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샴’과 할머니를 남겨놓고 일행은 다시 비탈을 되짚어 내려옵니다. 이제부터는 계속하여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팽나무정이.
버스정류소 이름은 ‘평남정’입니다. 이렇게 지명을 생각 없이 조금씩 바꾸다가는 언젠가는 유래를 알 수 없게 돼버리고 말지요. 진안 부귀면의 ‘가나무정이’에서 유래한 ‘가정(柯亭)재’가 ‘가죽재·가죽이재’로까지 바뀌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팽남정이마을이 시작되기 전, 올라갈 때 버스에서 내린 여우치 입구 정류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마을보다 다소 높은 곳의 삼거리 비슷한 어귀에서 물소리가 굉굉(轟轟)합니다.
살짝 숨은 모퉁이 절벽 아래로, 철책 문이 잠겨있는 그리 크지 않은 한 시설이 보입니다.
건물이 앉은 자리 아래로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시설이름이 씌어있지는 않지만 소수력발전소인 것 같습니다. 「섬진강댐 운암취수구를 통한 농업용수 유출구」라는 말이 있는 안내판만 옆에 서 있군요. 건물 뒤에 숨어있을 도수구로 떨어져 내린 물이 시설 안의 발전기 터빈을 돌린 다음 건물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이겠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건물 왼편으로 또한 엄청난 물거품을 보이며 급격한 내리막을 달려 내리는 물길이 하나 더 있습니다.
평사리천이군요. 평소에는 졸졸 흐르는 가는 물줄기였을 것이 이렇게나 어마어마한 기세의 강으로 바뀌었습니다. 운암취수구에서 뽑아 올린 섬진강물이 고개를 넘어 유로를 바꾸어 동진강의 최상류 수원으로 역할이 바뀌는 지점이었던 것입니다.
난생 처음 본 강물 유로변경의 현장은 감동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금강 상류의 물을 만경강으로 돌린 소향발전소도 보았지만 발전소 건물 아래로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장면에 별 감동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급한 경사를 달려 내려오는, 그것도 벌거벗은 상태의 살아있는 물이 허연 물거품을 마구 튀기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면 앞에는 압도되고 만 것입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강한 물줄기는 발전소 아래를 통해 나오는 물과 합해져서 팽남정이 마을 앞을 큰 폭의 강을 이루어 쏟아져 내려갑니다.
말로 설명하기에 내 글재주는 너무나 모자라는군요. 사진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물이 부족한 나라.”
그런 말은 그저 대충 듣고,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살았습니다.
강과 인공수로에 꽂혀 물농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요즈음...
우리 선조들은 산을 뚫고 섬진강 물을 끌어올려 동진강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이 물은 정읍·김제를 거쳐 부안까지 넓은 들판을 적시게 될 것입니다.
만경평야 농업용수로에는 금강 상류의 물도 하류의 물도, 군산호수의 물도, 작은 하천의 물도 모여 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제의 '벽골[벳골禾谷]제'는 바다를 막아 농토를 넓히려는 백제시대부터의 지혜의 산물이라 합니다.
1백 년 전,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까지 물을 소중하게 여겨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어 아끼고 나누며 농사에 활용할 생각을 했군요.
지금도 그 시설들은 개선되고 확충되면서 이어져오고 있어, 김제만경평야의 농업용 인공 관개수로의 총연장은 만리장성의 6,500킬로미터보다 더 긴 6,800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우리 땅에 있는 우리 강, 우리 수로.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은 ‘우리의’ 농업문화유산인 것입니다.
잠시 일본의 기술을 이용한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창조하였거나 일본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 변함은 없습니다.
이집트의 대피라밋이 현생 이집트인들의 조상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그렇다고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라틴인들이 3천 년 전에 이룩한 화려한 각종 문화유산을 누가 로마의 유산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무어인이 파괴하고 크리스챤이 개조하고 무슬림이 덧칠했지만 여전히 로마의 유산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