), 그
것의 은유적 대변체인 기호(돌이란 말 자체)의 그물망 속에 인간이 위치한다(그리 이해한다).
이것이 상징계로의 진입이 가져오는 사물의 타살과 기호적 중재가 의미하는 뜻이다.
이후부터 인간은 사물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중단하고 기호와 기호,
혹은 시니피앙(이름)과 시니피앙(이름이 의마하는 새로운 의미)이 엮어가는
의미의 연쇄 고리 속에서 살아간다.
라캉의 또 다른 유명한 명제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을 위해서 주체를 재현한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 해석해야 한다.
주체는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의 행복한 결합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시니피앙이 다른 시니피앙으로 은유적 대치를 이루는
시니피앙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라캉의 메타포 공식의 의미다.
이 공식의 결과로 어렴풋이 드러나는 의미 생성의 문제는 그대로 주체의 탄생과 직결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어렵네요
좀 더 쉬운 설명은 없을까요
저도 잘 모르나
우리가 돌을 보고 돌이라 하면
그 돌이란 말에는 단단함, 자연의 일부 등 돌이란 말(기표) 이외의
의미(기의, 시니피에)가 덧붙여질 수 있으니
애초에 기표(시니피앙)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돌을 의미하는 뜻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로 이해합니다만?
혹은 시니피앙(이름)과 시니피앙(이름이 의마하는 새로운 의미)이 엮어가는
의미의 연쇄 고리 속에서 살아간다. 는 뜻은
돌이란 말이 기표(시니피앙)로서 돌을 의미하는 것이 돌 이외의 뜻이 기의(신피에)에 덧붙여지면
이런 기의는 똑 같은 과정을 거쳐 또 다른 기의가 보태져서 의미를 확장해간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예를 들면, 합바지가 시골뜨기를 포함하게 되면, 그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을 합바지로 여길 수 있는 것처럼
게속 기의를 확장해간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만?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