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논리/김행숙/⟪2015 올해의 좋은 시⟫
느낌은 총체적인 사태입니다. 논리는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느낌은 언어로 고스란히 옮겨지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느낌의 세계에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논리를 포함하면서 언제나 논리를 초과하기 때문이겠지요.
느낌의 세계에서 몸은 마음을 떼놓을 수 없고, 마음은 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느낌은 더 풍부하고, 더 섬세하고, 한층 미묘하고 아이러니해서 불연속적인 언어의 그물에 잡히기보다, 결국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버리기 십상이죠.
느낌을 붙잡으려고 하는 언어가 아니라 느낌에 참여하는 언어를 많이 생각했어요.
느낌에 ‘대해서’ 시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느낌을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도록’하고 싶었어요. 느낌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적인 사건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역시, ‘느낌’에 ‘대해’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저녁의 감정>/김행숙
가장 낮은 몸을 만드는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개 앞에서 착하지, 착하지, 하고 울먹이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계급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일어서려는데 피가 보족해서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현기증이 감정처럼 울렁여서 흐느낌이 되는 것이다. 파도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사람은 사라지고 울렁여서 흐느낌이 되는 것이다. 파도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사람은 사리지고 검은 튜브만 돌아오는 모래사장에······· 점점 흘려 쓰는 필기체처럼
몸을 눕히면, 서서히 등이 축축해지는 것이다
눈을 감지 않으면, 공중에서 굉음을 내는 것이 오늘의 첫 번째 별인 듯이 짐작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이제 눈을 감았다고 다독이는 것이다
그리고 2절과 같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첫댓글 시와 산문을 이렇게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수필도 논리와 설명이 아니라 이런 느낌을 쓰는 것이 아닐까요?
'~것이다'는 다른 표현이면 더 좋을 성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