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글을 왜 꾸준히 쓰는가?"
강사: 유형준
*2022년 3월 26일(토) 오후6시30분 ZOOM으로 강연한 내용을 올립니다. 영상 아래, 초록을 적습니다.
(강연 원고 초록) 2022. 3. 26, pm 6:30, on Zoom
“글을 왜 꾸준히 쓰는가?”
강사: 유형준(시인, 수필가)
글쓰는 스타일은 몹시 다양합니다.
전체 개요를 정하고 나서야 쓰기 시작하는, meticulous, 꼼꼼형
영감이 떠오르면, 새벽 3시여도 좋다. spotaneous, 불쑥형
머릿속이 글 아이디어로 가득한 Idea generator, ‘반짝’형
원고 마감 직전에 다다라 쓰는, procrastinator, 꾸물형
작가 티 안내고 쓴다. modest, 얌전형
백일몽을 꾸려고 글을 쓴다. escape artist, 꿈형
- 강연 순서 -
1. 왜 쓰는가?
2. 왜 꾸준히 쓰는가?
3. 요약, 결론
1. 왜 쓰는가
의사소통으로, 소통하는 독자가 타인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그 독자의 감성, 이성, 지성, 영성, 그리고 행동을 자극하여 다음을 위해 글을 씁니다.
1) 살기위해 씁니다. 예를 들어, 철저히 혼자인 시공간에서 글쓰기는 나를 어느 생명있는 존재와 이어줍니다.
2) 양명(揚名), 이름을 알리려고 씁니다.
3) 세상, 내 안팎 가지각색의 세상을 바꾸려고 씁니다.
4) 의미를 발견하려고 나는 글을 씁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작가는 허황되고(vain) , 이기적이고(selfish) , 게으르며(lazy), 글 쓰는 동기(motives)의 저 밑바닥에 미스터리(mystery)가 있습니다.”
“책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듯이, 끔찍(horrible)하고, 기력을 고갈시키는(exhausting) 싸움(struggle)입니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demon)에게 휘둘리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1946년 여름, 조지오웰의 에세이 ‘Why I write’ -글 쓰는 동기 네 가지
(1) 순전한 이기주의, (2) 미적 열광, (3) 역사 충동, (4) 정치적 의도
2. 왜 꾸준히 쓰는가?
미국의 안데르센이라 불리는 Jane Yolen(판타지, 과학 픽션, 동화 작가)
“편지, 메모, 제목 목록, 인물 스케치, 일기장 - 업무일지항목 일지라도 매일 쓰기 근육을 훈련하십시오. 작가는 운동선수 또는 무용가와 같습니다.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감소합니다.”
글쓰기는 근육입니다(Writing is a muscle.). 글쓰기 근육, 글짓기 근육은 writing muscle이라 합니다. 더러 literary muscle과 혼용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literary muscle은 좀 더 광범위한 의미로 문학 근육이라 했으면 합니다.
글쓰기 근육이든, 문학 근육이든, 쓰지 않으면, 글쓰기 근육의 양이 감소하고, 근육의 질도 흐트러집니다. 의학적으로 이르면, 근감소증(sarcopenia)가 발병합니다. 꾸준한 근육 운동은 근감소증의 예방과 치료에 용한 효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글쓰기 근육 감소증이 발병하지 않을까요?
『상실의 시대』, 『1Q84』 등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말합니다.
“근육은 시들고 군살이 몸에 붙습니다. 근육은 빠지기 쉽고 군살은 붙기 쉽습니다.”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 그것이 물리적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정기적이고 인위적 노력이 불가결합니다.”
꾸준함은 예부터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중국 산문의 대가로 불리는 송나라의 구양수는 위문유삼다(爲文有三多)를 강조했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견다(見多)·주다(做多)·상량다(商量多), 즉, 많이 읽는 다독(多讀), 많이 짓는 다작(多作), 많이 헤아리는 다상량(多商量)입니다.
『문심조룡(文心雕龍)』은 10권 50편으로 이루어진,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문학이론서로서, 글쓰기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문학을 계통적으로 논의한 중국 제일의 책으로 평가받는 『문심조룡』을 쓴 유협(劉勰)은 가난한 사대부 집안 태생으로, 독학으로 문학적 소양을 쌓았다고 합니다.
'문심(文心)'이란 '문장을 쓸 때에 지녀야할 마음의 쓰임, 즉 용심(用心)’을 일컫고, '조룡(雕龍)'은 용을 새긴다는 뜻입니다. 즉, 글을 쓸 때는 마치 용의 비닐에서 광채가 나도록 갈고 새기듯이 문장을 쓰고 또 쓰고 운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 문심조룡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글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 글귀입니다. 문심조룡 ‘제27장 체성’의 ‘사위기부(辭爲肌膚)’. 이 대목을 최동호 교수는 ‘문장은 사람의 근육이나 피부와 같아’로 풀었습니다. 용의 비닐을 새기듯이 문장의 근육을 꾸준히 갈고 다듬어야 문장이 빛이 난다는 뜻으로 받습니다.
만일 글쓰기를 게을리 하면 나와 종이, 나와 노트북, 나와 책상 사이에 틈새가 생깁니다. 그 틈새를 영락없이 비집고 들어와 덜컥 놓이는 게 있습니다. 바로 작가 블록(wiriter’s block), 작가차단입니다.
Zorbaz가 ‘The Anthropologist’에 2015년, 학생 428명을 연구 조사한 바, 24%의 학생에서 ‘거의 늘 또는 흔히’ 작가 블록을 겪고 있습니다. ‘때때로’ 또는 ‘가끔’ 겪는 학생의 비율은 약 70%로, 작가블록이 ‘거의 없는’ 학생은 6.1%에 불과했습니다.
작가 블록을 간략히 정의하면, ‘작가가 새로운 글을 쓸 수 없음’입니다. 작가블록이 놓이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4 가지로 정리합니다.
(1) 탈진(脫盡): 과도한 글쓰기는 문력(文力)을 바닥까지 다 써서 없애버립니다.
(2) 건강 이상은 펜을 들 힘과 의지를 앗아갑니다. 글쓰기에서 건강의 가치를 간직하여 작가 블록을 예방, 극복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일흔세 살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로 유명합니다. ‘달리기를 말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책을 낼 정도로 달립니다. 한글 번역본입니다.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 정도, 약 10킬로미터를 달리거나 1500미터 수영을 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25회나 완주했고, 철인 경기에도 참가했습니다.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채식 위주로 먹고, 매일 체조를 하고, 여름엔 프라하 몰다우[체코어로 블바타]강에서 하루 1마일 정도의 수영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카프카는 ‘수영선수’라고 불릴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고 합니다.
(3) 산만(散漫): 개인, 가정, 직장 등의 어떤 형편은 주의 집중을 방해합니다.
(4) 지나친 기대: 이는 지나친 완벽주의이며,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욕입니다.
미국의 Insecure Writer’s Support Group은 이렇게 작가블록의 원인을 압축합니다.
“작가가 글을 쓰지 않는 까닭은 엄청 다양합니다. 흔히 작가 스스로 블록을 쌓습니다.”
이러한 작가 블록을 방지하고, 해제하기 위한 ‘문학적 방안’은 무엇일까요? 1980년대 한국 시단의 아이돌로 통하던, 이성복의 간절하고 속절없는 권고를 듣습니다.
“글쓰기가 자기 근육에 입력돼 있어야 해요. 씨름할 때 상대에게 딱 달라붙어야 힘을 쓸 수 있잖아요. 시 쓸 때도 남 얘기하듯 하지 말고, 무조건 달라붙어야 해요. 좀 더 간절하게, 절박하게, 속절없이.”
이성복 시인의 절박한 권고를 든든히 받쳐주는 여러 바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글쓰기 자체가 지닌 한 가지 특성을 주목합니다.
글을 쓰다 보면, 혹시 마지못해 억지로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이 생각을, 글이 글을 불러 와서, 글이 슬며시 써집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글쓰기는 글쓰기를 부릅니다.’ 작가 차단, writer’s block이 감히 끼어 놓일 틈이 없이 ‘글쓰기는 글쓰기를 부릅니다.’
3. 요약 및 결론
꾸준히 근육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고 삶의 질이 개선됩니다. 마찬가지로, 꾸준히 글을 쓰면, 스스로 어휘의 한계, 수사의 생경 등을 깨우치고, 그 한계와 생경을 차차 넘어서면서, 나만의 언어 사전을 품게 되고, 작가 블록 대신에 글감 은행이 우뚝 들어섭니다. 그러면, 시나브로 어휘가 풍부해지고, 문장이 세련되어지고, 글에서 나만의 목소리가 울려 나면서, 슬그머니 더 나은 글을 쓰는 더 나은 작가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글을 꾸준히 쓰는 까닭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글을 왜 꾸준히 쓰는가?” 그 까닭은 “글쓰기는 근육 윤동과 같아, 꾸준히 쓰면 쓸수록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문장 하나를 꼭 보태고 싶습니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부른다.”
마지막까지 함께 나누어 주셔서 기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