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평야 대간선수로 따라 걷기.
두 번째, 6월 12일.
손목을 다쳐서 꼼짝 못 하던 일주일이 지나고 날씨도 비가 오락가락 해서 나가기 싫던 일주일이기도 해서 미뤄두었던 답사여행을 오늘 두 번째로 다녀왔습니다.
커다란 발견(나 혼자만 몰랐던 거겠지만)을 몇 개 하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십니다.
전날 밤에 축구 보느라고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나갔거든요.
출발지점 내석마을 안 풍경.
(사진 위, 아래 : 역시 일본풍 집들이 많은 동네. 마당 안에 석등을 두거나 집 안에 불상을 두는 것은 완전히 일본식이다.)
(위 사진 : 일본식 집 바로 이웃의, 꿋꿋이 버틴 한옥.)
(위 사진 : 이 건물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방마다 굴뚝(?)이 있는 것이...)
(사진 위, 아래 : 문닫은 정미소.)
궁금한 것은, 이런 집들과 논밭 등 재산을 왜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가 패망하여 퇴각한 후 어떤 경로로 지금의 조선사람들에게 돌아왔을까 하는 점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경로로 넘어갔을 소유권이,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정상적이지 못했을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구석리 구사마을이 인접해 있습니다. 아홉(九) 선비(士)의 마을이랍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무리 깊이 파보아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 마을도 내석만큼 크고, 더구나 사는 형편이 꽤 좋아 보입니다.
(위 사진 : 동네에 석류나무 심은 집이 많아요. 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어진 석류. )
(위 사진 : 굴뚝을 따로 세우고 길게 뽑아올려 머리에 장식을 한.)
(위 사진 : 구사마을을 빠져나가 신태인 시가지로 들어가는 다리. 우리가 이 다리를 건넜던가요?)
(위 사진 : 모정으로 휠체어가 그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진입로.)
(위 사진 두장 : 모정옆의 화장실은 어떤 분이 회갑기념으로 지어 기증한 것이랍니다.)
이제 수로를 따라 왕신여고 아래 절벽길을 걸을 예정인데, 이렇게 막혀있습니다.
(위 사진 : 흔치 않게 보는 산 아래 벼랑길. 약 4백 미터 구간. 시원할 것 같았으나 나무숲이 쩔어 있어 통과하지 못한다.)
(위 사진 : 화살표가 왕신여고. 그 아래 비탈까지 가 보았으나...)
숲이 쩔다시피 오랫동안 나무가 자란 것으로 보아 이 수로가 생기기 전에도 하천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로의 코스를 정할 때 기존 자연하천을 많이 수로로 편입했다는 증거입니다.
아까 보았던 구사마을 앞 수로변에 심어진 나무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벼랑길은 손을 좀 보아서 산책로로 삼으면 참 좋을 것 같기는 하네요.
그리 길지 않지만 아쉬운대로...
어쩔 수 없이 벼랑길 건너편의 물가로 걷습니다.
(위 사진 : 아무도 다니지 않는 벼랑길에 마음놓고 자란 나무.)
길 끝에 가서 보니 이런 집이 또한 수로 옆에 있으면서 통행을 완전히 막았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지만, 그동안 오폐수를 얼마나 이 수로로 흘려 보냈을지...
- 인교암거 -
여기는 인교마을입니다.
신태인교가 있고, 다리 앞의 버스정류소에서 마을 이름이 왜 인교인지 주민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냥 옛날부터 인교라고 불렀을 뿐, 연유는 모른다 합니다.
이렇습니다.
주민들 말이 다 옳을 것 같지만 참고할 만한 주민의 말을 얻어 듣기도 쉽지 않은 상황.
설마하니
(위 사진 : 1=신태인교, 2=인교암거)
이 암거는 꼭 보고 싶던 크로스 중의 하나입니다.
생활문화센터에 사진과 설명으로 소개되어 있던 바로 그곳이어서 그렇고,
나 말고도 대수로의 암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어 거기에 새긴 글자와 사람이름까지 모두 관찰하고 소개했다는 것이 고맙고 신선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생활문화센터에 들렀을 때 마침 내가 이 그림을 보며 해설자에게 질문을 했었지요. "글을 썼다는 이진호와 송본성은 어떤 사람들이었느냐"고. 해설자 여성이 '지역의 유지'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오른쪽 별도 사진으로 '구암리 잠관'과 '인교마을 잠관' 두 곳이 모두 소개되어 있는데, 구암리는 지난 번 답사 후기에 제가 자세히 올렸습니다.
사진의 지형과 꼭 같은 바로 이곳.
귀한 사진이네요. 지금과 조금은 다른 옛 항공사진.
인교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쓰러운 상황이 계속됩니다.
(위 사진 : 인교마을 노인회관.)
(위 사진 : 빈집 문틈으로 들여다본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다.)
(널문은 굳게 잠겨있고...)
(위 사진 : 동네 우물. 누가 빠질까봐? 철저히 뚜껑을 덮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