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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을 거부하는 거짓 에언, “내 말을 도둑질하는 자를 치라”(왕상 13:11-24)
1. 오늘의 말씀 : 왕상 13:11-24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정탐합니다(민 13장). 그러나 육신에 속한 정탐꾼들은 강성한 가나안 주민 앞에서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보고합니다. 주여, 큰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게 하소서. 택한 자들의 믿음과 진리의 지식은 창세전 약속된 영생의 소망에 있습니다(딛 1:1-2). 참으로 인생의 호흡은 코에 있으니 셈할 가치조차 없습니다(사 2:22).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고 환난의 날이 에워싸는 인생의 날, 하늘과 땅에서 내가 의지할 이는 주님밖에 없나이다. 사람도 상황도 무시로 변하오니 오직 파레시아를 버리지 않게 하소서(히 10:35).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오니, 뒤로 물러가는 자를 주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최후 구원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거룩한 주일, 예배하는 공동체마다 주의 인자와 신실로 충만케 하소서. 말씀 앞으로 가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여로보암이 스스로 만든 벧엘 제단에서 분향할 때 심판이 고지되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300년 후 요시야 시대에 벧엘 제단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다. 그는 그 징조로 벧엘 제단이 갈라지고 희생제물을 태운 재가 쏟아지는 이적을 베풀었다.
여로보암은 이적을 행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며 자기와 함께 집으로 가서 쉬며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하며 여로보암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11-32절은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일화이다.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았다. 그의 아들들이 와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제단에 관한 심판의 말씀과 그가 행한 징조를 알렸다(11절). 벧엘 제단은 늙은 선지자가 살던 벧엘에서 남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으로 추정한다(그레이).
늙은 선지자에게 온 그의 아들들은 그의 직계 가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조직의 일원일 수 있다(피히트너). 피히트너의 주장에 따르면 이 늙은 선지자는 그가 속한 선지자 조직의 수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개연성은 있으나 불확실하다.
늙은 선지자는 그의 아들들에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행방을 묻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고 하여 그를 찾아 나섰다(12-13절). 그는 마침내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발견하고 그의 신상을 확인하였다(14절).
늙은 선지자는 여로보암이 그에게 제안한 것과 똑같이 그에게 제안하였다. “함께 우리 집으로 가서, 무엇을 좀 잡수시고 가시지요”(15절).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거절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늙은 선지자의 초대를 거절한다.
“나는 노인 어른과 함께 돌아가서 노인 어른의 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이곳에서는 누구와 함께 밥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여기에서는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온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16-17절).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심판의 메시지뿐 아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돌아가라는 이후의 행동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그러자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기도 선지자라고 하며 그가 천사로부터 들었다는 말씀을 전하였다.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다”(18b절).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선지자가 천사를 통해 주어졌다는 말씀을 믿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다(19절). 그들이 이렇게 식탁에 함께 앉아있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을 데려온 늙은 선지자에게 임하였다. 이에 그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렇게 외쳤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당신의 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신 곳에서, 밥도 먹고, 물도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주검은 당신 조상의 무덤에 묻히지 못할 것입니다”(21-22절).
늙은 선지자는 자기가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의 말씀이 ‘직접’ 그에게 임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심판의 이유와 심판의 내용이다. 심판의 이유는 그가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것이고, 심판의 내용은 그의 시체가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예언은 고대 이스라엘이나 근동 국가의 백성들에게 심각한 저주였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이 조상들의 묘실에 묻히는 것은 의인이 죽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보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스네이드).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나귀 등에 안장을 얹어 주었다(23절). 여기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처음으로 ‘선지자’로 불린다. 그러자 그 선지자가 길을 떠났다. 그 선지자가 길을 가다가 사자를 만났는데, 그 사자가 그를 물어 죽였다. 그리고 그 주검은 길가에 내버려졌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은 나귀가 그의 주검 곁에 서 있고 그를 죽인 사자도 그의 주검 옆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24절).
본 단락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시험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는지 알고자 함이었다. 상기한 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벧엘 제단이 파괴될 것이라는 선포의 내용뿐 아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이후의 행동 지침까지 포함되었다(9, 17절).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취해야 하는 행동 지침에 주목하였다.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 행동 지침으로 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면, 벧엘 제단의 파멸에 관한 그의 선포도 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험의 이유였다. 늙은 선지자는 자신과 그의 아들들이 벧엘 제단에 빌붙어 사는 자였으며, 동시에 벧엘 선지자 집단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벧엘 제단의 파괴 예언은 그에게 중대한 사안이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일에 성공하였다. 그가 먹고 마심으로써 먹거나 마시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폐하여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예언이 임하였고, 하나님의 사람은 길을 떠나자마자 죽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제단에 대해 고지한 심판이 사실임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선지자는 심판을 거부하고 시험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폐하려는 행태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즈음, 곧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 만연하였다. 그 당시 두 종류의 선지자가 있었다. 대부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없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방 나라가 감히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할 수 없다는 논리를 주장하며 근거 없는 형통을 외쳤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죄하신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스스로 예언자라고 하는 자들에게서 예언을 듣지 말아라. 그들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고 있다. 그들은 나 주의 입에서 나온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환상을 말할 뿐이다. 그들은 나 주의 말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한다. 제 고집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도 ‘너희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한다”(렘 23:16-17).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천사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듯이, 심판의 말씀을 거부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내 말을 도둑질하는 자들을 치라”라고 하며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 말을 도둑질이나 하는 이런 예언자들을, 내가 대적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제멋대로 혀를 놀리는 예언자들을, 내가 대적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렘 23:30-31).
그러나 예레미야는 불의한 백성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였다. 예레미야는 그 대가로 동료 선지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백성들에게도 외면을 당했다. 많은 백성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받아들였으나, 일부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심판을 받아들인 백성들을 향하여 도리어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신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 29:11).
신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이다. 복음은 옛사람을 심판하고 새 생명을 주는 기쁜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행하시고 사도들에 의해 전승된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과 현현의 사건이다(고전 15:3-5). 십자가 복음과 장사 복음은 옛사람의 죽음과 심판을 집행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고(롬 6:6), 그의 무덤에서 심판이 집행된 자에게 생명의 표적이 나타난다(요 2:19).
그러므로 옛사람의 심판 없는 새 생명의 탄생은 복음을 왜곡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을 오해한 영적 지도자나 신자들은 옛사람의 죽음이나 심판 없는 복음을 전하곤 한다. 심지어 옛사람이 번성하는 것을 복음(?)으로 전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저주받았으니 우리는 축복을 받는다는 식이다. 그들은 심판의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대체하고 무마시킨다.
바울 시대에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은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혼잡케 하지 않고 전하였다(고후 2:17, 개역개정). ‘혼잡케 하다’(헬, 카펠류오)라는 ‘장사하다’의 뜻이다.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고후 2:17).
옛사람의 죽음과 심판을 집행하는 복음을 영으로 받아들인 자에게 생명이 실제된다. 그에게 심판은 저주가 아니라 생명 얻는 표적이다. 날마다 심판의 말씀 앞에서 벌거벗은 자,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가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의 보좌로 이끄신다. 거기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그에게 최적의 도움이 된다(히 4:16).
4. 나의 묵상
나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밖에 받을 것이 없는 죄인이었다. 신앙생활을 했어도 유사 제단에서 열심을 내던 자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심판받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지 속에서 맹렬히 열심을 내던 자였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나 공의로우시다. 오래 참으신 하나님이 마침내 심판을 집행하셨다. 나는 그것이 심판인 줄도 알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만을 구했다. 그러나 심판의 자리에 말씀의 빛이 임하자, 비로소 심판이 임했음을 알았고 그 심판을 받아들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 동시에 죄의 몸은 장애가 되었고, 나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났다. 또한,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생명 없이 살며 신앙해 온 모든 삶이 심판을 받았고, 나는 그것을 공의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날마다 말씀으로 성전이 지어지는 은혜를 입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파송되었다.
세월이 바뀐다고 인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시대나 신약의 바울 시대나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을 대하는 사람은 동일하다. 복음을 혼잡케 하는 유혹은 여전히 거세다. 또, 혼잡한 복음 듣기를 원하는 신자들도 많다. 심판의 복음을 꺼내면 거부반응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심판의 말씀을 거부하고 피하려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오늘도 활개 친다. 하여 나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주 앞에서 복음을 혼잡케 하지 않고 받은 그대로 전하기만을 간구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견증자로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이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한다(히 12:1).
5. 묵상 기도
아버지... 유다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말씀을 폐하려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선포의 내용뿐 아니라 선포 이후 그가 취할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그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다른 길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며 속이는 늙은 선지자에게는 당하고 말았습니다. 주여, 참으로 두려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선포한 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벧엘 제단에 몸붙여 사는 늙은 선지자의 비극을 봅니다. 오랫동안 유사 신앙에 몸붙여 사는 저를 봅니다. 심판의 말씀을 거부하고 만사형통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시대에 한때 편승하였습니다. 청중 친화적 메시지를 전하며 목사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때는 실존의 문제를 해결 받고자 구름 같은 청중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는 속일 수 없었습니다. 공허와 무의미의 끝자락에 공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심판의 무덤에서 생명의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심판의 말씀을 폐하려는 자는 말씀을 도둑질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대적하십니다. 복음은 옛사람의 죽음과 심판을 선고합니다. 오늘도 십자가에 죽은 자 되게 하소서. 죄의 몸이 장애가 되었음을 받아들이며, 죽을 몸을 의의 도구로만 드리게 하소서. 거룩한 주일, 예배드리는 처소마다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여호와께서 내리신 명령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지켜 행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