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능마을.
동네 초입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인상적이군요. 마을도 크고 들도 넓습니다.
강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의 논밭을 바라보며 걷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수로 시스템을 눈앞에 가까이 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마을 구역이 시작하기 꽤 한참 전 상류 쪽에서 보를 쌓아 강의 좌우 양쪽으로 물꼬를 내어놓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수로가 길어야 고저차에 따른 자연 흐름을 유도할 수 있고 압력 또한 낮출 수 있지요.
찰랑거리며 길 따라 논둑 따라 흐르는 물이 귀엽군요.
이 직강공사를 하지 않았다면, 섬진강 물을 이쪽으로 넘겨오지 않았다면, 이 산골 구불거리는 물가의 퇴적면 뿐인 적은 농토에서, 빈약한 물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았을까요?
외능의 들판은 이미 모내기를 거의 다 한 것 같습니다.
아직 옛날식 「흙수로」가 그냥 있는 곳도 있군요. 자주 손봐야 하기는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을 넣고 싶을 때 논둑을 조금 허물어 열고 물길을 막으면 되고, 그만 넣어야 할 때는 반대로 하면 되고… 지나친 시스템화는 개인의 창의와 자유의사를 많이 제한하게 되지요. 「논감독·물감독」에게 내 논의 물을 맡겨야 하니까요.
외능들을 지나면 안계마을입니다. 이곳도 거대한 느티나무는 어마어마한 그늘을 던져주고 있는데 마을은 왠지 다소 위축되어 있어 보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자연하천의 물을 흘려보내는 수로가 역시 흙으로 되어 있군요.
「라주 임씨」의 입향조를 기리는 표지석이 거대합니다.
전라도 언어습관에는 「‘ㄹ’이 첫 글자 초성에 오면 ‘ㄴ’으로 바꿔 쓴다」는 두음법칙을 무시한 표기가 많아서 가끔 혼란스럽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2음절 이하에 있는 초성 ‘ㄹ’은 그대로 표기한다」는 원칙도 무시됩니다. 예로써, ‘경로당’을 ‘경노당’, ‘농로(農路)’를 ‘농노’ 등으로 쓰는 것입니다. 사실 ‘노’로 읽는 한자 치고 좋은 뜻을 가진 글자는 별로 없습니다. 노예, 농노(農奴), 분노… 등.
안계를 지나 산외 면소재지로 들어가는 길은 좌우에 벚나무 가로수가 시커먼 그늘을 던져주고 있어 긴 시간 햇볕 아래를 걸어왔던 여행자에게 휴식의 길이 됩니다.
산외중학교 교정을 둘러싸고 있는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두 팔을 올리고 선 사람 같아 보이는 특이한 나무. 어디서 본 듯도 한데… 이름 아시는 분?
(위 사진 : '이토변'. 무슨 뜻일까요?)
(위 : 지금까지 함께 온 물.)
(위 : 평사리 뒤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자연하천.)
산외 면소재지는 터가 넓습니다. 지금까지 따라온 동진강(사실은 면소재지 이름을 딴 평사리천)과 북쪽 상두산에서 흘러내리는 상두천(이것을 동진강의 원류라 부르는 사람도 있답니다) 등 몇 가닥의 물이 합해지는 곳이고 그 넓은 퇴적지에 이룬 마을입니다.
‘한우고기’로만 유명한 곳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최근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산외의 메인 스트리트, 구시가지는 60년대식 건물이 처마를 잇대고 있는 모습이 탈시대적 노스탈쟈를 부르기도 하네요.
산외면소재지 이모저모.
(사진 위, 아래 : 산외초등학교.)
(위 사진 : 옛 장터 마당.)
(위 : '양용'경노당? 건물 정면에는 용두경로당이라 썼는데...)
(위 : 산외면사무소 건물)
(위, 아래 : 옛 농협 사무실?)
옛 장터 마당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이미 한 시가 넘은 시각이라 배도 고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