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은 문학 작품의 다양한 표현방식 가운데 하나로 글쓴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의 특징이나 모양, 행동 등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담아내는 표현 방식을 이야기 한다. 〈황무지〉라는 시로 유명한 T. S.엘리엇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정서와 문학 작품에 구현된 정서의 절대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사용한 어휘로, 그 후 문학 비평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어 하나의 문학 용어로 굳어졌다.
T. S.엘리엇이 처음 이야기한 개념은 ‘예술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의 발견, 즉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일단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들을 찾아내는 방법이며, 이것은 독자와 똑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문학 작품에서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을 배제하고 다른 사물이나 정황, 일련의 사건을 발견해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의 개인적 감정이 문학 작품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는 상식적으로 직접적 관계가 없는 어떤 심상, 상징, 사건 등에 의하여 구현된다는 입장이다. 즉, 개인감정의 예술적 객관화가 강조된 것이며, 이러한 객관화를 위하여 이용되는 심상, 사건, 상징 등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이다.
예를 들면 윤동주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의 맨 마지막 행에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서의 ‘벌레’는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운 것을 슬퍼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라고 쓰여 있지만 ‘벌레’는 부끄러움을 알고 그것을 이유로 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이러한 표현을 보고 시적 화자의 심정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벌레가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워서 운다고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시적 화자가 자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점 말이다. 시적 화자는 벌레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는 구절을 쓰게 되었다.
여기서 바로 이 ‘벌레’가 ‘객관적 상관물’이 된다. ‘벌레가 운다.’라는 행위는 상식적인 선에서는 어떠한 감정적인 이유도 댈 수 없는 객관적인 현상이지만 벌레의 울음소리를 듣는 시적 화자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따라서 이러한 객관적인 현상을 자신의 감정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에서 글쓴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작품의 흥미와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객관적 상관물은 이러한 위험을 피해가면서도 글쓴이의 감정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표현 수단이며, 이런 까닭에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자주 활용되는 표현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문학 작품에는 항상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이 개입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는다면,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들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객관적 상관물의 확장 개념으로서 ’감정 이입’
감정 이입이란 소재에 화자의 감정을 집어넣는 표현 방법을 말한다. 따라서 감정 이입 주체와 대상은 동일한 감정을 지니게 된다. 이에 비해서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동원된 사물, 정황, 사건일 따름이다. 따라서 객관적 상관물은 드러내고자 하는 사물의 감정과 주체의 감정이 일치할 필요가 없지만, 감정 이입은 객체와 주체간의 감정의 동조, 일치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길가의 나무도 기분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표현에서 나무는 객관적 상관물이고, 이러한 표현 자체는 감정 이입이 된다. 그러나 “길가의 꽃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구나.”라는 표현에서는 꽃은 객관적 상관물이지만 이 표현 자체는 감정이입은 아니다.
첫댓글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수상작품 합평에서 김종완 선생님 강의 중에 객관적 상관물이란 용어가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