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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통합 또는 융합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작지 않다. 거기에는 세부적인 분과 학문에 갇혀 이른바 ‘전문 바보’처럼 지냈던 스페셜리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의 문명사적 전환기에 인간과 사회를 새롭게 전망하려는 제너럴리스트의 열망이 담겨 있다.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교양 교육(general education)이 글자 그대로 제네럴한 교육인만큼 다학문적이고 간학문적이며 횡단학문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학문들의 본래적 일체성을 회복한다는 추세의 표출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양교육의 기초로 실행되는 말하기와 글쓰기 교과목은 관습적으로 특정 분과 학문에 의해 지배된 낡은 도구 교과목에서 벗어나 인문ㆍ사회ㆍ자연 전반에 걸쳐 통합 또는 융합의 통찰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인간의 중요한 언어 능력이고 사고 행위이지만 말과 글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말은 우리 삶의 현존에서 발산되는 외향적인 언어이지만 글은 우리 삶의 현존을 성찰하는 내향적인 언어이다. 말은 요동치고 유동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삶과 함께 격류하지만 그러한 격류를 초월하여 삶의 법칙적인 궤적을 사유하는 것이 글이다. 변화하는 말과 불변하는 글은 우리 삶을 표현하는 두 기둥이지만, 범인의 삶은 주로 말로 표현되고 말과 함께 스러져 가는 반면, 성인의 삶은 글로 표현되고 글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목표가 성인됨에 있을진대 성인의 글은 성인됨에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성인의 성인됨의 근거는 성인이 남긴 글에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인문학과 인문교육의 중심은 항상 성인의 글에 있었다. 하지만, 성인의 글도 인간의 언어 행위에 의해 발생한 글이다. 과연 인간의 언어 행위는 우주의 보편적인 진리를 포착할 수 있을까? 영원불변의 진리를 함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은 조선시대 오랜 인문전통의 중심이었던 성인의 글을 회의한다.
천지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과 같은가, 다른가? 군자는 반드시 영화롭고 존귀하고 부유하고 장수하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임을, 옛날 『시(詩)』, 『서(書)』, 『역(易)』과 같이 성인이 지은 글에서 많이 말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중세(中世) 이후 재주 있고 변론에 기발한 선비들은 왕왕 분한 마음이 가득차면 발설해 외쳐서 천리(天理)가 항상스럽지 않음을 비난하였고, 심지어 더욱이 하늘과 사람은 좋아하고 미워하는 취향이 다르다고 하였는데, 또한 어째서 그런 것일까? 저들도 일찍이 성인을 공부하고 사모해서 성인을 배반하지 않을 정도의 지식은 갖추었을텐데 어쩌다 졸지에 괴상하고 경서에 어긋난 담론을 지어내 성인과 따지는 데 힘쓰는 것인가? 성인의 말이 과연 미친 사람의 말일까? 저들에게 어떠한 소견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지금의 시대에 천하에서 떼지어 함께 원망하고 미워해서 소인이라고 지목하여 바뀔 수 없는 자는 누구일까? 나는 알지 못하겠다. 내 마음으로 참으로 의심 없이 감복해서 군자에 합당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또한 많이 보지 못하겠다. 그가 영화롭고 존귀하고 부유하고 장수하는지 혹은 이와 반대인지 내 어디에서 천지의 마음을 예측할 수 있을까? 다만 나의 정원에 있는 풀을 보니, 내가 그 풀을 사랑하고 기뻐해서 그것이 번성하기를 바라면 반드시 살아남기가 어렵다. 살아가면서 비바람이 불시에 닥치는 환난도 있고, 마소에게 짓밟히기도 하고, 계집종이나 어린 머슴에게 더럽혀지기도 하여 시들고 온전하지 못하다. 내게 미움을 받아 속히 뽑혀 버렸던 것은 하룻밤 지나 보면 다시 싹이 터서 며칠도 안 되어 노한 듯이 우뚝 서고 기쁜 듯이 쑥쑥 자라는데 마치 믿는 데가 있어서 왕성히 뻗어나가는 듯이 흔쾌하여 아무 두려움이 없다. 이는 누가 그렇게 시킨 것인가? 장차 천지의 마음을 그 때문에 믿지 않을 것인가? 옛 성인의 말은 과연 모두 미친 사람의 말인가? 그리고, 중세(中世) 이후 재주 있고 변론이 기발한 선비들의 말이 옛 성인보다 훌륭하다 이를 것인가? 또, 내가 일찍이 초(楚)나라 굴평(屈平)의 『이소(離騷)』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향기로운 좋은 풀을 군자에 빗대어 그것이 번성함을 바라고 그것이 시듦을 마음 아파하여 그 정이 넘쳐 그치지 않았다. 어찌 그 성품이 군자에 가까워 취할 바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대개 공자(孔子)도 일찍이 향기로운 난초[猗蘭]를 탄식한 적이 있었지만 공자 이전의 주공(周公)으로 거슬러 올라가 순(舜), 고요(皐陶)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지은 시가(詩歌)나 다른 곳에 기록된 말에서 향초를 좋아하여 취했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니 또 어째서인가? 어쩌면 옛 성인의 군자와 같은 성품이 또한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서인가? 또, 내가 듣건대 봉황은 상서로운 새이고 지극히 귀중하다 하는데, 주(周)의 삼세(三世)에는 봉황이 울며 떠나가지 않았다. 권아(卷阿)의 시(詩)에는 화기애애한 선비들을 빗대어 봉황이 많은 것이 선비가 많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순(舜)의 백공(百工)은 상서로운 별과 경사스런 구름을 노래하되 “아침이구나, 다시 아침이구나”라고 하였는데 별과 구름을 아침마다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시가가 지어진 것 또한 지금 시가가 지어지는 것과 같으니 봄에 꾀꼬리를 읊고 가을에 매미를 읊고 밤에는 달을 노래할 뿐이라 어찌 족히 이상할 것 있는가? 그러므로, 후세의 이른바 희귀한 물건은 모두 삼대 지치(至治)의 나라에서 항상 보던 것이니 하물며 향초처럼 사소한 것이랴! 공자와 굴평은 향초를 항상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번성함을 사랑하고 시듦을 애석해하는 정이 있었던 것이니, 만약 그것이 쑥대나 쑥처럼 쉽게 살아나 많이 번성한 것이라면 뽑아버리지나 않을 뿐 무어 그리 칭찬했겠는가. 사람에게 군자가 있는 것도 또한 이러할 뿐이다. 대개 천지는 마음이 없고 운화(運化)가 있다. 운화가 왕성하면 천지의 마음이 거의 마치 사람의 정보다 넘치는 것 같다. 하강하여 쇠퇴하면 취향을 달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시』, 『서』, 『역』을 지은 성인이나 중세 이하 사람들이나 각각 자기가 만난 시대가 그러했음을 말한 것뿐이다. 미친 것도 아니고 속인 것도 아니다. 성인은 공자부터 시작해서 천지에 의혹이 없지 않았다. 이에 헛된 글을 지어 곤룡포로 삼고 도끼로 삼아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아아! 곤룡포로 삼고 도끼로 삼으면 과연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는가? 또한 그 마음을 스스로 쓸 곳이 없어 우선 이것으로 발분하려는 것인가? 그것이 내가 내 정원에서 풀을 뽑는 것보다 오히려 나은 것인가?
- 이건창(李建昌), 〈풀을 뽑는다[除草說]〉,《명미당집(明美堂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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