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일), 종로에 있는 아이들극장에서 오랜만에 어린이 공연을 보았다. 극단 해마루가 주관한 공연 <우리 집에 집신이 살아요>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오방색을 뜻하는 노랑, 빨강, 파란색의 옷을 입은 배우들이 장구와 북, 꽹과리를 치며 무대 뒤에서부터 등장했다. 신나는 소리에 관객들이 전통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겹게 극이 열렸다.
그들은 성주신, 조왕신, 우물신, 장독신, 정랑각시였다. 각각 대들보, 부엌, 우물, 장독대, 변소에서 잡안의 안녕을 위해 존재했던 신들의 등장이 흥미롭다. 특히 극 후반에 등장한 우마신의 이미지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가축번성을 기원하며 외양간을 지킨 우마신은 무대 위의 조명과 어우러져 울컥 감동이 일었다.
가정 단위에서 이루어진 민간신앙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우리의 문화를 흥겨운 공연으로 만나는 일은 의미있다. 연극은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늙은 어미에게 아들은 집을 팔고 아파트에서 살자고 한다. 아파트에 살고 싶은 아들, 지금대로 살고 싶은 엄마가 갈등하듯이 가신들도 갈등이 시작된다. 정말 가신들이 아파트로 옮겨가면 어떤 모습이 될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나 빌라에 살고 있다. 그 많던 가신들은 사람들의 거주형태가 바뀌면서 사라진 것일까, 현대화라는 미명으로 민속문화가 사라지면서 사라진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을 보았는데, 아이들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생소한 이름들, 생소한 얘기였겠지만 우물에 물을 지켜주는 신이 있었어, 부엌에 불을 지켜주는 신이 있었어, 변소에 사람이 빠지지 않게 하는 신이 있었어, 장독에 고추장, 된장, 간장의 맛을 지켜주는 신이 있었어, 하고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간이 되었겠다 싶다.
교훈을 주려거나 가신에 대한 공부를 주입하려 했다면 공연을 보는 즐거움은 사라졌을 것이지만, 배우들이 가진 갖가지 재주에 홀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휘몰아치는 재미에 공연을 즐기고, 인간이 살아갈 때 자기도 모르게 여러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첫댓글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