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환유의 물질성
슈라이퍼는 『수사학과 죽음』에서 환유를 독특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담론의 물질적 토대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호의 물질성 측면에서 환유를 정의하였다. 물질성이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각된 물신화, 소외 현상 등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언어 기호의 물질적인 기표를 말한다. 여기서 물질적인 기표는 언어의 부분으로서, 그것이 기호를 지배할 때 기호들은 본질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슈라이퍼에 의하면 환유는 바로 이러한 물질성을 적극 구현한 수사법에 해당한다.
이런 예들은 카프카의 소설에서 전화기, 이오네스크의 희곡에서 의자 등이 주인공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맥락과 동일선상에 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에서 햄버거 빵2/ 버터 1.5큰 술/ 쇠고기 150g/ 양파1.5/ 달걀2/ 빵가루 2컴/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0.25 작은 술/ 상추 4잎/ 오이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0.25컵
전통적 의미의 서정시는, 흔히 낭만주의 시는 은유와 상징의 원리에 따라 구성된 시를 기준으로 설명되어 왔다. 폴 디 만은 은유와 상징을 낭만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시로, 자아와 대상과의 합일을 지향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인의 재능이라 하였다. 시인의 재능은 상상력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시에서 은유와 상징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러나 환유는 더 이상 인간의 정신세계가 아니고 물질세계를 드러낸다. 그 물질세계를 더 이상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경향을 지닌다. 이러한 물질성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뿐만 아니라 기표와 기표의 관계를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예) 진로도매센터> 바른 길의 의미를 가진 진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이라는 진로
③현대사회와 환유
야콥슨은 언어형성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은유와 환유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하였다. 이 양자는 시와 산문, 낭만주의와 리얼리즘의 주도적인 수사학으로 설명하였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행위는 물론 문학도 은유적인 것이나 환유적인 것 중 어는 하나로 편향되게 표현한다. 낭만주의에서 리얼리즘을 거쳐 상징주의로의 역사발전 과정도 은유에서 환유로, 환유에서 다시 은유로 향하는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폴 디 만이나 슈라이퍼는 현대문학에 작용하고 있는 환유에 더욱 주목하였다. 특히 슈라이퍼는 자본주의가 성숙한 시대인 모더니즘 시대의 주된 수사학으로 환유를 내세웠다. 그는 현대 산업문명이 끊임없이 인간을 소외시켜왔고 대상의 물화가 진행되어왔다면, 이러한 현상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장치가 환유라고 보았다.
예1)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여기서 단어들은 경쟁의 원리에 말려든, 소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을 연상하게 한다.
예2) 안경, 우울증, 쟁반, 가죽치마 등으로 환유되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호들이 환유적 구성 원리에 따라 연결되고 있다. 현대 도시의 무료한 일상을 드러내는 기호들은 ‘우울증’이라는 인물이 바라보는 풍경이다. 이런 기호들은 그 자체로 아무런 정서의 개입 없이 개관적으로 나열되고 있다.
안경, 우울증, 쟁반, 가죽치마 등은 사물의 일부로써 그 사물과 관계가 깊은 어떤 다른 것을 나타내는 환유이다. 이런 환유들은 물론 대상의 물질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울증이 바라보기에는 안경, 쟁반, 가죽치마 등은 더 이상 어떤 인격성을 지니지 않은 사물로 보일 따름이다. 안경, 쟁반, 가죽치마 등은 우울증에게는 손님으로부터 받은 ‘전표’, ‘만 원짜리’와 마찬가지로 ‘돈의 기상도’의 일부를 이루는 풍경에 불과하다. 우울증 역시 인격성을 지니지 않으며, 그 또한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대상화되어 있을 뿐이다. ‘우울증’은 어떤 대상과도 교감을 갖지 않는다. 그에게는 손님에게 하는 인사조차 하나의 투자일 뿐이다.
‘우울’을 주제로 한 이 시가 환유를 중요한 시적 구성 원리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우울은 상실의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근대적 삶의 기저를 이루는 정서다. 이것은 근대적인 삶 속에서 자연과 더 이상 동화될 수 없고 일체감을 가질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이 시에서 우울은 자아와 세계가 결코 합일이 될 수 없다는 현대적 절망감을 표현한 수사학인 환유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4)결론
과거에는 환유가 시의 수사학으로 부족한 것으로 폄하되었다. 환유는 야콥슨에 의해 재평가 되었다. 환유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정신적인 동일성과는 거리가 먼 물질성을 지향하는 수사학이다. 은유가 유사성의 원리에 따라 정신성을 지향하는 것과 비교된다. 현대 수사학자들이 환유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이제 은유 이상으로 중요한 수사학으로 부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환유는 단순히 기본 문제를 넘어 세계관을 선택하는 관련이 있다. 한국의 현대시도 환유로 이해해야 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첫댓글 시와 달리 수필에서 작품 전체를 환유로 수사법을 택할 수는 없고, 단락이나 문장을 환유로 쓸 수는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