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리는 정읍 신태인읍에 속하지만 대평리 금강리는 김제 부량면으로 들어갑니다.
시와 시 사이의 경계가 이렇게 이상해진 이유는 역시 화호천입니다.
구불구불 넓게 펼쳐져 흐르던 화호천을 직선화하여 하천 폭을 좁히면서 유역을 농지화 한 것까지는 좋은데,
화호천을 경계로 김제와 정읍이 나뉘던 기존의 행정구역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산줄기의 능선이나 자연하천을 경계로 삼던 행정구역 획정의 관행이 무너진 현장인 셈이지요. 이렇게 농업생산만을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가미한 '인공'의 결과는 행정적 사회적 변혁을 유발하기도 하는군요.
- 김제에 들어서다. 월승리 제월마을 -
신곡교를 지나면 확실히 김제시 경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위 사진 : 이름 없는 이 다리 건너편으로는 이름도 멋있는 '제월(霽月)'마을.)
'비 갠 하늘에 뜬 맑은 달'이라는 뜻이겠군요.
꽤 큰 마을이지만 들어가보는 것은 생략하고 걷기를 계속합니다.
다리에서 6백여 미터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초승마을'이 보입니다.
설마하니 '초승달'의 초승(初生)일까요? 하지만 그냥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제월'도 달을 노래한 이름이고, '초승'도 주로 달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제월의 월과 초승의 승을 합하여 월승리라 부르는 걸까...
소나무 숲이 시원해보입니다.
다리 옆에는 폐쇄된 버스정류소 건물.
사람이 떠나고 동네가 비어감에 따른 변화의 흔적입니다.
이곳에서도 동쪽을 향하여 갈라져 나가는 지선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이름하여 감곡 지선. 여기서 시작하여 동쪽 정읍 감곡면 감곡천을 향해 '역류'하는 지선입니다. 땅이 워낙 평탄하니까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깊이는 2미터가 넘고, 폭은 4미터 가량의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보이는 지류 수로입니다.
수표에 나타난 물 깊이는 고작 30 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이만한 도랑을 계속하여 흐른다면 분명 농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벽골제 농업문화재 구역의 답사코스가 안내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글로만 쓰여 있어 뜻을 알기는 꽤 어렵습니다. 사전에 연구를 좀 하고 나올 걸... 후회스럽기도 하네요.
- 가장 오래된 수문 -
월승교 다리에 올라서니 하류(북쪽) 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신비한 모습을 한 수문이 수로를 가로질러 서 있습니다.
한 눈에 매우 오래된 시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딱 봐도 나무로 된 수문 셔터가 고색창연해 보이고, 시멘트 소재의 빛깔이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것을 보더라도 이 김제간선수로 상에서 가장 오래된 원조 수문일 것 같습니다.
(위 사진 : 수문 이름이나 휘호를 새겼을 돌판. 철저히 갈아 없앴다.)
이만한 수문이라면 분명 수문의 이름을 새겨 붙였을 것입니다만, 이미 모두 쪼아내어버렸습니다. 더 말할 기력을 잃을 정도로 애석할 뿐입니다.
이제는 혹 누가 옛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 그분이 그 사진을 공개하기를 기다리는 일 뿐, 원래의 모습을 찾기는 불가능해졌다고 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