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다리 옆의 정자에 들러 봅니다. 용골마을을 철수시킨 뒤 아무도 찾지 않게 된 정자만 덩그렇습니다.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지선수로가 빠져 나가고 있네요. 이름하여 '신용 지선'.
바로 이곳이 신용리이고, 새로 지은 다리가 신용교.
동쪽으로 한없이 직진하다가 아까 만난 '감곡 지선'과 가까운 곳에서 원평천으로 빠져 나가는 지선 수로입니다.
수로의 폭은 1미터 내외로 보입니다.
신용교 위에 걸린 현수막.
이미 벽골제공원이 눈앞입니다. 하지만 내 목적은 벽골제 공원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므로 또 직진.
(위 사진 : 용골마을이 살아 있던 시절의 생활공간?)
- 벽골제 암거를 향하여 -
이제부터는 꽤 낡은 콩크리트 포장길입니다. 수로 둑의 난간도 많이 낡아 있고 한쪽으로 쓰러질 것 같이 기울어 있네요.
(위 사진 : 이 방수포 덮인 곳이 '중심거' 발굴 현장일까요? 일단 궁금하므로 수로둑 아래 왼쪽으로 내려서 보았습니다.)
발굴현장을 안내하는 안내판.
언제 세운 것인지 이미 거의 판독하기 힘들 정도로 낡았습니다.
어쨌든 읽히는 부분만으로 이해한즉,
아까 보았던 '신비의 거석문명' 돌기둥은 역시 수문 셔터를 끼운 石柱(석주, 돌기둥)가 맞았네요.
돌기둥을 받친 인방(引枋, 도리)도 따로 있더랍니다.
인방 석재 두 짝을 결합한 정교한 솜씨를 좀 보십시오.
현장에서 캐낸 제방의 석재들이 한쪽으로 나란히 늘어놓여 있습니다.
발굴작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용골을 철수시킨 것은 추가 훼손이 없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겠으나,
작업진척이 느리면 시간 경과에 따른 2차 3차 멸실이 이어질텐데... 걱정스럽군요.
어떤 이의 말마따나 '전라도 차별정책의 연장'이 이런 사업 예산 대 주는 일까지 지지부진해서 그런 것일까요?
안내판에서 170여 미터.
벽골제 암거를 앞두고 거의 마지막으로 만나는 다리입니다.
이 다리 언저리에도 지선 하나가 분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용성 지선'이라 했습니다. 이곳 용성리와 신흥리를 거쳐 서쪽으로 흘러 원평천으로 합류한 다음 진봉면 거전마을 앞에서 동진강 하구로 빠져 나갈 것입니다.
벽골제공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몇 군데가 있지만 주차장에서 들어가는 정면 입구를 빼고는 모두 폐쇄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다리 (이름?) 앞의 문도 폐쇄.
오른쪽 둑길을 걸어서만 겨우 벽골제 암거에 접근할 수 있는데 역시 대책이 서지 않는 풀밭길입니다.
(3번 출입구 폐쇄, 2번 출입구 폐쇄.
1번 위치에서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4번 목표지점을 쌍안경으로 바라봄.
5번=쌍룡 조형물.)
(위 사진 : 용성 지선의 출발지점.)
(수로 오른 쪽 들판에 세운 조형물. 하나는 펌프인데, 빨간 것은? 횃불일까요?)
(풀숲길을 고생해서 걸어 들어간 곳에 섶다리가 걸렸는데, 섶다리 건너 왼쪽 입구를 통해 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곳도 폐쇄...)
(섶다리 가운데서 바라본 암거의 입구.)
여기까지입니다.
풀숲에 막혀 더 들어가다가는 뱀에게 물릴 것 같았습니다. 발 밑이 불안정하여 발목을 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접근하기를 포기하고,
180미터 거리에서 x=20 쌍안경으로 바라본 암거에 분명히 돌판이 붙어 있는 것은 확인했으나, 너무 멀고 쌍안경이 흔들려 글씨를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곳은 여의도처럼 원평천 가운데에 생긴 섬입니다.
이 하천을 연달아 두 번 가로질러 북쪽으로 흐르는 김제 대간선수로.
이 지점을 꼭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오늘 못 보았으니 다음에 꼭 보기로 하면 되겠지요.
버스 타고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