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골제를 향하여 -
벽골제는 우리 민족의 '원조 중의 원조' 수리시설입니다. 규모도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조각난 민물 하천을 컨트롤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 바다를 막아 농토를 넓히려 했던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였다는 주장 또한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연구가 부족한 채로 출발한 여정이 여전히 아쉽지만,
이미 여러 연구기관의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곧 어떤 발표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원조 수문을 돌아보며 아쉬움 때문에 몇 커트 더 사진으로 남깁니다.
원래는 옹벽을 V자형으로 만들었던 모양이지요?
만경강 대수로의 준공 당시 사진을 보아도 V자형이었으니까요.
당시는 흙둑이 기본이었고 주요 포인트에만 돌로 축대를 쌓은 형태였을텐데,
어느 시기에 시멘트로 바뀌었으며 언제 U자형으로 바뀌었는지... 등등, 궁금하네요.
- 신비한 돌기둥, 셔터를 끼웠던 기둥? -
'원조 수문'을 지나 3백여 미터를 걷자, 수로 건너편 왼쪽으로 돌 기둥 두 개가 나타납니다.
크게 다듬지 않고 소박한 모습을 한 사각 기둥입니다.
얼른 보아도 거석(巨石)문명 시기의 모뉴멘트를 연상케 하는, 전율이 느껴지는 유적.
하지만 필요한 부위에는 정교한 석공(石工)이 베풀어져 있네요.
셔터를 끼워 오르내리게 했던 기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벽골제 구역에 들어온 것일까요?
서쪽 햇빛 때문에 역광이어서 사진을 깨끗하게 찍기도 힘든 위치.
건너가 보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원조 수문'까지 되돌아가 '수문 다리'를 건너서 그만큼의 거리를 돌아와야 이 신비의 돌기둥에 접근할 수 있는데, 그럴 기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그냥 이쪽편에서 바라볼 수 밖에요.
땅위로 솟은 부분만 3미터는 되어 보입니다. 땅 속에 묻힌 부위까지 하면...?
오랜 시간을 기울지 않고 수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묻힌 부분이 역시 솟은 부분만큼 또는 그 이상일 가능성이 충분하지요.
그렇다면 5~6 미터!
건너가 직접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온갖 추측만 하며 지나갑니다.
- 용골, 벽골제의 연장 -
신비의 돌기둥 위치에서 약 160미터 지점.
이제는 둑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풀이 무성할 뿐 아니라 왠지 '출입금지 분위기'여서 그렇습니다.
길도 둑길을 벗어나 오른쪽 들판으로 내려가도록 만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위 사진 : 용골 부근. 1=진행방향. 2=목표지점인 암거 입출구, 3=용골마을 옛터.)
(위 그림 : 1로 걸어가 출구를 겨우 보고, 2로 걸어가서 길이 없음을 알고 포기... 결국 암거의 입구는 보지 못하고 말았다.)
'용골'이라 불리는, 섬처럼 고립된 구역임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이 구역을 피해 대수로도 슬쩍 오른쪽으로 휘어 지나가고 있습니다.
돌로 쌓은 벽골제 제방의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묻혀 있는 것입니다.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통행을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제 대간선수로를 개설하던 당시에도 이 구역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이군요.
용골 사람들은 이 높은 둑길 위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걸까요? 지금은 발굴조사 때문에 집을 모두 철거하고 아무도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동네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마을 안길은 그대로 있는 것 같습니다.
용골에 관심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서 또 하나의 하저 암거가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폭 1백미터가 가까운 넓은 자연하천(이미 폐수처리 하천으로 전락한) 아래를 건너가는 역시 초대형 암거입니다.
하지만 용골로 통하는 둑길을 들어가지 못하므로 그 암거의 입구를 보지 못합니다.
(위 사진 : 들어갈 수 없는 용골 방면 둑길. 아쉬움 남기고...)
(위 사진 : 하저 암거의 출구쪽. 물을 퍼올리는 양수장은 보이기 시작하는데...)
용골의 이름도 아무렇게나 붙은 이름은 아닌 듯합니다.
'물의 신' 용.
결국 물을 관리하는 벽골제, 바로 그 핵심 둑이 지나는 구간을 용골이라 부른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엊그제, 김제시가 호숫가에 조성한 용 조형물이 무섭고 흉물스럽다는 악평을 받는다는 보도가 있었네요.
조형물의 작품성은 잘 모르겠으나, 김제와 '수신(水神)' 용과의 깊은 인연만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저히 입구쪽으로는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출구만 보고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출구에는 아무런 글씨도 없었습니다.
(위 사진 : 이 하천 아래로 지나가는 암거를 못 보았다고 그렇게 아쉬워 하는 것입니다. 오른쪽에 출구로 퍼올리는 파이프는 보이는데...)
(위 사진 : 물이 막혀 못 가고, 길이 없어 못 가는...)
(위 아래 사진 : 용골 암거의 출구. 글씨를 새긴 판이 없다. 원래부터 없었을까? 시멘트를 새로 바른 흔적이 역연한 걸 보면, 개선공사 때 없어졌을 거라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그런데 이제부터가 큰일이군요. 이 엄청난 풀숲을 헤치며 걸어야 할 일이...
겨우 헤쳐가며 걷다 보니 발 아래로는 습지로 남아있는 땅이 보입니다. 역시 바다를 막아 염분이 남아있는 곳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 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리 위까지 올라오는 풀숲을 걷느라 발을 높이높이 들며 걸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이젠 되돌아가기에도 먼 거리가 되어 버렸네요.
계속 직진, 앞으로 걷습니다. '남자는 직진'이라면서요.
- 신비의 다리 -
갈수록 수로 둑의 옹벽은 낡은 시멘트로 남아있는 곳이 길게 이어지고,
유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용골 암거에서 2백미터 쯤 걸었을까요,
드디어 한 곳, 오동나무가 높이 서 있는 어귀에서 신비로운 다리를 만나게 됩니다.
물을 건너 보내는 작은 수로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사람이 건너 다니는 다리였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카누처럼 생겼네요.
가운데가 살짝 낮아진.
양쪽끝이 벌어진.
담쟁이 덩굴이 온통 휘감고 있습니다.
(위 사진 : 신비의 '카누 다리'를 대신하여 새로 지은 다리.)