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하우스의 헤세드란?
-기독자료 (논문 펌)-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완전하게 표시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헤세드’가 될 것이다. 이같은 입장에서 외스터레이(Oesterley)도 이 헤세드를 설명하여 말하기를 “구약에서 헤세드란 말이 나오는 본문을 살펴보면,
이 말이 얼마나 다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말은 히브리어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가장 위대한 말의 하나이며, 영어로서는 이것을 도저히 올바르게 번역해 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 신학 사전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ment)에 의하면 헤세드는 구약성서에서 245번 나온다. 위의 본문들을 살펴보면 헤세드가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시편에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헤세드가 개역 성서로 번역된 것을 살펴보면 ' 인자, 은혜, 긍휼, 인애, 은총, 선대, 후대, 자비, 우의' 등이다. 역시 뜻이 여러가지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헤세드가 쓰인 본문을 보면 크게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사용됨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헤세드를 인간의 헤세드와 하나님의 헤세드로 구분해서 보고자 한다.
1) 인간의 헤세드
Lexicon of the Old Testament에서는 인간의 헤세드를 크게 네가지로 보아, 첫째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향한 헤세드 즉, 호의와 자선을 행하는 헤세드이다. 둘째는, 특별히 낮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푼 헤세드 즉, 자비이다. 세째로, 드물게 사용되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스라엘의 애정과 경건으로서의 헤세드이며 네째로, 사랑스런 모습의 헤세드이다(사 40:6). 이런 의미에서 헤세드와 언약의 관계에 있어서 헤세드는 언약의 참 본질이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되면서 하나된 사람들 - 친척,친구,주인과 종 - 사이에 상호 책임이라는 관계성 속에 인간 관계를 맺게되었고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헤세드는 성실성과 신실성으로 나타났다( 출 34:6 ).
2) 하나님의 헤세드
인간의 헤세드는 서로에게 헤세드를 받은것에 상응하는 헤세드를 베품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갖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헤세드는 어떤 것일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그의 피조물의 필요에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 친절,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loving kindness).
하나님의 사랑, 자비를 구체적으로 보면,
① 적과 어려움에서의 구출, 구원이다. 사람들은 헤세드안에서 믿어야 한다( 시 13:6 , 52:10 ).
그것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그안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
②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보존
③ 영적 생활의 생명을 주는것 죄에서 구원 ( 시 25:7, 51:3 )
④ 언약을 지킴에서 나타난다. 아브라함과( 미 7:20 ),모세와 이스라엘과 함께, 언약과 하나님의 사랑을 지킨다.
다윗과 그 왕국과 함께, 내 시온과 함께( 사 54:10 ) 언약 헤세드를 지킨다.
⑤ 헤세드는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이며, 자비와 충성, 진리( 삼하 2:6, 15:20 ), 진실,긍휼, 공의(렘 9:24, 시10:1 )이다.
여호와 헤세드는 성경 본문으로는 아브라함의 언약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써(창 2:14 , 하나님의 언약의 충실하심( 창 32:9-10, 39:21 )을 나타낸다.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헤세드는 더욱 여호와의 선택의 관념과 밀접하게 관계됨이 드러났다. 여호와는 그 본성이 헤세드이신데 언약 이전에 이미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으며 언약하신대로 택한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다윗 자손에게 헤세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다( 삼하 7:14-16 ). 하나님의 헤세드는 인간을 향하신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서 특히 이스라엘 백성과 영원한 관계로 그의 헤세드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성품인 헤세드!!!! 헤세드란 히브리(ds,j, [chesed]) 말로
헤세드는 ‘자비, 긍휼, 선대, 은혜, 인애’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한 단어로 표현하기 너무도 어려운 말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장 6절.)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헤세드를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기독교 대표 정신으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사랑' 입니다.
"죄인에게 값 없이 인간에게 배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을 표현합니다
율법도 긍휼과 사랑에서 출발하여
악한 죄의 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악을 깨닫게 합니다.
그런데 악한 인간들을 율법의 본질인 사랑은 뒤로하여 깨닫지 않고 정죄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자신이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는 초등교사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러한 껍데기 사랑(율법)이 아닌 알맹이가 있는 사랑을 소유하기 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예식과 법칙, 규칙보다도 선재되어야 하는 것은 알맹이인 '하나님의 사랑' 그것입니다.
"너희가 긍휼을 알았다면 내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이해할 텐데..." (마 9:13.참고)
"너희가 자비를 알았다면 안식일에 시장하여 먹는 것을 죄있다 하지 않았을텐데..." (마 12:7.참고)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그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랑이며,
영원토록 하나님과 화답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곧 헤세드입니다. 그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 이야말로 '율법'이 아닌 '완전한 법'이 될 것입니다.
헤세드하우스에서 유선희 목사(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올렸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