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청춘이다!
프렌치패스를 넘어 마르파로 내려가려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되고 말았다.
10월15일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 사이클론 ‘후드후드’가 뿌린 눈 폭탄은
아직도 다울라기리 프렌치패스를 폐쇄시키고 있었다.
길을 뚫기 위해 애쓰던 독일팀도 어제 가고
오늘은 프랑스팀과 체코팀이 내려간다.
아침 일찍 하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길이 열려 있는
스위스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이탈리아 베이스캠프 위 언덕을 올라
메모리얼이 있는 곳을 지나면 절벽길이 나온다.
아침 일찍 가이드 리마가 픽스로프를 설치한다고
자일을 한 동 메고 주방팀의 람과 올라간다.
내려가는 길이 험하다고 픽스로프를 깔아야 한단다.
우리는 30분 뒤에 출발하기로 하고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겼다.
8시 30분쯤 언덕을 올라 절벽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보니 내려서기가 꺼려진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니
조심해서 내려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왼쪽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빙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빙하가 녹아 커다란 계곡처럼 변했다.
절벽길이 끝나는 지점에 돌과 얼음으로 뒤범벅 된
가파른 너덜길을 내려 가야하는 데 이곳에 로프를 설치하려 했다.
가이드 리마가 조심조심 내려가면 된다고 판단했는지 설치하지 않고 앉아 있다.
가이드의 발걸음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간다.
돌과 얼음과 모래가 뒤섞인 응달길을 내려오는데도 땀이 난다.
밑에 내려오자 빙하가 앞에 있다.
작년에 거대한 K2 발토르 빙하를 걸어서인지
이 길은 그냥 작은 개울을 건너는 느낌이다.
빙하를 건너 다시 모래가 죽죽 내려오는 가파른 절벽길을 오르는데
이 길이 만만치 않다. 높이가 얼마나 될까?
히말라야에서는 거리와 높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갖고 있던 개념으로 보면 맞지 않다.
쉬엄쉬엄 언덕길을 오른다.
이 언덕을 다 오르면 실처럼 난 절벽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이 길이 정말 아찔하다. 밑이 까마득하다.
조심조심 걸어 커다란 바위 밑에서 물을 마신다.
걸어온 길을 보니 다시 걸어나갈 일이 걱정이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금방 깨닫는다.
그냥 한 발 한 발 앞만 보고 걸으면 될 것이다.
이미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가고 있어서인지 풀잎이 누렇다.
아무런 풀 한포기 없는 길보다는 보기도 걷기도 좋다.
한참을 가자 스위스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자그만 돌집이 한 채 있다.
여기서 다울라기리 등정을 준비했을 터인데
강을 건너 어떻게 올라갔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늘은 파랗고 멀리 하얀 설산이 있는 스위스 베이스캠프가 아름답다.
백런치로 가져온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는다.
소풍 나온 어린 학생들처럼 웃고 떠든다.
단체 사진도 찍고 휴대폰으로 셀카봉 놀이도 한다.
산을 배경으로 점프 사진도 찍는다.
지금 만큼은 우리 모두 나이를 잊었다.
요즘 유행하는 그 모습 그대로 젊은이다.
웃고 떠들며 이 순간을 즐긴다.
가지 못한 길이 너무 아쉬워 위로 자꾸 쳐다보는 건
그만큼 미련이 많이 남았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제 돌아서야 한다.
아쉬움을 듬뿍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무엇보다 프렌치패스를 넘으며 보는 다울라기리의 멋진 풍광을
못보고 돌아간다는 게 아쉽기 그지 없다.
언젠 다시 이 길을 올 수 있을까?
신이 허락하는 그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탈리아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올 때 보다 더 아찔한 느낌이 든다.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걸으며 낭떠리지 구간을 통과한다.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이렇게 쩔쩔매며 걷는데 20킬로그램이나 되는 짐을 지고
포터들은 이 길을 어떻게 통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우리의 캠프사이트로 온 걸 보면 그들의 강인함에 놀랄 뿐이다.
다시 언덕길을 내려와 빙하를 건너 마지막 오르막길 앞에 섰다.
갔다 온 길이 더 험해서인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쉬운 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중간쯤 올라가자 낙석이 떨어진다.
오후가 되자 얼음이 조금 풀려서인지 돌이 구른다.
굴러오는 돌을 보고 재빨리 피했다.
작은 돌이라도 수십미터를 굴러내려 오는 동안 가속도가 붙어
맞으면 큰 불상사를 일으킬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얼음과 돌로 뒤섞인 너덜길을 다 올라오자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무사히 스위스 베이스캠프 다녀온 걸 자축했다.
아침에 아찔해 보이던 길도 지금은 편해 보인다.
그만큼 지나온 길이 험해서 그럴 것이다.
텐트가 쳐져 있는 곳에 오니 1시30분이다.
주방팀이 레몬차를 끓여 내온다.
차를 마시고 머리를 감았다. 고소 걱정 때문에 안 감았는데
이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니 감고 싶었다.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나니 개운하다.
머리를 말리고 특별식을 준비했다.
프렌치패스를 넘으며 식욕이 없을 때 먹으려고 둔
꽁치통조림을 따기로 했다.
꽁치 김치찌개를 만들어 하나 남은 소주를 마시기로 한 것이다.
다울라기리 이탈리아베이스캠프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하나 남은 소주는 금새 동이 나고 럭시를 알아보니
이탈리아 베이스캠프 롯지에 있다.
럭시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비가 온다.
쨍쨍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변한다.
급하게 침낭을 텐트 속에 넣고 앉아 있으니 이제는 눈이 쏟아진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이 뿌옇다.
스위스 베이스캠프에서 지체했으면 큰 낭패를 당할 뻔 했다.
눈은 저녁이 될 때 까지 계속 내렸다.
다울라기리 이탈리아베이스캠프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소박한 꽁치김치찌개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운치가 있다.
고개를 못 넘고 내려가는 아쉬움을 달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주방팀이 저녁을 가져온다.
스프링롤 뚝바 밥 스프가 나온다.
매 끼니 서너가지 요리를 만들어 내는 주방장의 솜씨가 좋다.
꽁치김치찌개로 배를 조금 채워서인지 대충 먹었다.
밤이 되자 눈은 그쳤지만 기온은 뚝 떨어졌다.
뜨거운 물을 날진 물통에 채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첫댓글 변화무쌍한 기후와 위험구간을 보니 이젠 헬맷이라도 준비해야 할 듯 해요.ㅎㅎ 수고하셨구요.
낙석 지대를 통과할 때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ㅎ
감사합니다~^^
낙석지대 어마어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