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6일 (금) - 선린이가 막힌 변기를 뚫다

[김원중]

지난 연말에 우리 집은 좀 괴로웠다. 안방 화장실 변기가 또 막힌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준다. 다른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 집은 더욱 그렇다.

아침마다 누군가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거실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얼른 나오라’고 고함을 친다. 아내는 그때마다 ‘이런 일은 남자가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 막힌 지가 언젠데 손 놓고 보고만 있느냐’며 지청구를 한다.

새해 첫 날 저녁 가족 모두 마트에 간 길에 ‘트레펑’ 2개를 샀다. 귀가하는 차 속에서 선린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내가 책에서 봤는데 막힌 변기에 비닐을 덮고 물을 내린 후 꾹 누르면 뚫린데.”

“응, 그러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설마? 이제 트레펑을 샀으니 이걸로 시도해 봐야지.’ 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선린이는 어느 새 엄마를 졸라 큰 비닐과 테이프를 찾아들고 나에게 도와달란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귀찮아. 또 쓸데없는 짓을 하게 생겼네.’ 하면서 앞장 선 선린이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선린이의 지시에 따라 막힌 변기에 큰 비닐을 덮고 밀봉하듯이 테이프로 둘레를 감았다. 선린이는 꼼꼼히 살핀 후 ‘잘 되었군’ 하는 표정을 짓더니 변기 물을 내린다. 선린이 말대로 정말 비닐이 위로 불룩 올라온다. 선린이가,

“아빠, 이 비닐을 이렇게 아래로 누르세요.”

하면서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 선린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변기물이 한꺼번에 아래로 쑥 빠진다. 나도 모르게 “어, 된다, 정말 돼” 하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밖에 있는 아내와 선형이까지 모두 화장실로 몰려왔다.

그 뒤로 같은 작업을 몇 번 더 반복하자 변기가 완전히 뚫렸다.

그날 선린이는 일기를 이렇게 썼다.

1월 1일 일요일

제목: 와∼ 내가 영웅!

오늘 나는 집에서 아주 아주 많이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 그 일은 바로바로 책벌레인 나 덕분에 변기를 뚫었다는 것이다. 그 변기가 조금 약해서 저번에도 막혀서 5만원 넘게 돈을 썼는데, 이번에는 10원도 안 쓰고 뚫었다. 뚫은 방법이, 책에서 본 것을 이용했는데, 큰 비닐을 변기에 씌워서 막힌 변기를 내리면 비닐이 위로 올라가서 그것을 누르면 된다. 그 동작을 몇 번 하면 정상적으로 변기가 뚫리게 된다. 우리 아빠는 정말 잘 했다고 하셨다. 나는 역시 우리 집의 영웅이다. 더욱더 책을 열심히 봐서 돈도 하나도 쓰지 않고 바로 해결해 버릴 것이다.

<나의 감회>

키워 놓으니 도움이 되네!

<사족 하나>

작년 전반기에 변기가 막혔던 원인은, (변기가 약해서가 아니고) 선린이가 양치질하다가 칫솔을 변기에 빠뜨리고 꺼내기 싫어서 그냥 물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트레펑을 쏟아 붓는 등 별 짓을 다 해도 해결이 안 돼 결국 전문가를 불러 선린이가 일기에 쓴 것처럼 6 만원인가 7 만원인가 거금을 들여서 겨우 뚫었다.

[다람쥐]

ㅎㅎㅎ 이렇게 작은 것에 기뻐하고 사랑스러워 하시는 아부지를 가진 선린이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